죽음의 덫에서 다시 걷으며: 부를 꿈꾸는 말기 암 환자

by 김인경


자본주의에서 돈의 흐름에 따라가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월급만으로 생활하고 남은 돈을 모아 부를 창출하기는 쉽지 않다. 사업도 옛말이다. 개인이 자영업으로 돈을 번다는 건 하늘에서 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워졌다.




어제는 딸이 가고 싶다던 명동의 레스토랑에서 가족과 저녁을 먹었다. 딸은 가끔 인터넷에 올라온 맛집을 가자고 제안한다. 4인 기준 가격이 10만 원 선일 땐 남편 카드로 계산하지만, 1인 10만 원 이상인 곳에선 내가 물주가 된다.

“명동”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다시 그 거리를 걸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빠르면 두 달”이라는 사형 선고를 받은 지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지난 1년 반 동안 나는 암이 싫어하는 것만 찾아 죽으라 노력했다. 팔과 다리를 다시 움직이기 위해 24시간을 최대한 쪼개며 암과 싸웠다. 같이 있는 여러 환우의 죽음을 지켜보면서도 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했던가? 나의 노력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다리도 팔도 정상인처럼은 아니어도 간단한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돌아왔다. 통증은 여전히 24시간 나를 지배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감사한다.


죽음을 넘나드는 통증 속에서 이제는 암을 없애겠다는 생각보단, 함께 공존하는 걸 선택했다. 암을 무서운 존재로 여기지 않고 사랑을 듬뿍 필요로 하는 하나의 장기로 대하기 시작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라는 말처럼 사람은 간사한 동물이라는 걸 나만 봐도 알 수 있다. 통증으로 미칠 것 같을 땐, 잠시 잠이 들면 다시는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나를 원망하며 죽음의 길을 찾았다.


그런데 몸이 조금씩 좋아지자, 이번엔 돈을 벌고 싶어졌다. 아니 나의 몸속에 흐르는 욕심이 밖으로 도출되었다. 돈은 많을수록 좋다고 하지만, 지금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매달 나오는 보험료만으로도 평생 사는 데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도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싶다. 쓰고 남은 돈은 다 세금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냥 돈이 좋다. 그렇다고 명품을 사는 것도 아니다. 작년 한 해 병원에서 암과 피나는 싸움 속에서 정식적인 외출은 본병원 가는 것밖엔 없었다.


매일 땀 흘리고 열 치료에 집중하는 나에겐 병원 찜질복이 가장 편하다. 가끔 화사해 보이고 싶어 인터넷에서 노랑, 빨간색 찜질복을 사보지만, 역시나 막 입기엔 병원복이 최고였다. 이런 생활에 익숙해서인지 옷 한 벌을 사지 않았다.


많이 걸을 수 없는 나에게 신발은 운동화 하나면 충분했다. 겨울엔 발목 털부츠만 있으면 된다. 화장품 또한 거의 사용하지 않으니, 선물로 받은 것만으로도 차고 넘쳤다. 그런데도 돈이 좋고 더 많이 가지고 싶다.



작년엔 공부도 하지 않고 예전에 물려있던 이차전지가 많이 빠졌다는 이유로 투자했다. 역시 실패였다. 오직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반도체 부분만 올랐다. 게다가 빨간 숫자만 보면 손가락은 매도 버튼 앞에서 춤을 추었다.


수익은 조금만 나도 팔고, 파란불인 건 선택 없이 장기투자가 되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래도 웬만한 기업 연봉보단 좋았다. 수익은 일반계좌로 옮겨 현금으로 찾아, 그 돈을 들고 종로로 나갔다. 내가 나간 5 월경엔 금값이 55만 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었다.


20만 원 때부터 금을 모아온 나에겐 비싼 금액이었지만, 5년 안에 300만 원이 갈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많은 돈을 투자했다. 그러다 갑자기 예쁜 명품 팔찌나 반지 등이 하고 싶어졌다. 순 금사는 걸 멈추었다.

티파니, 부셰론, 테니스 목걸이, 팔찌 등 명품에서 나오는 제품들을 14K 금으로 만들 수 있는 금은방을 찾아 매달 한두 개씩 주문했다. 진짜 명품을 사기에는 아직 형편도 여유롭지 못했지만, 꼭 정품을 살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한 달에 한 번, 암과 싸우며 매일 치료에 지쳐 자유로이 어디도 갈 수 없는 나에게 종로 나들이는 내 삶에 작은 축제와 같았다. 새로 나온 디자인을 내 몸에 착용할 때, 반짝이는 보석에 화려해지는 내 모습이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선물 같았다.


그렇게 사 놓은 금이 요즘 계속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다. 금이 오를 때마다 재테크를 잘한 내가 자랑스러웠다. 그러다 연말에 갑자기 은에 관심이 생겼다.



7~8년 전, 실물 은에 투자하다 포기한 적이 있었다. 가격 대비 부피와 무게가 부담스러웠다. 20kg 정도 있었지만, 보관이 용의 하지 않아 은 공장에 팔았다. 그런 은이 2026년 1월 한 달,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르고만 있다.


앞으로 은값은 금값에 몇 배 갈 듯했다. 나는 금은 조금 팔아 은을 사려고 했다. 하지만 실물 은에 프리미엄이 너무 높았다. 이번엔 ISA 계좌를 이용하기로 했다. 12월 30일에 만들어 “신한 레버리지 은 선물(H)”이라는 한 종목만 담았다.


유튜브에서는 종이 은 말고 실물 은을 사라고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이 실물 은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돈이 중요하지. 나는 은이 1원 오르면 2원 오르는 레버리지에 투자했다. 위험성을 높지만, 투자는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으로 질렀다.


은이 공급이 중단되고 있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 이런 원자재는 앞으로 먹을거리가 많다. 50년 만에 온 기회라고 하는데 이번을 놓칠 수는 없었다.


ISA 계좌에 넣을 수 있는 금액은 작년 2,000만 원, 올해 2,000만 원으로 총 4,000만 원 이상은 투자할 수 없었다. 은에 확신을 가진 나는 아이들에게도 ISA 계좌를 만들라고 했다. 딸은 문제가 없었지만, 아들은 미성년이라 불가했다.


하루 종일 고생해서 계좌를 만들고 ETN 거래를 위해 교육을 받은 딸은 전화 연결이 힘든 증권사를 원망했다. ETN의 처음 거래는 1,000만 원이 기본이라고 했다. 딸은 돈을 입금하자, 최대한 은을 샀다.


하루가 지나자, 아들도 사 놓고, 생일이 지나 성인이 되면 계좌를 바꾸면 될 것 같았다. 아들도 교육받고 1,000만 원을 입금했다. 주식은 서두르면 안 된다는 진리를 알면서도 마음먹자, 가장 높은 금액에서 매수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내가 사기만 하면 떨어지는 주식을 원망하며 아이들에게 잘 간수 하라고 했다. 수익이 나면 원금은 주고, 손해라면 버리라고. 역시 은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1월 초에 들어간 계좌 수익률은 놀라웠다.

처음에 들어간 내 계좌는 160%가 넘었다. 아이들도 100% 이상의 수익을 보여주고 있었다. 10배 보고 들어간 계좌가 쑥쑥 올라가니 기분이 좋았다. 덩달아 금까지 가주니 부의 축적이 생각보다 컸다.


이러한 기쁨도 잠시, 갑자기 1월 말, 금과 은이 미친 듯이 떨어졌다. 금은 실물이고 떨어지는 % 도 약했지만, 은 레버리지에 30% 이상 폭락하자, 내 계좌는 순식간에 플러스 160%에서 마이너스 30%로 아작났다.


세력들의 장난이었다. 그들의 손해를 줄이기 위해 개미들을 죽이는 행동이다. 돈이 없는 개미는 항상 세력 손에 놀아난다. 하룻밤 자고 나니 계좌가 반도 안 되게 박살 났다.




역시 자본주의에선 돈이 돈을 번다는 말이 있듯이 이런 유동성 장세에 우리 같은 개미가 견디기엔 쉬운 게 아니었다. 똘똘한 주식으로 부를 창출하는 게 현재의 자산 증식에선 최고일 수 있지만, 쉬운 건 아니었다.


이상하게 나는 뒷북 치는 사람인 듯했다. 조금만 수익 나면 팔고 손해나면 절대 손절 못 하는 전형적인 개미다. 또 기다리는 건 지금처럼 엄청난 손해를 봤을 때, 선택 없는 장기투자에 들어가게 된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차라리 삼성전자를 샀다면?


하지만 은은 다시 오를 거라는 확신을 붙들고 어리석어도 또다시 기다려보기로 했다. 경제적으로는 흔들렸지만, 요즘 나는 매일 감사 속에 산다.


다시 오지 않을 1월 장을 놓친 건 아쉽지만, 시간이 지나면 금과 은이 나에게 경제적 안정감을 줄 거라 믿는다. 거기다 암도 조금씩 줄어들면서 명동거리까지 나갈 수 있게 삶의 질도 높여주고 있다.


사람들은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아플 때 경제가 무너지면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면 그 고통은 배가 된다.


다행히 좋다는 건 모든 살 수 있는 지금의 내가 좋다. 아이들도 부담 없이 나를 만나러 편안하게 올 수 있어 좋다. 올해는 욕심을 조금 덜어내고 정리할 건 정리하며 금과 은처럼 단단한 마음으로 살고 싶다.



수익이 오르지 않아도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낸 것만으로 감사한다. 나는 여전히 상상할 수 없는 큰 암 덩어리와 함께 살고 있다. 그 안에서 자본주의의 돈의 흐름을 배우는 중이다.


아무리 손해를 본다 한들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 욕심 많은 나는 새해에도 건강복, 재물복, 자식 복이 가득한 한 해가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2026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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