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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랍비 Sep 12. 2024

어쩌다 불운의 아이콘-2

잘못된 만남(feat. 소개팅)

나에게는 자주 만나는 초등학교 동창생 4명이 있다.

그중 S는 네 명 중 가장 먼저 직장을 잡아 회사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지금은 전공을 살려 법조계에서 일하고 있다.

아무튼 우리 4명 중 가장 먼저 회사를 다니던 S는 내가 임용에 합격하자 회사의 지인인 K를 소개해 주었다.


당시 아내를 만나기 전이던 나는 흔쾌히, 그리고 고맙게 S가 준비해 준 소개팅에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또 나의 이 질긴 불운이 시작된 것이다.

내 불운에 희생당한 상대 여성인 K 씨가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저 지금 계단만 올라가면 돼요]


당시 만나기로 한 장소는 2층의 식당이었고 나는 K와 계속 메시지를 주고받던 중이었다.

그렇기에 금방 올라온다는 뜻으로 해석한 나는 계단 쪽을 바라보며 메시지를 보냈다.


[네. 알겠습니다. 저는 창가 쪽에 있어요]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여성분이 올라왔고 그 사람과 난 눈이 마주쳤다.

순간적으로 나는 그녀가 눈짓으로 인사하는 걸 느꼈고, 이에 일어나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 여성은 나의 맞은편에 앉아 편하게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제가 좀 늦었죠. 죄송해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우선 주문부터 할까요?”


나는 조금 늦은 상대방을 배려하여 느긋한 마음과 나긋한 표정으로 식당 종업원을 불렀다.

종업원은 곧장 와서 메뉴를 설명해 주었고, 나는 스테이크와 파스타, 음료가 나오는 이름 모를 세트를 시켰다.

이에 종업원은 한껏 미소 지으며 그에 딸린 음료를 무엇으로 할 것인지 물었다.

종업원이 친절하게 묻자 옆에 앉은 커플은 우리의 소개팅을 힐끔힐끔 바라본다.

아마 종업원과 옆 좌석 커플은 우리가 처음 만나는 사이인 걸 눈치챈 것 같았다.

이에 나는 조금 민망하지만, 최대한 점잔 빼며 물었다.


“저는 자몽에이드요. 어떤 게 좋으세요?”

“저는 레몬에이드로 할게요.”


이런 분위기는 정말 힘들다.

아아, 내 손과 발이 오그라들 것 같다.

그럼에도 최대한 분위기를 즐겁게 내보려 노력하지만,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아, 어떻게 하지. 이런 분위기는 질색인데.


나는 그 분위기에 못 이겨 결국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고야 말았다.


“오시는데 차가 많이 막혔죠?”

“아니요. 아니에요. 수원은 처음이시죠? 괜히 여기서 보자고 해서.”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저 교생 실습할 때 수원에 몇 번 와 봤어요.”

“네? 교생실습이요?”

“네. 저기 00학교 있잖아요.”


상대방은 내 직업도 모르는 듯, 두 눈이 커다래지며 나에게 되물었다.


“00학교면, 저 혹시… 그 특수학교 말씀인가요?”


'뭐야, S야! 너무한 거 아니야? 나에 관한 이야기를 한마디도 안 한 거야? 최소한 특수교사라는 직업 정도는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속이 상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 특수교사는 잘 알려진 직업이 아니니까 모를 수도 있지.

그전에도 몇 번 특수교사가 무슨 직업인지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있었기에 그저 생각 없이 웃으며 답했다.


“아, 네. 저 특수교사….”

“특수교사요?”


맞은편에 앉은 여자는 이번에는 대놓고 놀란 표정이다.

그렇기에 나는 조금 섭섭하단 식으로 이야기했다.


“아, S에게 못 들으셨어요? 저 특수교사인데 그런 것도 말 안 해주고…….”


내 말에 앞의 여자는 동공에 지진이 왔다.


'어? 잠깐만. 뭐지? 느낌이 싸늘하다. 이건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내가 이토록 차가운 이질감을 느낄 때, 앞에 있던 여자도 같은 느낌을 받았나 보다.

그녀는 갑자기 핸드폰을 켜더니 급하게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그때가 되어서야 나는 이 만남이 ‘잘못된 만남’인 걸 깨달았다.


‘아, 이 사람 K가 아니구나!’


그렇다! 이 사람은 내가 연락을 주고받던, S에게 소개받은 K가 아니다!

나는 급하게 핸드폰 메시지 창을 보았다.

그러자 K 씨가 나를 애타게 찾는 부재중 메시지를 남겨 놨었다.


[혹시 지금 어디세요?]

[저 식당 올라왔는데 어디 계신가요?ㅠㅠ]


나는 이 위급 상황에 허둥지둥 본래 소개 상대인 K를 불러왔고, 나에게 잘못 온 여성은 한참을 다른 이와 연락했다.

그리고 곧 K 씨가 올라와 내 맞은편에 잘못 앉은 여성의 옆에 서 있는 끔찍한 결과를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미안함과 황당함에 어쩔 줄 몰라서 허둥지둥거리며 K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다가 맞은편의 잘못 온 여성도 일어나야 할지 앉아야 할지 어색한 상황에 얼굴이 붉어졌다.

이렇게 굉장한 삼자대면이 지속되던 중,


갑자기 그 여성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세 칸쯤 옆, 남자 혼자 앉아 있던 테이블에 슬쩍 앉는 것 아닌가!


그 후 K가 허무하게 비어버린 자리에 앉아 어색한 인사를 했다.


“아, 안녕하세요.”

“아… 저,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저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그런데 하필 그때 또 이전 여자(?)와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


“자몽에이드와 레몬에이드 나왔습니다.”


아, 이건 K 씨가 시킨 음료가 아닌데. 어떻게 하지? 고민된다. 아이고 주님. 이 일을 어찌합니까. 무슨 시트콤에나 나올 법한 상황이 제 인생에 들이닥치다니요. 시험이 너무 과하십니다.


하지만 나는 기지를 발휘해 최대한의 센스를 발휘했다.


“저, K 씨. 혹시 자몽에이드가 좋으세요. 아님, 레몬에이드가 좋으세요?”


젠장.

(과거의 나 자신아 그게 정말 최선이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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