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랍비 Sep 13. 2024

어쩌다 불운의 아이콘-3

그래서 1번이야 2번이야?

정신없는 가운데 종업원은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근데 종업원 씨? 당신은 왜 입술을 깨물고 있죠? 네? 왜 웃음을 참고 있냐는 말입니다.


그리고 거기 옆 테이블 커플들? 웃고 있는 거 다 보이거든? 특히 내 맞은편에 얼굴을 떡하니 내놓고 혀를 잘근잘근 씹으며 웃음 참고 있는 너. 그래 당신 말이야. 좀 티 나지 않게 참던가. 아님, 대놓고 웃던가. 둘 중 하나만 해!


그리고 그쪽 종업원들 말이요.


예? 왜 거기까지 가서 이 이야기를 퍼트립니까? 다들 나와서 이쪽 쳐다보는 거 다 느껴집니다. 예? 그만 보시죠?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말로 표현 못 할 부끄러움과 미안함에 S가 소개해 준 K는 똑바로 보지도 못하겠다.

게다가 내 앞에 앉았던 여자가 갑자기 일어나 서너 테이블 옆으로 건너가 다른 남자 앞에 앉으니, 이를 지켜보는 관중은 얼마나 재미있을지 상상도 못 하겠다.


'아, 수치스러워.'


오죽 수치스러웠으면 갑자기 ‘옆에 창문을 깨고 뛰어내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내 잘못으로 희생당한 K 씨에게는 실례가 되지 않도록 해야 했다.

그렇기에 최대한 열심을 다해 그녀와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그날 뭘 먹었는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도통 생각나질 않는다.

분명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 들어가 음료까지 마셨는데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그저 등에 식은땀이 조금 많이 흘렀단 것만 기억한다.


아무튼 그렇게 ‘불운의 잘못된 만남’을 마치고 넝마가 된 마음으로 귀가하며 S에게 미안하단 말을 했다.

S는 괜찮다며 그럴 수도 있다고 나를 최대한 위로하면서도 마지막 말로 나에게 비수를 꽂았다.


“근데 나 이 이야기 다른 사람한테 해도 괜찮니?”

“어? 응. 그래.”


[아니, S야 사실 안 괜찮았어. 이제 말하는데. 그냥…. 미안하기도 하고. 너무 수치스러워서 쿨한 척 좀 해본 거야…]


나는 집에 돌아가서도 한참 진정하지 못했다. 자다가도 수치심에 이불을 차고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니, 어머니가 궁금함에 내 방에 들어오셨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결국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부모님도 너털웃음을 터트리셨다.


“그럴 수도 있지.”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나는 잠 못 들어 별 헤는 것 대신, 유튜브 영상을 헤매다가 결국 지쳐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식탁에서 아침밥을 먹고 있던 나에게 얄궂은 여동생이 다가왔다.

동생은 밥도 안 먹을 거면서 의자에 앉아 등을 벅벅 긁더니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1번이야 2번이야?”


간신히 잊은 척하고 있는데, 이놈의 동생이란 녀석을 그냥…. 하, 그저 한숨만 나온다.


“야이너이나쁜... 정말미쳐버리겠다내가엄마그걸왜말해아이고정말”




그래도 인생은 참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알다가도 모르겠다.

양식 조리 기능사 자격증 시험에 떨어진 덕에 특수교사의 길을 알았고 소개팅에 실패한 덕에 지금 아내를 만났다.

난 특수교사 일이 굉장히 재미있고 내 아내가 너무 좋다.

추후 아내 이야기를 할 일이 있으면 좋겠지만, 굳이 지금 짧게 요약해 설명하자면 내 아내는 매우 사랑스럽다.

이전 19화 어쩌다 불운의 아이콘-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