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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랍비 Sep 17. 2024

특수와의 비밀

실수한 아이

아이들 대‧소변 실수 이야기를 하니 떠오르는 일이 있다.

이제 막 2학년이 된 수성(가명)이는 아주 소심한 아이다.

다른 사람과 달리 행동하는 것도 싫어하고 자기가 튀는 걸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래서 수성이는 슬프게도 학급 밖에선 나에게 몰래 인사한다.

나는 ‘특수’ 교사이고 1학년 때와는 달리, 이제 2학년이 되면서부터 대부분의 아이들은 ‘특수’ 학급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알게 된다.

그렇기에 수성이는 우리 반에 들어올 때도 주위를 살피며 몰래 들어온다.

'특수'나 '장애'라는 딱지나 낙인을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조금 서운하지만 앞으로 더 그럴 것으로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해 본다.


그래, 아이가 점점 더 성장해가고 있다는 증거잖아? 난 괜찮아. 정말로.


그나마 아직 내가 젊고 웃는 상인 지라 덜 부끄러워하는 것 같다.

게다가 아이들과 수준 맞는 장난을 자주 하고 좋아하여 아이들이 좀 친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일전에 언급했던 대성이는 날 친근하게 여기며 가끔 아래와 같이 말실수를 하곤 한다.

*아이들도 신기하게 젊고 예쁘고 멋지게 생긴 사람을 좋아한다. 아직 30대라 다행이다. 뭐,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제 30대 막바지다. 슬퍼라.


“엄마! 나 이거 사줘! 아, 아빠! 아니, 선생님!”

“어, 그래. 그래서 내가 누구니? 엄마? 아빠? 선생님?”


아무튼 여기서 문제는 수성이가 쉬는 시간에 화장실 가는 행동조차 부끄러워한다는 거다.

어느 날인가, 아이와 같이 재미있게 수학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제 막 기초적인 더하기와 빼기를 배우던 아이에게 ‘이어 세기’ 방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어 세기란 앞의 숫자 바로 뒤에서 더하는 숫자만큼 이어 세는 방법을 말하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ex) 3+4=
교사: 3 다음 숫자가 뭐지?
학생: 4요.
교사: 그럼 4부터 네 번 세어 보면 몇이 되지?
학생: (손가락을 네 개 펼치고 접으면서 4부터 세어본다) 4, 5, 6, 7! 7이요.
교사: 맞았어. 그럼 3 더하기 4의 정답은 뭐지?
학생: 7이요.


이 방법은 단기 기억에 어려움이 있거나 집중력이 짧은 아이들에게 효과적인 덧셈 방법이다.

그렇기에 수성이와 같이 숫자를 세며 덧셈을 풀고 있는데, 갑자기 아이가 눈만 껌벅껌벅하며 수를 세지 않았다.


“수성아 뭐 해?”


나는 수성이가 잠시 집중력을 잃은 줄 알고 가까이서 세어야 할 숫자를 같이 세어주려고 했다.

그런데 바닥에 축축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응? 이게 뭐지?”


나는 바닥에 고인 액체를 한참 바라보았다.

도대체 뭘까?

그런데 더 자세히 보니 의자에서 한 방울 한 방울 비슷한 액체가 떨어지고 있었다.


‘아! 수성이가 소변 실수를 했구나!’


소극적이고 부끄럼이 많다는 점 빼고는 워낙 잘하던 아이라 내가 방심했다.

그리고 나와 장난도 잘 치니까, 나는 편하게 생각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 달리, 아이는 아직 나에게 화장실 다녀오겠다고 편히 말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훗날 예상하기에 그게 부끄러운 일인 줄 알고 계속 참으려고 했던 것 같다.

아무튼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부끄러웠을 수성이에게 침착하게 말했다.


“수성아 괜찮아?”

“네? 뭐가요?”

수성이는 일부러 모른 척까지 했다.

“음, 바지에 소변 실수를 한 거 같아서.”

“어? 이게 뭐지?”

“그러게 갑자기 마려운 느낌도 없이 나왔어?"


아이가 부끄러운지 계속 느낌도 없는데 소변이 나왔다고 연기한다.


“네. 이상하네. 뭐지?”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우선 화장실 가서 바지랑 속옷 벗고 좀 씻을까?”

“네. 아니, 근데 이상하네. 그게…”


아무리 능청스럽게 연기해도 결국 초등학생은 초등학생이다.

수성이에게 일부러 속아주면서도 안쓰럽고 귀엽다.

아이는 혼잣말로 계속 이상하다고 횡설수설 중이었고 내가 속아주자, 머리를 긁적이는 만화의 한 장면 같은 행동까지 보인다.

그렇게 나는 아이의 할머니와 전화한 후, 아이를 수건으로 감싸 중요 부위를 가려주었다.

그렇게 앉히니 수성이가 나에게 작은 말로 속삭인다.


“선생님, 그런데 우리 반은 어떻게 해요?”


자기 반에 돌아가야 하는데 지금 이 상태로 어떻게 가냐는 말이다.


“괜찮아. 선생님이 가방 가져올 거야. 여기서 바로 집에 가자.”

“그럼, 친구들한테는….”


아이가 말을 흐리며 불안한 표정을 짓는다. 자기가 소변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모양이다.


“당연히 비밀이지!”


이에 아이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뭔가 퍼뜩 생각이 났는지, 다시 내 옷깃을 붙잡았다.


“어, 엄마한테도….”

“그래, 알겠어.”


그렇게 하고는 난 아이의 어머니께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어머니, 오늘 아이가 수업 중에 소변 실수를 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부끄러운지 비밀로 해달라고 해서 어머니께서도 집에서 모른 척을 좀……]


이후로 나는 가끔 수성이와 아이들을 데리고 단체로 화장실에 다녀오는 연습을 한다.


"자, 쉬는 시간에 쉬하고 올 사람! 손? 쉬는 시간은 '쉬'하고 오라고 '쉬'는 시간인 거야! 알겠지?"


<바닥에 쉬해서 갇힌 구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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