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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랍비 Sep 19. 2024

어쩌다 힘을 숨김

주머니 몬스터 마스터

아내웹툰 작가다.

그렇기에 직업상 어쩔 수 없이(?) 게임을 좋아한다.

아내는 게임과 만화는 밀접하여 그 흐름을 알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말했다.


뭐, 어쨌거나 아내도 나와 연애할 적에는 ‘덕후’라고 커밍아웃하기 꽤 망설였을 것이다.

물론 나도 학생 때까지는 게임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그 이후 게임이라고는 가끔 친구들과 만나 피시방에 가서 컴퓨터 게임을 하던 것이 전부였으니, 추측하건대 그런 내 행보를 잘 알던 아내는 말하길 망설였을 것 같다.

그렇기에 아내가 처음 게임을 좋아한다고 말할 때 들이민 것이 바로 ‘주머니(포0) 몬스터’이다.




80에서 90년대생이면 모두 불러봤을 법한 ‘우리는 모두 친구’라는 주제곡의 만화, ‘주머니(포0) 몬스터’는 사실 게임이 원작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만화로 접하기 이전부터 도트 이미지로 먼저 나왔었고, 만화로 방영되면서 노란색의 ‘전기 쥐 몬스터’를 앞세워 흥행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인기에 힘입어 수많은 게임을 파생시켰으니, 그중 하나가 바로 증강현실(AR) 게임으로 유명한 ‘주머니몬 고(Go)’이다.

이 게임은 핸드폰으로 실제 장소에 몬스터들이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며, 그것들을 잡아 수집하는 게임이다.

아내는 연애할 적, 나에게 부끄러운 얼굴로 고백하듯 말했다.


“사실, 나는 ‘주머니몬’을 엄청 좋아해.”

“어? 정말? 나도.”


나는 초등학교 컴퓨터실에 앉아 몰래 도트 형식의 게임을 즐겼던 추억을 생각하며 말했었다.

하지만 아내는 이미 그보다 훨씬 발전한 증강현실 게임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에 한참 유행에 뒤처진 나를 반성하며 아내와 취미 거리로 할 겸, 같이 산책도 할 겸으로 같이 그 ‘주머니몬 고’라는 게임을 시작했다.

그런데 게임을 하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주머니(포0) 몬스터’ 세계관에서 꽃으로 불리는 ‘전설 몬스터’들은 혼자 잡을 수가 없다!


이 게임에서 전설 몬스터들은 절대 혼자 잡을 수 없는 구조다.

유일하게 잡는 방법은 주위 사람들과 협력하여 같이 ‘레이드’를 하는 것인데, 당시 살던 곳이 워낙 좁은 동네이다 보니 같이 게임 즐길 사람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메신저로 커뮤니티를 찾아 그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인 건, 하필 초등학생들에게도 당시 그 게임이 유행했다는 것이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내가 커뮤니티 활동을 시작하자 우리 학교 학생들도 그 커뮤니티에 들어와 같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나는 범죄자처럼 모자와 마스크, 목도리 등을 칭칭 감고 다니며 전설 몬스터들을 잡고 다녔다.

한때 커뮤니티 사람들이 나에 대해 오해를 하기도 했었지만, 결국 몇몇 아이들에게 같은 학교 교사임을 들킨 이후 사람들에게 직업을 밝히며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당시엔 왜인지 모르겠지만, 교사로서 아이들과 같은 취미활동을 하는 것이 조금 꺼려졌다.

직장에서의 일이 연장선에 있는 느낌이어서였을까?

아니면 단순 아이들에게 취미를 밝히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물론, 직장에서 귀찮은 일이 많아질까 봐 피하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부끄러움을 이기면서 아내와 같이 게임을 한 결과,

그 게임 내에서 매우 강력해졌다.


물론, 지금은 흥미를 잃어 잘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아이들이 ‘주머니(포*) 몬스터’ 색칠 공부를 뽑아달라며 나에게 그 몬스터들의 이름을 알려줄 때가 있다.

이 녀석은 누구이며 어떤 타입이고 누구누구에게 강하다.

뭐 이런 식이다.

나는 그때 모른척하며 속으로는 피식 웃는다.


‘훗, 이 애송이 녀석아. 사실 난 마스터야.’

<내 강력한 몬스터들을 보거라 초등학생 애송이 트레이너 녀석들아!큭큭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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