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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랍비 Sep 20. 2024

어쩌다 투표

당신의 소중한 권리를 행사하세요!

우리 반 아이들은 고집이 매우 세다.

일전에 썼던 대성이가 대표적인 고집쟁이의 아이콘이고 그 뒤를 잇는 몇몇 아이들이 있다.

예컨대 내가 아이들 앞에 서서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하자고 하면 다들 각자 다른 이야기들 하기 바쁠 것이다.

왜 그런지 곰곰이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는데, 아마 아이들의 인지 능력이 약 5세~7세 정도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은 그냥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는데, 가끔 우리 아이들의 고집이 문제 될 때가 있다.

하루는 ‘찾아오는 현장 체험학습’을 계획하여, 다른 반 아이들과 돌아가며 행사를 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우리 반의 일정은 1, 2교시에 현장 체험학습을 하고 3, 4교시는 반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여기서 문제 될 것이 뭐가 있나 하겠지만, 바로 어떤 영화를 볼 것인가가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된다.

*요즘은 다양한 강사님들이 찾아오는 현장 체험학습을 진행해 준다. 참 좋은 세상. 


작년에는 불도 끄고 팝콘과 콜라까지 사비로 준비하여 기껏 영화관 분위기를 만들어 미니언즈를 틀었더니 ‘둘리 얼음별 대모험을 보자’, ‘마이펫의 이중생활’을 보자는 등등의 다양한 컴플레인이 들어왔다. 

아이고 우리 고객님들 컴플레인 좀 줄여보자


결국 나는 우리 고객님들의 취향대로 둘리 얼음별 대모험을 어렵사리 찾아 보여주었다.

나는 이러한 불평과 불만을 최소화하고자 이번에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바로 ‘영화 투표제’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보고 싶은 영화를 세 가지씩 적으라고 한 뒤, OTT에서 볼 수 있는 영화 다섯 편을 추려 표를 작성했다.

그리고 아이들 각자에게 스티커를 3개씩 나눠주어 보고 싶은 영화에 스티커를 붙이라고 하여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영화 한 편을 보기로 했다.

그 결과는 아래와 같다.

<아슬아슬하게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간택되었다>


그러자 우리 반 아이들은 쉽게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만 고집하지 않고 쉽게 순응했다.


이것 참 신기한 일이 아닌가!


물론 아이들이 작년에 비해 많이 성장한 탓도 있다만, 그것보다도 자기들이 의사 결정에 직접 참여하며 과정을 보고 그것을 이해했다 보는 편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

우리 반의 대표 고집쟁이 대성이가 투표 결과를 보더니, 만화 주인공의 목소리로 말했다.


“힝, 도라에몽 남극 대모험 보고 싶은데.”

“그런데 다른 친구들이 슈퍼 마리오에 더 많은 표를 붙였잖아. 어쩔 수 없지.”

“그럼 집에 가서 엄마한테 말하자.”


대성이는 나에게 대신 학부모께 말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하도 많이 들은 탓에 잘 알아들었지만, 제대로 고쳐주지 않으면 교사 특유 직업병이 돋친다. 


“말하자? 아니면 말해 주세요?”

“아, 말해 주세요.”

“알겠어요. 그럼 집에 가서 도라에몽 보고 학교에서는 뭐 본다고 했어요?”

“슈퍼 마리오.”


혹시라도 고집이 세서 걱정인 부모는 아이가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도록 유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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