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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랍비 Sep 21. 2024

어쩌다 점쟁이

내 좌뇌가 꾸는 꿈속의 흑염룡 

얼마 전이 아내의 생일이었다.

아내는 제법 인복이 있는 모양인지, 지인들에게 많은 선물을 받았다.

그리고 그 덕을 가장 많이 본 사람은 바로 나다.

커피며 치킨이며 뭐든 나와 같이 먹으니, 아내에게 선물로 보낸 것 중의 절반은 내가 다 먹었다고 보면 되겠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바로 패밀리 레스토랑 이용권이었다. 

(처형 고마워요!)


그곳은 ‘호주풍의 미국 패밀리 레스토랑(아0백)’이었는데 요즘은 두꺼운 ‘토마호크 스테이크’를 주력 메뉴로 팔고 있다.

그렇기에 아내와 나는 신나는 마음으로 평일 점심,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뭐 먹지?”


내가 묻자 음식 먹을 때 더욱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변하는 아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우선 그곳 시그니처 메뉴인 스파이시 투움바 파스타는 꼭 먹어야지. 그리고 수프는 추가 금액 내고 한 개는 샐러드로 바꾸자. 아, 수프는 양송이수프로 하고. 거기에 추가 사이드 한 개랑 갈릭 스테이크로 하는 거야.”

“그래. 난 뭐든 좋아.”

“음, 스테이크가 살짝 고민이긴 한데…. 우선 가서 보자.”

“그래. 그나저나 우리 반 아이들은 잘 있으려나? 갑자기 보고 싶네.”

“얘들?”

“응. 하하. 방학이 이쯤 되면 아이들이 보고 싶더라.”


그렇게 우린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얇은 갈릭 스테이크 대신 두께가 어마어마한 토마호크 스테이크를 시켰다. 돈을 조금 더 내더라도 생일 선물이니 기분도 내고, 어차피 상품권이 있으니 한번 먹어보자는 심산이었다.

<우리 부부는 정말 미식가이자 돼식가이다>


그리하여 대망의 토마호크 스테이크가 나오고 맛있게 식사를 하던 도중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졌다.

이런 일이 별로 없었던 지라 빨리 다녀오자 싶어 레스토랑 밖에 있는 화장실에 급하게 다녀왔다.

그렇게 자리로 돌아가려는 찰나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어머, 선생님!” 


우리 반 대성(가명)이네 어머니다.

워낙 온화하시고 항상 대성이 교육에 힘써주시는 감사한 분이다.

그런데 너무 급작스러운 나머지 당황하여 말실수를 했다.

설마 여기서 뵐 줄은 몰랐다.


“어? 서, 선생님! 아니, 그 어떻게? 아니, 어머니! 네. 안녕하셨죠? 어떻게 오셨어요?”


어떻게 오시긴, 당연히 식사하러 오셨겠지.

분명히 차에 탈 때까지는 아이들 보고 싶다고 해놓고 막상 대성이 가족과 마주하니 헛소리가 나온다.


“저희 식사하러 왔어요. 대성아. 선생님 오셨네?”


어머니께서 우문현답을 해주셨다.

그리고 대성이를 부르자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던 대성이가 나를 힐끗 봤다.

그리고 다시 영상을 보는 것 아닌가!


‘아니, 학교에서는 그렇게 선생님, 선생님 하며 이것 해달라 저거 해달라 하던 아이가 배부르고 영상 보이니 무시하는 것인 게냐!’


아침에 보고 싶다고 말했던 나는 슬쩍 배신감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대성이가 놀란 눈으로 나를 다시 본다.


“어? 선생님? 학교야?”

“하하, 아니야. 선생님도 밥 먹으러 왔어.”

“아, 네.” 


아이가 다시 영상을 보려고 하자 어머니가 인사를 시켰다.

이에 나는 반갑게 인사하고 들뜬 마음으로 아내에게 말했다. 


“저기 우리 반 대성이 있어. 신기하네?” 




이렇듯 나는 약간의 신기가 있다.

사실 신기라고 할 것까진 없고 살면서 점쟁이 같던 순간이 몇 번 있다.

나뿐만 아니라 살면서 신기한 경험 한 두 번은 누구나 있지 않을까 싶다.


몇 살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언제이고 어릴 적 희한한 꿈을 꾼 적이 있다

꿈에서는 당시 다니던 교회가 멀리서 보였는데, 까만 옷을 입은 마녀가 빗자루를 타고 불을 지르고 있었다.

나는 두려운 마음과 동시에 마녀를 쫓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꿈속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마녀에게 이것저것 던졌다.

그러다 곧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다.

하지만 내가 너무 어렸던 터라 그 자극적인 꿈이 무서워 새벽에 엄마를 찾았다.

그러자 엄마는 평범한 어린이들이 꾸는 악몽이겠거니 하며 나를 재웠다.

그리고 아침에 나에게 놀란 표정으로 교회 소식을 전해줬다. 


“어머나, 새벽에 교회에 불이 났었대.”

“네?”

“다행히 네가 꿈에서 마녀를 쫓아준 덕에 금방 불이 꺼졌대.”


어릴 적의 나는 한기와 함께 소름이 계속 돋았던 것 같다.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고 떠올리면 느낌이 묘하다. 




어릴 적 ‘마녀 꿈’ 외에 몇몇 잔잔한 꿈들이 있긴 했다.

재수하기 전과 몸이 안 좋아 쓰러지기 전 등 안 좋은 꿈이 종종 있었지만, 그게 미래를 암시하는 건지 확실하진 않았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나서 인과가 확실한 꿈을 꾸었다.

별로 밝히고 싶진 않지만 용기 내어 말해보자면, 그건 아내를 만나기 전 사람의 바람이다.

나는 그 사람과 멀리 떨어져 공부하던 중이었는데 신기하게도 그날따라 이상한 꿈을 꿨다.


꿈에서는 그 사람이 멀찍한 창문에서 다른 남자와 단둘이 있는데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부끄러운 듯한 표정으로 옷을 스르르 벗으며 커튼을 쳤고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침대를 주먹으로 치며 잠에서 깼다.

그러고는 바로 다음 날 자기가 바람피운 걸 고백하며 헤어지자고 했다.


이렇듯 나는 가끔.

아주 가끔 특수교사가 안 되었다면, 점쟁이나 무당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말을 재미 삼아하곤 한다.

물론 나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그럴 일이 절대 없지만 농담으로 종종 그랬다.

사실 나는 혹여나 미래를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 알고 싶지 않다.

별로 알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기분이 좋지 않다.

마치 어차피 그랬을 거라며 합리화하는 나 자신이 한심해지는 기분이다. 


물론 복권 번호를 알려주는 꿈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그런 꿈은 어서 좀 오이소.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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