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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랍비 Sep 22. 2024

특수의 비법 레시피-4

평양냉면

요즘같이 더운 날 생각나는 음식이 뭐냐 물으면, 한국인 대다수가 ‘냉면’을 꼽을 것이다.

하지만 세밀하게 살펴보면, 서로가 좋아하는 ‘냉면’이라는 음식은 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지역, 맛 등으로 세부하게 나뉜다.


슴슴하여 미식가들이 좋아하는 평양냉면부터 시작하여 함흥냉면, 칡냉면, 중화냉면(중국집에서 팔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팔지 않고 한국에서만 판다), 초계국수(냉면을 차가운 면 음식이라는 가정하에) 등, 최근에 등장한 진주냉면과 사천냉면까지.

그 종류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바야흐로 대 냉면의 시대인 것이다.


시판용 다시다 육수와 동치미 육수를 섞는 칡 냉면은 언제든 먹어도 일정한 맛으로 더위를 이기게 해준다.

또한 어쩌다 중식당에 들어가 짜장면이나 짬뽕 대신 시켜 먹는 중화냉면은 고소한 땅콩 향과 신선한 해물 및 채소로 산뜻함을 준다.

거기에 초계국수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식재료인 닭을 사용하여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으며, 단백질 보충에도 매우 훌륭하다.


한편, 함흥냉면은 녹말가루로 만들어 토독토독 끊어지는 특유한 식감에 회를 얹어 먹어 정말 재밌다.

개인적으로 물냉면을 좋아하여 비빔냉면보다 물냉면을 자주 먹는다.

하지만 함흥냉면만큼은 물냉면도 맛있지만, 비빔냉면이 그 진수라고 하겠다.


그리고 진주냉면 혹 사천냉면은 꼭 좀 먹어보고 싶다.

이 진주냉면은 다른 냉면과 달리 건어물 등의 해물 육수도 사용하는데, 거기에다가 ‘육전’과 버섯 등 다양하고 푸짐한 고명이 올라간다고 한다.

이 ‘진주냉면’은 ‘사천냉면’과는 차이가 명확하다고 하는데, 나는 둘 다 못 먹어봐서 잘 모르겠다.

그냥 둘 다 육전이 올라가 있고 맛있어 보인다.

육전을 그냥 먹어도 맛있는데 면과 시원한 육수, 혹은 매콤한 비빔장이랑 먹는데 맛이 없으면 이상할 일 아닌가!


그리고 마지막, 대망의 평양냉면이다.

대한민국 미식가들이 사랑하고 예찬하는 이 평양냉면은 진한 소고기 육수와 메밀면을 사용하여 향과 식감, 심지어 시각까지 사로잡는다.

혹자는 이 평양냉면을 맛보고 ‘소를 씻은 물로 만든 육수’, ‘소를 빤 맛’, ‘무(無)맛’ 등의 말로 혹평을 한다.

하지만 한 번 먹고 두 번 먹고, 계속해서 먹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평양냉면집에 앉아 국물을 들이켜고 있다.


사실 일반적인 칡냉면을 MSG의 맛이라고 한다면, 그와 비교하는 평양냉면은 확실히 무(無)맛일 수 있다.

그러나 계속 먹다 보면 MSG가 따라가지 못하는 깊은 맛이 있다.

나는 칡냉면과 MSG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이전에도 몇 번 언급했듯, 나는 MSG와 대기업 신봉자다.

대기업은 늘 대단하며, 맛소금과 미원은 언제나 사랑스럽다.

그러나 그들이 상업화할 수 없는 평양냉면의 풍미가 있다.




나는 이러한 평양냉면에 몇몇 추억이 있다.

처음 평양냉면을 접한 것은 바로 중국의 ‘옥류관’이다.

평양냉면을 이야기하는데 왜 중국을 말하냐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옥류관은 북한의 평양냉면집이다.

실제로 평양 현지에서 가장 유명한 냉면집이 옥류관이다

이 상황을 쉽게 풀어 설명하자면 ‘옥류관’은 북한에서 중국에 프랜차이즈를 낸 음식점이다.


나는 대학생 시절에 중국 단체 여행을 떠나며 옥류관이 북한 냉면집인지도 모르고 그곳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우선 얼음이 없는 국물에 시각적 충격을 받았고 면이 쫄깃하지 않아 문화 대충돌을 겪었다.

그리고 육수의 진한 풍미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아, 이게 진짜 냉면이구나!’


남남북녀라고 하여 북한 여자 종업원분들을 기대했지만, 내게 남은 건 평양냉면밖에 없었다.




비단 대학생 시절의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나와 아내는 식도락 여행을 좋아한다.

주거지역의 맛집이란 맛집은 거의 다 찾아갔으며, 우리가 사는 지역의 평양냉면 맛집에는 주기별로 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으니, 바로 그 유명한 ‘우래옥’이다.

여러 미식가들과 각종 프로그램에서 극찬하는 평양냉면집인 ‘우래옥’!


나는 그렇게 평양냉면을 좋아하면서도 우래옥에는 한 번도 가지 못했다.

내가 지방에 살고 있을뿐더러 우래옥은 항상 웨이팅이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두세 시간에 걸쳐 우래옥의 평양냉면을 먹고 오기에는 내 심신의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이런 나를 위해 결혼기념일에 ‘서울 식도락 여행 계획’을 짰다.

 

우선 결혼기념일 전날 미리 서울에 올라가서 지방엔 없는 서울 음식점을 찾아다니고, 저녁에는 처형(아내의 언니)을 만나 같이 식사하기로 했다.

처형과 식사 때는 어느 정도 반주를 즐기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우래옥에 들러 줄 서는 일 없이 해장하는 것이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답고 찬란한 계획인가!

내 아내이지만 난 참 아내를 잘 만났다 싶었다.


그렇게 나는 우래옥을 기대하고 고대하던 도중, 전날 처형과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굉장히 심하게 병이 났다. 난생처음으로 술병에 걸렸다.


그것도 결혼기념일 당일, 우래옥에 가기로 한 그날에!


나는 새벽부터 어지럽고 울렁거리며 계속 구토를 했다.

아내가 약을 사 오고 물도 사 오며 간단한 국물 거리를 사 와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처음 그런 증상을 겪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우래옥을 향한 내 열망만은 꺾이지 않았다.

아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달래듯 말했었다.


“여보, 우리 그냥 집에 가자. 안 되겠다.”

“우래옥만 가자.”

“진짜? 갈 수 있겠어?”

“응.”


결국 나는 처형의 조언을 받고 병원에서 수액을 맞아가며 기다리는 일 없이 아침 일찍 우래옥에 갔다.

당시의 나는 구토를 너무 많이 해서 얼굴에 핏기가 안 돌고 손이 덜덜 떨렸다.

아내는 계속 걱정스러운 표정이었고 나는 애써 미소 지어 보였다.

그리고 대망의 우래옥 냉면이 나오고 나서 그 국물을 맛보았다.


“이, 이거야….”


나는 아내를 보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엄지를 치켜세워 보였다.

그러자 아내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애매한 표정으로 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던 것 같다.


아무튼 나는 그날 우래옥 냉면 남긴 일을 천추의 한으로 느껴 평양냉면을 직접 집에서 만들어 먹었다.

그래보니 꽤 그럴싸하다.

혹시라도 집에서 평양냉면을 즐기고 싶은 분이 있다면 아래 레시피를 참고하길 바란다.


<특수의 특별 평양냉면 레시피>


-재료: 소고기(양지, 사태) 1kg, 대파, 무, 김치, 달걀, 메밀면, 오이

 

1. 소고기는 각각 양지와 사태 500g씩을 준비해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둔다.

(한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또한 양지만 써도 된다)

2. 소고기와 대파, 무를 찬물에 넣고 끓인다. 이때 떠오르는 거품은 계속 건져주어야 한다.

(대파만 넣어도 상관없다)

3. 약 3시간 정도 삶았으면 소고기를 건져 냉장고에 식힌다.

4. 육수는 건더기를 건지고 그릇에 담아 냉장고에 식힌다.

5. 고명 준비

- 달걀: 달걀은 반숙이 아닌 완전히 삶아 준비한다.

- 무: 무는 얇고 길게 썰어 식초와 설탕, 소금에 절여 놓는다. 대충 먹었을 때 새콤달콤하면 된다.

- 오이: 오이는 소금에만 절여 물기를 빼놓는다.

- 김치: 묵은지를 잘 씻어 하얗게 만들어 먹기 좋게 썰어 놓는다.

6. 식힌 육수는 기름을 걷고 천으로 걸러 밝은 국물로 만든다. 거기에 물을 추가로 넣고 소금과 ‘미원’으로 간을 맞춘다.

(여기서 미원은 필수다. 이는 나의 대기업 사랑이 아닌, 실제로 거의 모든 평양냉면집에서도 미원을 쓴다고 한다)

(정확한 계량보다는 아래 사진의 국물 색을 보며, 색이 비슷해질 때까지 물을 넣어보자)

7. 식힌 고기는 얇게 썰어 고명으로 준비한다.

8. 메밀면을 삶아 씻어 그릇에 담고 위에 고명을 얹고 고기를 얹는다. 그 후 국자로 국물을 주위에 부어가며 예쁘게 담는다.

9. 취향에 따라 고춧가루나 후추를 갈아 넣으면 더 맛있다.

*위 레시피는 유튜버 육식맨님의 레시피를 참고하였습니다. 혹시 더욱 자세한 레시피를 알고 싶다면, 유튜브에 ‘육식맨 평양냉면’을 검색해 보세요.
<고춧가루나 후추를 갈아 넣으면 풍미가 더욱 산다>

이렇게 평양냉면을 만들었다면, 어복쟁반도 한 번 먹어봐야 한다. 어복쟁반은 평양냉면집에서 파는 고급 신선로 같은 느낌인데, 위의 레시피로 평양냉면을 만들었다면 복날 삼계탕 대신 어복쟁반을 꼭 먹어야 한다.



<특수의 특별 어복쟁반 레시피>

-재료: 평양냉면 만들고 남은 것들, 알배추, 부추, 버섯, 냉동만두(조금 비싸고 큰 걸로), 간장, 식초, 파, 마늘, 고춧가루, 겨자

1. 넓적한 냄비에 알배추를 조금 쌓는다.

2. 알배추 위에 평양냉면 고명으로 얇게 썰어 놓은 고기를 촘촘히 올린다.

3. 고기 위에 부추와 버섯, 만두 등을 올린다.

(버섯은 표고, 양송이, 새송이 등 모두 괜찮다. 나는 고급스러운 맛과 느낌을 주기 위해 얼린 송이버섯을 사용한다)

4. 만들어 놓은 냉면 육수에 소고기 다시다 한 티스푼, 다진 마늘 조금, 간장 한 스푼, 참치액젓 한 스푼을 넣고 만들어 놓은 어복쟁반에 살살 부어준다.

5. 소스 만들기(간장+식초+다진 파+마늘+고춧가루+겨자) - 비율은 대충 입맛에 맞게 조절하자. 귀찮으면 참소스나 들기름장도 괜찮다.

6. 따뜻해지면 고기부터 시작하여 소스에 찍어 먹자!

 

아무쪼록 이 글을 읽는 분들 모두 건강하게 더위 이겨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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