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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우 Apr 15. 2024

라흰갤러리 - <실제, 실체의 실재>

빛으로 새로운 관점을 환기하고자 하는 김선희 작가 개인전

오래간만에 라흰갤러리에서 관객 참여형 전시를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김선희 작가님의 개인전 <실제, 실체의 실재>를 다녀왔어요. 현재 용산구에 위치한 라흰 갤러리에서 오는 5월 18일까지 열립니다. 전시는 4개의 층에서 총 20여 점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고 다른 갤러리와 차별화된 갤러리의 구조를 잘 활용해서 작품들을 전시했어요.

  

이번 개인전을 통해 작가님은 라흰 갤러리라는 장소에서 빛의 현상을 공감각적으로 구현하는 장으로, 빛의 실체와 행동을 통해 삶을 둘러싼 새로운 관점을 환기하고자 합니다.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각각 층수마다 느끼는 바가 달랐어요. 3층에서는 새벽 동틀 녘이 생각났고, 1층과 B1층에서는 늦은 오후 노을빛이 생각났어요. 그리고 2층에서는 빌딩들 사이에서 화려한 네온사인을 뽐내는 도시의 밤. 이렇게 평범한 삶 속의 하루를 빛을 표현했다고 느꼈습니다.


김선희 개인전을 연 라흰 갤러리의 전경. 출처 라흰 갤러리


1. 노을빛 (1층, B1)


1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앞에는 MDF합판 위에 크리스탈 볼이 있는 작품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글라스 파우더 작품 두 점이 있습니다. 새하얀 캔버스 위로 다른 질감과 농도의 글라스 파우더가 놓여 있는 모습은 무척 몽환적이고 나의 움직임에 따라 계속해서 가변 하는 모습을 어느 한 각도, 한 시점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정말 '빛을 담은 회화'였습니다.


1층 전시실은 다른 층과는 달리 자연광을 이용하여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큰 특징입니다. 그리고 1층의 공간은 B1과 시선이 오가는 시점의 다양성, 채광창으로 유입되는 자연광, 좌식과 입식이 가능한 동선이 확보가 됩니다. 여기에 종이 발 형태의 작품을 설치해서 관객이 빛의 레이어링에 의한 현상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죠. 디퓨징 필름으로 만든 이 작품은 저한테는 늦은 오후의 노을빛을 연상하게 만들었어요.


김선희 개인전을 연 라흰 갤러리의 전경. 출처 라흰 갤러리


서 있는 위치, 보는각도에 따라 그림이 다르게 보이는 두 작품 <moment>. 출처 라흰갤러리


B1에 위치한 작품 <Moment>, <Trace of lights>. 출처, 라흰갤러리


2. 도시의 밤(2층)


어두운 전시공간에서 크리스탈 큐브를 이용하여 다채로운 프리즘의 향연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특히 프리즘을 통해 벽면에 비친 현상들은 마치 도심의 밤거리에 조명기구, 네온사인 등이 오색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오랫동안 살았었던 싱가포르의 야경 생각도 났었죠.


화이트 큐브의 구조를 통해 보는 이의 이목을 작업에 집중시키는 2층 전시실은 관객의 참여로 결과가 변할 수 있는 프리즘 작업을 마련하여 빛의 방향과 속도, 색감이 관객으로 인해 다양하게 번역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검은색 손전등으로 관객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손전등을 비추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요.


<실제, 실체의 실재 l 다가오는 파동>, 2024, 크리스탈 큐브, LED 라이트 등, 가변설치. 출처 라흰갤러리.


3. 새벽 동틀 녘의 따사로운 햇살(3층)


신발을 벗고 3층 좌식공간에 들어서면 유포페이퍼로 만들어진 작품이 빛을 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한테 이 작품이 새벽에 커튼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걸 연상하게 만들어 주었고 빛으로 아침의 시작을 알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건너편에는 한지를 이용한 관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작품이 놓여있습니다. 관객이 한지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빛의 시각화 느낌을 한지의 표면에 그대로 표현하고 손에 닿은 한지의 질감(촉감)과 바스락거리는 소리(청각)를 통해 감각이 전해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김선희 작가님은 3층 관객참여형 작품을 통해 우리가 주체자로서 현상의 순간에 참여하고, 그 순간을 실제로 응시하며, 순간을 살아가는 삶의 실체가 여기에 실재하고 있음을 느끼도록 이끌어 내었습니다.


<실제, 실체의 실재 l 공감각>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후원作), 2024, 한지, 유포페이퍼, LED 라이트 등, 가변설치.


이번 전시를 보면 작품의 캡션에 '가변 설치'가 많이 나와요. 현대미술에서 '가변설치'란 사물의 모양이나 성질이 달라질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죠. 작가의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과학, 기술, 협업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작품, 다른 시간대, 특정한 장소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새로운 장소와 맥락으로 재현되는 과정 등 현대미술이 계속 변화하고 새롭게 해석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변성이 현대미술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아놓으시면 작품들을 감상하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끝으로 빛이라는 거 우리의 삶에 참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작가님이 전달하는 메시지인 빛의 실체와 행동을 통해 삶을 둘러싼 새로운 관점을 환기(換氣)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크리스탈 볼 안에는 이번 개인전에 관하여 적힌 문장들이 영어로 적혀 있습니다.

ⓒ Jo Eun-young, Courtesy of Laheen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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