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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아로운 생각 Nov 08. 2022

퇴직하니 은행 독촉이 시작되었다

퇴직 전 나와 퇴직 후 나는 무엇이 다를까

   

몇 주 전부터 은행에서 문자가 왔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도 자주 왔다. 받아보면 “OO 은행입니다” 라고 했다. 나는 내용도 확인하지 않은 채 바쁘다며 전화를 끊었다. 매년 이즈음 오는 마이너스 통장 연장 안내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전화해야지….’ 이제껏 전화 한 통이면 연장이 가능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만기일이 다가와 은행 앱에 접속했다. 전화조차 귀찮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떴다. ‘대출 연장 불가능’. ‘이상하다, 왜 그러지? 시스템이 불안한가?’ 무얼 잘못했나 싶어 여러 번 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의아했지만 이 또한 가볍게 여겼다.      


그 며칠 후 은행 상담원에게 전화가 왔다. 기한이 다 되어 마지못해 받았는데 상담원의 안내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더는 기간 연장이 불가하니, 상품 개설 지점에 직접 방문하여 가능 여부를 상담하라는 것이었다. 개설 지점이라면 집에서 차로 한 시간 반이나 가야 하는 거리였다.   

        

이유는 내가 자격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사용하고 있던 마이너스 대출 상품은 은행과 회사 간 제휴 상품이기에 회사를 나오게 되는 즉시 자격을 잃는다고 했다. 설명을 듣는데 도미노가 생각났다. 하나가 쓰러지면 뒤이은 조각들이 잇따라 넘어지는 파국의 게임, 도미노.     


“어떻게 하면 되나요?” 당당했던 나의 태도가 일순간 바뀌었다.

“메모 가능하세요?” 상담원이 불러주는 내용을 받아 적는데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리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연장이 안 되면 대출금은 모두 기한 전에 상환하셔야 합니다” 고급스러운 단어로 표현하고 있지만, 결국 내용은 사용 중인 돈을 빨리 갚으라는 것이었다. 여러 차례 반복해서 들으려니 마음이 불편했다.

 

통화를 끊고 나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오래전 간단한 송금을 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은행에 갈 일이 없었기에 이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졌다. 일의 순서가 정리되지 않았다. 훨씬 복잡한 회사 업무는 알아서 척척 했건만, 생각할수록 뒤죽박죽 해지는 느낌이었다.     


‘마이너스 통장 연장이 안 되면 어쩌지? 그러면 안 되는데….‘ 이미 기한 연장이 되지 않은 것처럼 걱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많은 이체를 빠짐없이 잘할 수 있을까? 잔고를 미리 채워 두어야 하나? 이러다 자칫 신용 불량으로 이어지면 어떡하지?’ 난생처음 해보는 고민에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직장 생활하는 동안 다달이 통장관리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 매달 빠져나갈 송금 항목은 자동이체 등록을 해두고 생각날 때마다 계좌를 확인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웠었다. 게으른 나에게 마이너스 통장은 믿음직한 친구와도 같았기에 이제는 쓸 수 없다고 생각하니 적잖이 당황되었다.     

 

티슈 위에 받아 적은 메모를 다시 보았다. 황급히 뽑아서인지 티슈의 사각면 귀퉁이가 찢겨져 있었고, 글씨 또한 티슈의 결 때문에 중간중간 끊겨져 있었다. 그를 보며 나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퇴직을 했을 뿐인데 당연하게 누려왔던 일상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끝내, 나는 마이너스 통장 기간 연장을 하지 못했다. 은행을 직접 방문하여 상담했지만 내가 은행 창구를 통해 개설할 수 있는 상품은 없었다. “혹시 모르니 앱에서 해보세요. 가능한 상품이 있을지 몰라요” 그렇게 안내하는 은행 직원의 말이 차갑게 느껴졌다. 어릴 적 신규 통장을 만들어준 창구 직원과 수년 전 주택담보대출을 상담해준 대출계 직원의 태도와 사뭇 달랐다.   

       

은행 문을 나오는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당장은 마이너스 통장 없이 가계를 관리해야 하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수입이 예전보다 크게 줄어 새로운 루틴을 만들어 가는 상황에서 운신의 폭이 없다면 더 힘들 것 같았다. 연체를 막기 위해 일일이 가계부를 써야 하는 것도 스트레스로 느껴졌다. 성과를 위해 꼼꼼히 작성하고 점검했던 업무 스케줄러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은행 직원의 사무적인 태도도 상처가 되었다. 따지고 보면 직원은 내게 특별히 불친절하거나 무례하지 않았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었다. 문제는 내 마음이었다. 대기업 임원 시절처럼 내가 묻는 말에 밝은 얼굴로 대답하고, 왜 안 되느냐 물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오는 후배의 모습을 기대했던 걸까. 여전히 과거에 사는 듯한 나의 모습이 한심했다.    

 

무엇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나의 위치를 확인해 가는 것이 슬펐다. 퇴직 후 나는 그대로인데 나를 둘러싼 주변은 모두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여전히 건재하고 무엇이든 잘할 자신 있는데, 세상은 나를 그와 다른 관점으로 보는 것 같다. 변화하는 상황에 맞추어 나 또한 달라져야 함을 알지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바뀔 수밖에 없다는 이성적 판단과 그 방법밖에 없겠느냐는 자존심이, 내 안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중이다.     


다음 쓰러질 도미노 조각은 무엇일까.

쓰러지는 도미노 조각을 멈출 방법은 정말로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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