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죽인 사람들: 3부

by 김작가a

“그들은 이름 없이 사라졌다”

서초동의 그림자

서초동 검찰청 앞, 비 오는 오후. 낡은 우산을 쓴 한 남자가 조용히 서 있었다. 그의 이름은 정태수. 2003년, 그는 서울 구로공단에서 해고된 용접공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사람 사는 세상”을 외쳤던 그 해, 태수는 검찰의 표적이 되었다. 이유는 단 하나. 그는 노동조합의 간부였고, 불법파업 혐의로 고발당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쇠파이프를 든 게 아니라, 밥그릇을 지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태수는 구속되었고, 언론은 그를 ‘폭력노조의 앞잡이’라 불렀다. 그는 그날 이후로 다시 용접기를 잡지 못했다.

봉하마을의 약속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기 전, 부산의 노동자들과 함께 울었다. 그는 변호사 시절, 부림사건의 피고인들을 변호했고, 노동자의 편에 섰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는 검찰개혁을 외쳤다. 하지만 검찰은 달라지지 않았다. 2004년, 인천의 한 조선소에서 일하던 김은철은 산업재해로 손가락을 잃었다. 회사는 책임을 회피했고, 은철은 노조에 도움을 요청했다. 노조는 집회를 열었고, 검찰은 집시법 위반으로 간부들을 기소했다. 은철은 증인으로 출석했지만, 그날 밤 그는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단 한 줄의 기사로 끝났다.

검찰의 칼날

2005년, 쌍용자동차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다. 수백 명의 노동자가 해고되었고, 그중 박정훈은 노조 대변인이었다. 그는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고, 검찰은 그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했다. 이유는 그가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와 연대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나는 해고된 아버지입니다.” 정훈은 구속되었고, 그의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고시원으로 이사했다. 그는 2년 뒤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미 그의 삶은 무너져 있었다.

이름 없는 죽음들

2006년, 전북 익산의 한 섬유공장에서 일하던 이소영은 임금체불을 고발했다. 그녀는 노조를 만들었고, 회사는 그녀를 해고했다. 검찰은 회사의 고발을 받아들여, 그녀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했다. 그녀는 법정에서 울었다. “나는 단지 월급을 받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녀는 우울증으로 자살했다. 그녀의 이름은 어느 기록에도 남지 않았다.

노무현의 침묵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개혁을 시도했지만, 검찰은 그를 거부했다. 중수부는 여전히 권력의 중심에 있었고, 노동자들은 그 칼날 아래 쓰러졌다. 2007년, 철도노조 파업이 벌어졌고, 수십 명이 구속되었다. 그중 최민수는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우리는 기계가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입니다.” 그의 말은 기록되지 않았다. 그의 가족은 면회를 오지 못했고, 그는 출소 후 노숙자가 되었다.

그날 이후

2009년, 노무현은 서거했다. 많은 이들이 그를 추모했지만, 노동자들은 침묵했다. 그들은 그를 사랑했지만, 그 시대에 검찰 권력은 노동자를 죽였다. 이름 없이, 기록 없이, 조용히. 정태수는 여전히 서초동을 걷는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사람 사는 세상을 믿었지만, 검찰은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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