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나쁜 대통령, 노무현

by 김작가a

노무현의 정치 실패

청와대의 시계는 멈췄다. 2004년 3월 12일, 국회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찬성 193표, 반대 2표. 그 순간, 그는 권한을 정지당했고, 국정은 총리에게 넘어갔다. 관저의 창밖엔 봄이 오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겨울이었다. 언론은 연일 ‘탄핵 대통령’이라는 제목을 뽑았고, 야당은 승리를 자축했다. 그는 침묵했다.

책을 읽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 링컨의 연설문, 김대중의 회고록. 그는 자신을 백의종군하는 장수라 여겼다. “나는 지금,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생각했다. 참모들은 불안에 떨었다. 지지율은 바닥을 쳤고, 여당은 분열되었다. 거리에는 찬반 시위가 이어졌고, 시민들은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나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국민을 믿는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아직 살아 있다.”

헌법재판소는 5월 14일, 탄핵을 기각했다. 그는 다시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날 이후 그는 달라졌다. 눈빛은 더 깊어졌고, 말투는 더 단호해졌다. 실패를 예감했다. 그러나 그 실패는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2006년, 그는 개헌을 제안했다. 대통령 임기를 4년 연임제로 바꾸고, 국회의원 선거와 맞추자는 ‘원포인트 개헌’. “이대로 가면, 대통령은 임기 5년 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끝납니다. 권력은 분산되어야 합니다.” 그는 진심이었다. 그러나 정치권은 냉소로 응답했다. 야당은 “정략적 술수”라 비난했고, 여당 내부에서도 “시기상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박근혜는 말했다. “참, 나쁜 대통령.” 그 말은 언론의 헤드라인이 되었고, 그의 진심은 조롱이 되었다. 그는 대연정을 제안했다. 여야가 함께 국정을 운영하자는 파격적 제안이었다. “이 나라의 정치는 싸움만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협치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야당은 거부했고, 여당도 외면했다.

청와대 회의실에서 그는 참모들에게 말했다. “나는 실패한 대통령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실패를 감수하겠습니다. 누군가는 이 길을 걸어야 합니다.”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지만, 마음은 무너지고 있었다.

그는 시민과 직접 소통하려 했다. 인터넷을 통해 국민과 대화하고, 기자회견에서 거침없이 말했다. “기자 여러분, 질문하세요. 저는 숨기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아니라, 시민의 대표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시민사회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보단체는 그를 비판했고, 보수언론은 그를 조롱했다. 노동자들을 위해 법을 바꾸려 했지만, 노동계는 “말뿐인 개혁”이라며 등을 돌렸다.

“나는 시민의 힘을 믿습니다. 그러나 시민은 조직되지 않았습니다. 분열되어 있습니다.” 그는 시민사회가 정치의 주체가 되기를 바랐지만, 시민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였다. 청와대의 밤은 길었고, 책상 위에는 미완의 개혁안이 쌓여갔다. “나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검찰과 싸웠다. 언론과 싸웠다. 재벌과 싸웠다. 권력기관의 개혁을 시도했고, 언론의 독점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반격했다. 검찰은 측근을 수사했고, 언론은 그를 ‘위선자’라 불렀다. “이 나라의 권력은 국민이 아니라, 기득권이 쥐고 있습니다.” 그는 검찰의 인사권을 대통령에게 돌리려 했고, 언론개혁법을 추진했다. 그러나 국회는 거부했고, 여당조차 협조하지 않았다.

“우리는 너무 앞서갔습니다. 시대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눈빛은 슬펐고, 목소리는 낮았다. 그는 실패했다. 그러나 그는 싸웠다. 그리고 그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의 실패는 개인의 무능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 정치의 구조적 한계였다. 지역주의, 기득권 저항, 타협 없는 정치문화. 그는 그 벽을 넘으려 했지만, 넘지 못했다. 시대를 앞서갔다. 그러나 시대는 그를 따라오지 않았다. 그는 혼자였다. 그리고 그 혼자만의 싸움은 실패로 끝났다.

“나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실패를 기록으로 남기겠습니다. 언젠가 누군가는 이 길을 다시 걸을 것입니다.” 그의 말은 예언이었다. 그리고 그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퇴임 후, 그는 봉하마을로 돌아왔다. 낡은 기와집, 논과 개울,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흙냄새. 다시 농부가 되었다. 아침이면 논두렁을 걷고, 오후엔 책을 읽었다. 사람들은 그를 찾아왔고, 그는 웃으며 맞았다. “대통령이 아니라, 노무현입니다.” 그렇게 그는 다시 시민이 되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검찰은 그를 다시 불러세웠고, 언론은 다시 그를 조롱했다. 측근의 비리, 가족의 계좌, 그리고 ‘논두렁 시계’라는 단어가 그의 이름을 뒤덮었다. “나는 떳떳합니다. 그러나 가족까지 끌어들이는 건 너무합니다.”

청와대보다 더 깊은 고독이 봉하마을을 감쌌다. 그는 산을 올랐다. 부엉이바위에 앉아, 그는 생각했다. “나는 실패했는가? 나는 무엇을 남겼는가?” 그 질문은 그를 괴롭혔다. 그리고 그 질문은 그를 부엉이바위로 이끌었다.

2009년 5월 23일, 그는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울었다. 거리에는 노란 풍선이 날았고, 시민들은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죽음은 하나의 시대를 끝냈고, 동시에 새로운 질문을 남겼다. “우리는 왜 그를 지켜주지 못했는가?”

그의 죽음 이후, 사람들은 그를 다시 읽었다. 그의 연설, 그의 글, 그의 눈빛. 그는 실패했지만, 그 실패는 시대를 흔들었다. 그는 무너졌지만, 그 무너짐은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질문은 남았다.

정치는 무엇인가. 시민은 누구인가. 우리는 왜 바뀌지 않는가.

그의 유산은 제도보다 질문이었다. 그는 법을 바꾸려 했지만, 결국 사람을 바꾸려 했다. 그는 구조를 흔들려 했지만, 결국 마음을 흔들었다. 그의 실패는 제도적 개혁의 실패였지만, 그의 존재는 정치의 본질을 다시 묻는 계기가 되었다.

문재인은 그의 친구였다. 그리고 그의 후계자가 되었다. 그는 청와대에 들어가며 말했다. “노무현의 꿈을 이어가겠습니다.” 사람들은 기대했고, 또 실망했다. 그러나 그 기대와 실망 모두, 노무현이 남긴 흔적이었다.

그는 바람이었다. 바람처럼 왔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그가 지나간 자리엔 흔적이 남았다. 그 흔적은 실패였고, 동시에 희망이었다.

그리고 지금, 바람은 다시 불고 있다.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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