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과 검찰 권력의 정치화

by 김작가a

침묵의 사내

그는 늘 조용했다. 말이 없었다. 아니, 말을 아꼈다. 서울중앙지검의 복도 끝, 어두운 조명 아래 그의 사무실은 늘 닫혀 있었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다만, 누군가가 그의 방에 들어가면, 나올 때는 표정이 달라져 있었다. 어떤 이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또 어떤 이는 창백한 얼굴로 나왔다. 윤석열. 검찰 조직 내에서 ‘칼잡이’로 통하던 사내. 그는 법과 원칙을 입에 달고 살았고, 그 말은 때로는 정의의 이름으로, 때로는 복수의 언어로 변주되었다. 그는 적에게는 무자비했고, 아군에게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 침묵은 때로는 방패였고, 때로는 칼날이었다.

대장동의 유령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건이 터졌다. 수천억 원의 서민 예금이 증발했고, 그 돈의 일부는 어딘가로 흘러들어갔다. 수사팀의 일원이었던 윤석열은 당시 김만배와 관련된 핵심 인물들을 기소하지 않았다. “수사 범위 밖이었다”는 해명이 있었지만, 훗날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 불거지며 이 결정은 다시 조명받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론이 떠들고, 정치권이 소리쳐도 그는 입을 다물었다. 침묵은 그에게 방패였고, 동시에 무기였다. 그는 말 대신 수사로 말했고, 기소로 대답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누군가는 쓰러졌고, 누군가는 살아남았다.

조국의 시간

2019년, 조국이라는 이름이 전국을 뒤흔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부 장관. 개혁의 상징이자, 진보 진영의 아이콘. 그러나 그의 가족을 둘러싼 의혹이 불거지자, 윤석열은 움직였다. 서울대, 부산대, 사모펀드, 사학재단. 수사는 전방위로 확산되었고, 언론은 연일 ‘조국 보도’로 도배되었다. 윤석열은 다시 침묵했다. 기자들의 질문에도, 정치권의 압박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법대로 했다고 믿었다. 아니, 법대로 했다고 믿게 만들었다. 그 순간, 그는 단순한 검사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정치의 중심에 서 있었다.

추미애와의 전쟁

조국 사태 이후, 법무부 장관이 바뀌었다. 추미애. 강단 있는 정치인이자,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 그녀는 검찰개혁을 외쳤고, 윤석열을 겨냥했다. 수사지휘권 발동, 감찰, 직무배제.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의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윤석열은 반격했다. 법원에 직무정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는 다시 돌아왔다. 검찰청 앞에서 그가 남긴 말은 짧았다. “헌법정신과 법치주의를 지키겠다.” 그 말은 선언이었다. 그는 더 이상 단순한 공무원이 아니었다. 그는 권력의 중심으로 향하는 길목에 서 있었다.

대선 출마

2021년 3월, 그는 검찰총장직을 전격 사퇴했다.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법 정신과 법치주의를 지켜야 한다.” 그 말은 곧 정치 선언이었다. 그리고 6월 29일,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그는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무너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겠습니다.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의 집권 연장을 막아야 합니다.” 그의 말은 단호했고,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공정’과 ‘상식’을 외쳤고, 많은 이들이 그를 ‘정의의 사도’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검찰 권력의 정치화라는 거대한 흐름이 도사리고 있었다.

윤석열 사단의 부상

그가 정치에 뛰어들자, 검찰 내 윤석열 사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동훈, 이원모, 이시원, 신자용. 그들은 검찰에서 함께 일했던 동지들이었고, 이제는 정치의 전면에 나섰다. 대통령실, 법무부, 공직기강비서관실. 검찰 출신 인사들이 요직을 차지했다. 검찰은 더 이상 수사기관이 아니었다. 그것은 권력의 첨병이었고, 정치의 도구였다. 기소는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이 되었고, 수사는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되었다. 윤석열은 검찰 권력을 등에 업고 정치를 시작했고, 그 권력은 이제 청와대의 심장부에 자리 잡았다.

권력의 사유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 권력기관의 재편이 시작되었다. 감사원은 야당을 겨냥한 감사에 나섰고, 국군방첩사령부는 민간인 사찰 논란에 휘말렸다. 경찰은 검찰의 지휘 아래 놓였고, 국정원은 침묵했다. 권력은 한 손에 집중되었고, 견제는 사라졌다. 야당은 이를 ‘검찰 독재’라 불렀다. “내란 세력의 재집권”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오갔다. 그러나 윤석열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자신이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게 만들었다.

국민의 선택

2022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윤석열은 0.73%포인트 차이로 승리했다. 역대 가장 박빙의 승부. 그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검찰 출신 대통령. 전례 없는 일이었다. 그의 당선은 곧 검찰 권력의 정치적 승리였다. 수사와 기소, 침묵과 언론 플레이, 그리고 ‘공정’이라는 서사를 무기로 그는 권력을 쟁취했다. 그러나 그 권력은 민주주의의 원칙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개혁의 역설

윤석열 정부는 ‘공정과 상식’을 내세웠지만, 현실은 달랐다. 검찰은 여전히 권력의 중심에 있었고, 야당 인사들은 줄줄이 수사 대상이 되었다. 반면, 여권 인사들의 비리는 묵인되거나 축소되었다. 검찰개혁은 좌초되었고, 언론은 위축되었다. 시민사회는 분열되었고, 정치적 갈등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윤석열의 정치화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제도의 문제였고, 구조의 문제였다.

남겨진 질문들

윤석열은 여전히 말이 없다. 그는 여전히 ‘법과 원칙’을 말하지만, 그 법과 원칙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는다. 그의 정치화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검찰 권력은 이제 정치의 한 축이 되었고, 그 흐름은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묻는다. 권력기관은 어디까지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가? 검찰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리고, 윤석열 이후의 대한민국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그의 침묵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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