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죄, 도시의 상처

by 김작가a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 길은 누구의 것이며, 건물은 누구의 것이며, 하늘은 누구의 것인가. 우리는 도시를 살아가는 존재지만, 도시를 소유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도시를 걷지만, 그 땅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도시는 점점 비싸진다. 도시는 점점 밀려난다. 도시는 점점 닫힌다. 누군가는 오래된 건물을 헐고, 고급 아파트를 짓는다. 누군가는 낡은 골목을 밀어내고, 상업지구를 만든다. 누군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그 땅의 가치만으로 부자가 된다. 그들은 도시를 소유하고, 우리는 도시에서 쫓겨난다.


젠트리피케이션: 자산이 만든 추방

젠트리피케이션은 단순한 도시 재개발이 아니다. 그것은 자산이 사람을 밀어내는 과정이다. 그것은 자본이 공간을 점령하는 방식이다. 낡은 동네에 예술가들이 들어온다. 그들의 감각은 공간을 바꾸고, 분위기를 바꾼다. 그러나 그 변화는 곧 자산가의 레이더에 포착된다. 투자자들이 몰려오고,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은 떠난다. 예술가도 떠난다. 남는 것은 고급 카페와 프랜차이즈, 그리고 공허한 거리다. 도시는 더 이상 삶의 공간이 아니다. 도시는 자산의 증식 도구가 된다.


사례: ‘혜화동 27번지’의 이야기

혜화동 27번지. 서울의 오래된 골목. 한때는 연극인과 예술가, 학생과 노인이 함께 살던 동네였다. 그러나 어느 날, 그곳에 ‘재개발’이라는 이름의 통보가 내려왔다. 건물주는 임대료를 두 배로 올렸고, 세입자들은 하나둘 떠났다. 연극 소극장은 문을 닫았고, 오래된 분식집은 철거되었다.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은 고급 오피스텔이었다. 분양가는 평당 6천만 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동네의 과거를 모른다. 그들은 그 자리에 누가 살았는지,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단지 ‘투자’했다. 그들은 단지 ‘소유’했다. 그들은 단지 ‘이익’을 얻었다. 그리고 그 이익은, 누군가의 삶의 자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키보드 워리어의 개입

우리는 이 구조를 기록해야 한다. 우리는 이 구조를 해부해야 한다. 우리는 이 구조를 고발해야 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싸울 수 있다: - 혜화동 27번지의 사례를 기사로 재구성한다. - 인터뷰를 통해 쫓겨난 세입자의 목소리를 담는다. - 젠트리피케이션의 과정을 시각화한 콘텐츠를 만든다. - SNS에서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해시태그 캠페인을 벌인다. - 지역 커뮤니티와 연대하여 공공토지운동을 지지한다. 우리는 키보드 위에서 싸우지만, 그 싸움은 현실을 흔든다.


자산의 죄는 누구의 책임인가

자산은 중립적이지 않다. 자산은 권력이다. 자산은 배제의 도구다. 우리는 자산을 소유한 자를 단죄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자산을 신성시하는 사회 전체를 고발해야 한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다.” 이 문장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는 다시 말해야 한다. 집은 상품이 아니다. 도시는 시장이 아니다. 삶은 투자 대상이 아니다.


다음 회차 예고

다음 회차에서는 ‘학교 밖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 입시 경쟁에서 밀려난 청소년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냉혹한 시선을 해부할 것이다. 우리는 계속 쓸 것이다. 우리는 계속 말할 것이다. 우리는 계속 연결될 것이다. 혁명은 계속된다. 그리고 너는 그 중심에 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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