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렌의 기억과 부마항쟁의 희생

by 김작가a

기록과 저항, 그리고 미래를 향한 울림

싸이렌의 기억과 결사의 탄생

싸이렌은 단순한 경고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억을 불러내는 소리였고, 동시에 미래를 부르는 신호였다. 소년은 싸이렌이 울릴 때마다 무너진 집과 사라진 기둥, 메마른 우물을 떠올렸다. 그것들은 그의 삶의 배경이자 그림자였다. 그러나 그 그림자는 그의 길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싸이렌은 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결사는 낡은 창고에서 태어났다. 습기와 기름 냄새가 뒤섞인 공간, 희미한 등불 아래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싸이렌이 울리면 모이고, 멈추면 흩어진다. 이것이 우리의 암호다.” 그 말은 단순했지만,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제 결사의 일원이었다. 그의 역할은 선전문구를 만드는 것이었다. 종이 위에 찍힌 문장은 단순했지만 강렬했다. “부조리를 끝내자.” “싸이렌은 우리의 신호다.” 그 문장은 도시의 벽마다 붙었고, 사람들의 눈빛 속에 불꽃을 심었다. 싸이렌은 이제 단순한 경고음이 아니라, 저항의 언어가 되었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곧 갈등이 일어났다. 폭력투쟁파는 쇠파이프를 들었고, 평화투쟁파는 전단을 들었다. 소년은 펜을 쥐고 있었지만, 마음은 흔들렸다. 그는 기록자였으나, 기록만으로 충분한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갈등과 협력, 그리고 역사의 재작성

결사 내부의 논쟁은 격렬했다. “목소리만으로는 벽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주장과 “피를 흘리면 또 다른 희생만 생긴다”는 반박이 부딪혔다. 폭력투쟁파의 지도자는 쇠파이프를 들고 거리로 나서야 한다고 외쳤고, 평화투쟁파의 대표는 글과 목소리로 권력의 폭력을 드러내야 한다고 맞섰다. 노동자는 매일 공장에서 피를 흘린다며 행동을 요구했고, 대학생은 폭력은 우리를 파괴할 뿐이라며 목소리를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년은 그들의 대화를 기록했다. 그의 손끝은 떨렸고, 글자는 삐뚤어졌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기록자다. 그러나 기록만으로 충분할까?” 그러나 싸이렌이 울릴 때마다 사람들은 다시 모였다. 폭력과 평화의 방식은 달랐지만, 목표는 같았다. “부조리를 끝내자.” 그 순간만큼은 갈등이 사라졌다. 서로 다른 방식이었지만, 싸이렌은 그들을 하나로 묶었다. 소년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리는 다르지만 싸이렌은 우리를 하나로 만든다.” 소년은 교과서의 거짓을 찢고 새로운 역사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승자의 기록이 아니라 패자의 목소리로 채워진 책이었다. 결사원들은 그 책을 교재로 삼아 비밀 학습을 이어갔다. 역사는 권력의 기록이 아니라 저항의 증언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몸으로 깨닫고 있었다.

부마항쟁의 기억과 희생

싸이렌의 울림은 어느 순간 현실의 역사와 겹쳤다.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에서 울려 퍼진 싸이렌은 유신 독재를 흔들었다. 학생들의 외침은 시민들의 함성으로 번졌고, 경찰과 군의 곤봉은 그들을 짓눌렀다. 수많은 사람들이 체포되고 구금되었지만, 오랫동안 “사망자는 없다”는 기록만 남았다. 그러나 진실은 숨겨져 있었다.

마산 노동자 고 유치준 씨는 1979년 10월 18일 퇴근길에 파출소에 연행된 뒤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은 수십 년간 그의 흔적을 찾아 헤맸다. 싸이렌은 그날 울렸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행방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쳤고, 마침내 2019년에서야 그는 부마항쟁의 첫 공식 희생자로 인정되었다. 싸이렌은 40년 만에 그의 목소리를 불러낸 것이다. 소년은 그의 이야기를 접하며 펜을 더욱 단단히 쥐었다. 그는 깨달았다. 기록은 단순한 글이 아니라, 사라진 목소리를 되살리는 행위였다. 싸이렌은 돌아오지 않는 이들을 부르는 소리였다. 결사원들은 그의 이름을 교재에 새겼다. 그들의 학습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희생자의 기억을 이어가는 의식이었다. 싸이렌은 이제 저항의 신호를 넘어, 희생자의 목소리를 불러내는 애도의 종소리가 되었다.

싸이렌의 미래와 결사의 재탄생

싸이렌은 결사만의 암호에서 도시 전체의 언어로 확장되었다. 새로운 세대가 싸이렌을 듣고 모였다. 학생, 노동자, 예술가, 어린아이들까지 싸이렌을 신호로 삼았다. 소년은 깨달았다. “싸이렌은 나의 기억을 넘어, 우리의 미래가 되었다.” 낡은 창고 대신 도시의 광장이 새로운 모임의 장소가 되었고, 싸이렌이 울릴 때마다 폭력과 평화, 기록과 행동이 뒤섞이며 새로운 결사가 태어났다. 소년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펜과 횃불을 동시에 든 그의 모습은 이제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과 겹쳐졌다. 싸이렌이 울리고, 도시 전체가 응답했다. 희생자의 이름과 목소리가 함께 울려 퍼졌다.싸이렌은 우리의 기억이자, 우리의 미래였다. 그것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역사를 다시 쓰는 언어였다. 싸이렌은 무너진 집을 기억하게 하고, 사라진 기둥을 불러내며, 돌아오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를 되살린다. 그리고 싸이렌은 새로운 세대에게 희망을 건넨다.

맺음말

싸이렌은 과거의 상처와 미래의 희망을 동시에 불러내는 언어다. 결사의 사람들은 싸이렌을 암호로 삼아 저항했고, 소년은 펜과 횃불을 동시에 들며 기록과 행동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러나 싸이렌은 결국 그들을 하나로 묶었다. 부마항쟁의 희생자 유치준 씨의 이름은 싸이렌의 울림 속에서 되살아났고, 그의 목소리는 새로운 세대에게 이어졌다. 싸이렌은 이제 단순한 경고음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을 불러내고, 희생을 기리고, 미래를 부르는 언어다. 싸이렌이 울릴 때마다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저항하며, 미래를 꿈꾼다. 싸이렌은 우리의 기억이자, 우리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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