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은 성찬을 **‘화체설’**에 따라 이해합니다. 즉, 사제가 축성한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성찬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실제 현존을 경험하는 신비한 사건이며, 반드시 사제에 의해 미사 중에 집례되어야 합니다.
반면 개신교는 대체로 **‘기념설’**을 따릅니다. 성찬은 예수님의 희생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상징적 행위로 이해되며, 빵과 포도주는 예수님의 몸과 피를 ‘의미’하는 것이지, 실제로 변화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성찬은 공동체의 신앙 고백과 연합의 상징으로 강조됩니다.
그렇다면,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는 신자들—특히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에게 이 불참은 어떤 의미일까요?
비자발적 불참 (예: 질병, 장애, 격리, 교회 접근의 어려움 등)은 신앙의 결핍이 아니라, 은혜의 통로에 일시적으로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외형적 참여보다 마음의 중심과 믿음의 고백을 보시기에, 이런 경우 성찬의 은혜는 다른 방식으로도 공급될 수 있습니다.
자발적 불참 (예: 회개하지 않은 죄, 신앙적 갈등, 공동체와의 단절 등)은 때로 자기 성찰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에서 “자신을 살피고” 성찬에 참여하라고 권면했죠. 이때의 불참은 회복을 위한 준비 과정일 수 있으며, 성찬의 깊이를 더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반복적이고 장기적인 불참은, 특히 공동체와의 단절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신앙의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성찬은 단지 개인의 경건을 위한 예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와의 연합을 확인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