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오한 듯 가벼운 종교 수다

by 김작가a

제15화

“종교 없는 신앙은 가능한가요?”

마당에 낙엽이 툭 떨어진다. 경전 없이 믿는다는 건 가능한 걸까—누군가가 먼저 묻기 시작했다. 심리학자가 그 물음을 붙잡는다. 심리학자: 아이들은 교리를 몰라도 기도합니다. 그건 제도나 구조보다 먼저 작동하는 믿음입니다. 신앙은 종종 종교보다 먼저 시작되죠. 문제는… 계속 혼자 믿어야 할 때 생깁니다.

철학자는 고개를 들었다. 철학자: 저는 신앙을 하나의 ‘존재 감각’이라 봅니다. 종교는 그 감각을 설명하고 구조화한 체계죠. 구조 없이는 감각이 사라지기도 하고, 구조 속에서는 감각이 굳어지기도 합니다. 둘 사이의 긴장이 중요하죠.

스님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스님: 종교 없는 신앙이라… 그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혼자 걸어도 믿음은 흔들릴 수 있습니다. 다만, 스스로의 고요를 유지하는 길은 어렵습니다.

신부가 가만히 묵주를 매만지며 말했다. 신부: 저는 공동체를 사랑합니다. 예배의 순간, 함께 부르는 찬송은 믿음을 넘어서는 힘이 있죠. 하지만 그 믿음이 제도 없이는 자라지 않는다면… 신도 고립될 겁니다.

목사가 찻잔을 돌리며 말한다. 목사: 종교 없는 신앙은 종종 상처 때문입니다. 제도 안에서 다친 사람들이 믿음만 품고 나오는 경우를 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교리보다—따뜻한 창문 하나죠. 신은 교회 안에만 계시지 않으니까요.

유전공학자는 차분하게 덧붙인다. 유전공학자: 집단적 신앙은 문화와 유전자 모두에 영향을 줍니다. 그런데 단독적 신앙은… 생존적 이점보단 감정적 회복에 가까워요. 신앙이 구조 없이 오랫동안 유지되려면, 그건 본능이 아니라 선택이어야 합니다.

판사가 말을 잇는다. 판사: 제도는 규칙을 만들고, 신앙은 동기를 줍니다. 둘 다 필요하지만, 의무로부터 떠나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건 아주 단단한 신앙입니다. 그런 사람은 법보다 깊은 질서를 품고 있지요.

그리고 그날의 대화 끝에, 조용히 앉아 있던 화석학자가 입을 연다. 화석학자: 가장 오래된 인간 유적을 보면, 공동 매장이 먼저 시작된 시점에 기도 흔적이 나옵니다. 그땐 종교라는 제도는 없었어요. 그저… 죽음 앞에서 무언가를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마음. 신앙은 아마—말보다 먼저, 공동체보다 먼저 생겼습니다. 우리는 자주 구조에 의존하지만, 그 구조보다 먼저 온 것은 경외였습니다. 그날, 종교는 정의되지 않았고 신앙은 묻히지 않았다. 제도 없는 믿음은 불안했지만, 그 믿음이 아직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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