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오한 듯 가벼운 종교 수다

by 김작가a

제17화

“질병은 죄의 은유인가요?”

가을 끝자락, 산사 마당에 부는 바람이 조금 차가웠다. 그날 대화의 시작은 누구도 쉽게 하지 못했다. 질병과 죄를 연결하는 순간, 책임의 무게가 따라오기 때문이었다. 의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의사: 병은 몸에서 시작하지만, 마음을 흔듭니다. 어떤 환자는 자신이 병든 이유를 죄에서 찾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감정이 더 아픕니다. 질병은 설명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죄는 설명을 너무 많이 요구하죠.

신부가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신부: 과거엔 질병이 하느님의 징벌이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단순하게 볼 수 없지요. 질병은 죄의 은유라기보다는— 약함의 자리에서 피어나는 자비의 가능성 아닐까요?

목사는 조용히 찻잔을 닦는다. 목사: 고통은 죄보다 깊고 넓습니다. 병든 자에게 먼저 손을 내미신 예수님의 행적을 보면, 질병은 하나님의 은혜가 도달하는 가장 낮은 자리입니다.

스님은 담담하게 차를 따른다. 스님: 고통은 존재의 일부입니다. 업이 중하고, 그것이 질병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어요. 그렇다고 죄라 부르진 않습니다. 병은 멈춤의 기회입니다. 자기를 들여다보고, 괴로움을 넘어설 수행의 시작이죠.

심리학자는 노트를 정리하며 말했다. 심리학자: 병든 자아는 죄를 상상하기 쉽습니다. 내 탓일까, 내가 뭘 잘못했나— 이런 생각은 우울과 불안의 그림자입니다. 그래서 저는 묻습니다. 몸이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스스로를 벌하고 있는 건 아닌지.

철학자는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철학자: 질병을 죄의 은유로 보는 건 서사적 사고의 흔적입니다. 우리는 인과를 찾고, 구조를 세우죠. 하지만 질병은 의미 없이 찾아올 때도 있습니다. 그 의미 없음조차…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겠죠.

유전공학자는 말을 보탰다. 유전공학자: 질병은 유전자에서 비롯되지만, 그 고통은 문화와 해석에서 자랍니다. 죄와 병이 연결되는 순간은 과학적이지 않지만… 인간적입니다. 저는 그 연결을 끊기보다, 신중히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판사는 찻잔을 내려놓는다. 판사: 법은 질병을 다루지 않지만, 어떤 죄는 병처럼 퍼지고, 어떤 병은 죄처럼 판단받기도 합니다. 저는 증거보다 먼저—고통을 바라보려 노력합니다. 죄도 병도, 회복이 필요하다는 점에선 닮았거든요.

그리고 그날, 조용히 앉아 있던 화석학자가 말을 꺼낸다. 화석학자: 아주 오래된 인간 화석엔 손을 다친 채 치유된 흔적이 있습니다. 그건 공동체가 그를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죠. 병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입니다. 죄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침묵 속에서 무너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누군가가 내 곁에 있었다면— 그건 은유가 아닌, 기억 속 치유의 구조입니다. 그날, 질병은 벌이 아니었고, 죄의 비유도 아니었다. 그건 사람이 서로를 놓지 않았던 기억의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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