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듯 가벼운 종교 수다

by 김작가a

제25화

“신을 안다는 건 무엇일까요?”

산사의 저녁, 달이 느리게 떴다. 말로는 닿지 않는 존재를 "안다"고 말하는 순간—대화는 조용히 시작되었다. 철학자가 먼저 입을 연다. 철학자: 저는 ‘신을 안다’는 말보다, ‘신에 대해 질문할 줄 안다’는 말이 더 정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은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의 외부에서 스며드는 감각입니다. 앎은 단어가 아니라… 열림이지요.

신부가 찻잔을 들며 말을 이었다. 신부: 하느님을 안다는 건 그분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듣고, 침묵 안에 머물고, 고난 중에도 사랑을 붙잡는 사람— 그 사람이 하느님을 ‘아는 자’라 믿습니다.

목사는 조용히 성경을 펼친다. 목사: 저는 신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함께 걸어간다’고 믿습니다. 이해는 틀릴 수 있지만, 동행은 그 자체로 진실입니다. 신을 아는 건—그분과 같은 방향으로 걷는 삶 아닐까요.

스님은 담담하게 차를 따른다. 스님: 부처를 안다는 건 그분의 고요를 내 안에서 느끼는 일입니다. 신도 그렇지 않을까요. 알고 있다는 말은 집착일 수 있어요. 그 대신… 닮아가는 마음이 남습니다.

심리학자는 차분히 말을 보탠다. 심리학자: ‘안다’는 건—경험적으로 설명 가능한 구조입니다. 그런데 신은 종종 그 틀 바깥에서 느껴지죠. 그래서 사람들은 ‘신을 안다’고 말하면서도 자주 눈물을 흘립니다. 그건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진입’입니다.

유전공학자는 메모를 정리하며 말을 잇는다. 유전공학자: 유전자의 구조를 ‘안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생명의 전체를 ‘안다’고 말할 땐, 그건 틀릴 수 있는 이야기죠. 신은 생명을 넘어선 존재라면— 우리는 다만 신의 흔적을 해석할 뿐입니다. 앎은 가능이 아니라, 가까움일지도요.

의사는 고개를 들며 말했다. 의사: 환자가 회복되는 순간, 그 눈빛에서… 어떤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떠오릅니다. 그게 저는—신에 가까운 감각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신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순간… 신이 저를 아셨던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판사는 말끝을 정리하며 말했다. 판사: 법은 정확해야 하지만, 신은 틀릴 수 있는 해석을 품으십니다. 신을 아는 건, 누군가를 판결하지 않고도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그건 앎이라기보다—품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화석학자가 달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화석학자: 오래된 생명의 흔적을 복원할 땐, 우리가 ‘이 생명은 이랬을 것이다’라고 말하죠. 하지만 그건 추정이지… 확신은 아닙니다. 신을 ‘안다’는 말도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신의 흔적을 보고 그 존재를 상상합니다. 그 상상이 고요하게 우리를 바꾼다면— 그건 앎이 아니라, 변화된 존재의 상태입니다. 그날, 신을 안다는 말은 조심스럽게 정리되었고 앎은 정의가 아니었고, 시간과 사랑, 동행과 침묵 속에서 그저… 함께 있다는 감각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심오한 듯 가벼운 종교 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