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한국에 여전히 필요할까?

[영어카피라이터의 시선]

by Richard Kim
한국은 놀랍도록 아름다운 고유 언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영어를 쓸 새로운 구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빌려온 화려함

2012년 서울에 처음 왔을 때, 영어는 온 사방에 만연해 있었다. 버스정류장의 아파트 광고엔 “RICH HUMAN ELEGANCE”라는 문구가, 항공사 광고판에는 “PRESTIGE TRAVEL LIFESTYLE”가 번쩍였다. 당시 한국에서의 영어는 의미를 담은 문장보단 특정 ‘감성’을 상징하는 장식에 가까웠다. 한국인들은 영어 문구의 의미를 곱씹기보다는 ‘럭셔리’, ‘프레스티지’를 느끼는 데 집중하는 듯 했다.

그 시절 한국에서 영어는 그 의미와 관계없이, 반짝이는 멋과 위신의 상징이었다.


의미의 시대

하지만 대중은 변한다. 사람들은 영어가 단순한 장식을 넘어, 진짜 가치를 가진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수많은 부모가 아이비리그 진학의 꿈을 꾸며 자녀를 영어 학원에 보냈고,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눌 때, 예전보다 대화가 훨씬 부드럽게 이어지는 건 내 한국어 실력이 나아진 덕분이 아니라 한국인들이 영어의 미묘한 뉘앙스를 잡아내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클라이언트들은 내 영어 카피 속 미세한 뉘앙스까지 읽어낸다. 버스정류장 광고의 영어도 확실히 나아졌다. 사람들은 더는 장식에 만족하지 않고, 이제 그 안의 ‘내용’을 들여다 본다.


빛 바랜 장식

한국 대중이 영어의 의미에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단지 ‘있어 보이려는’ 흉내에 머물던 시대는 서서히 저물었다. 이제 사람들은 그럴싸한 장식보다, 실제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를 본다. 이는 단순한 트렌드 변화가 아니다. 한국인들이 ‘무엇을 말하느냐’만큼이나 ‘누구에게 말하느냐’를 새롭게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문화적 각성의 신호다.

눈치챘는가? 몇 년 전부터 럭셔리 자동차 광고에서 외국인 성우의 목소리가 사라졌고, 영어 슬로건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연이 아니다. 내가 처음 도착한 이후로 한국은 글로벌 문화 강국으로 자리잡았고, 이제는 세계의 흐름을 따르는게 아니라 만들어내는 주역이 됐다. 한국은 더 이상 화려함을 빌려올 필요가 없다. 오히려 전 세계가 한국에서 빌려가는 시대니까.


‘Fantastic Baby’에서 ‘아파트’까지

이 변화는 음악에서도 두드러진다. 서울에 처음 왔을 무렵 빅뱅이 ‘Fantastic Baby’’를 발매했었다. “Wow, Fantastic baby!”는 귀에 잘 들어오긴 했지만, 어딘가 서구 감성을 어설프게 따라 한 느낌이 남았다. 이 노래를 듣는 한국인들에게 영어 가사는 그저 이국적인 맛을 내기 위한 양념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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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24년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내놓은 콜라보 곡 ‘APT.’에선 ‘apartment”가 아닌, 너무나 명확한 한국어 발음의 ‘아파트’가 반복된다. 중독성 강한 이 곡은 글로벌한 청중을 겨냥했으나 동시에 당당히 ‘한국적임’을 내세운다. 이 새로운 트렌드는 이제 한국어 자체가 글로벌 시장에서 ‘쿨’한 언어가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관객이 세계로 확장되면서, 언어 전략도 함께 진화한 것이다.


영어의 두 번째 챕터

그렇다고 한국에서 영어가 사라진 건 아니다. 실은 영어 카피라이터인 나 역시 여전히 할 일이 많다. 특히 서울에는 브랜드 경험, 글로벌 캠페인, B2B 브랜딩까지 전담하는 영어 카피 전문가들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다만 영어가 필요한 이유는 분명 달라졌다. ‘누구에게 말하느냐’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1세대 K팝이 영어를 장식처럼 쓰던 시절부터, 지금 글로벌 스타들이 ‘아파트’ 같은 한국어를 입에 올리기까지. 시대는 변해도 본질은 늘 같았다. 핵심은 ‘무슨 말을 하느냐’보다 ‘누가 듣고 있느냐’였다. 지금 한국에서 영어는 더 이상 멋을 위한 언어가 아니다. 특정한 관객과 연결되기 위한, 분명한 목적을 가진 다리다.


연결을 위한 영어

한때 한국은 영어를 세련됨의 상징처럼 활용하며, 서구에서 빌려온 화려함으로 국내 시장을 매료시키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K-팝은 세계 차트를 장악하고, 전 세계 쇼핑카트에는 K-뷰티 제품이 가득하며, 한국 영화는 국제적 찬사를 받고 있다. 이제는 한국어 그 자체가 ‘쿨’한 언어로 인식되면서, 한국 문화를 즐기는 관객층도 점점 더 글로벌해지고 있다. 팝송 속에 한국어 가사가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렇다고 영어의 역할이 끝난 건 아니다. 다만 과거처럼 위신의 상징으로 기능하기보다는, 이제는 전 세계 관객에게 다가가는 다리 역할로 바뀌었다. 오늘날 영어는 한국 문화를 더 많은 이들과 연결하는 통로이자, 한국의 목소리를 널리 전하는 확성기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더는 기대어야 할 언어가 아니라, 우리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세계로 확산시키는 도구가 된 것이다.


한국어의 성장기

한국과 영어의 관계를 지켜보며 하나의 단순하지만 분명한 진리를 깨달았다. 나라가 성장하면, 외국어를 다루는 방식도 함께 성숙한다는 것.

내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영어는 그저 ‘있어 보이는’ 액세서리처럼 쓰였다. 그 당시 한국에겐 나름의 전략이었고, 어느 정도 설득력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이 K-팝, K-드라마, 김치로 자신만의 목소리를 세계에 내기 시작하면서, 더는 멋을 위해 영어를 빌릴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는 한국이라는 이름 자체로도 충분히 멋지니까.

지금의 영어는 허영의 상징이 아닌, 세계를 향해 한국다운 방식으로 말할 수 있게 말문을 열어주는 열쇠이다.


자신감을 갖고, 한국어로

이 변화의 본질은 결국 언어가 아니라 ‘자신감’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외부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남의 것을 빌려 멋을 내려 하지 않고, 자기다움을 바탕으로 더 진정성 있게 소통하니까.

오늘날 한국의 진짜 아름다움은 바로 여기 있다. 영어를 필요해서가 아니라 선택해서 사용하는 나라. 스스로 빛날 수 있단 걸 아는 나라. 이것은 내가 한국에서 목격한 가장 큰 변화였고, 결국 문화가 언어를 넘나드는 방식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낸다.


Special Thanks to. 포스팅 번역에 도움 준 나의 co-wor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