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의 맹점에서 얻는 교훈

한국 대법원 구조 개벽의 반면교사점

by 날개

'린다 그린하우스'(Linda Greenhouse, 1947-)가 30년간 뉴욕타임스의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관찰한 미국 연방대법원(SCOTUS)의 역사는 그 자체로 미국 사회의 정치적, 문화적 변천사이며, 국경을 넘어 전 세계 법원에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거대한 규범적 참조점이다. 그린하우스는 미국이 독립 초기인 1799년에서 1810년 사이에 뉴저지, 켄터키, 펜실베이니아주 의회가 영국 법원에서 판결한 사건을 주 법원이 심리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령을 통과시키는 등 외국법에 대한 배척 움직임을 보인 사실을 지적하는 동시에, "인류의 의견에 대한 적절한 존중"을 담은 독립선언서의 정신처럼 미국의 태도는 양면적이었다고 지적한다. 한편, 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신흥 민주화 국가들이 미국의 모델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개념을 도입하고 미국 연방대법원 판례를 인용했을 때 미국인들은 자부심을 느꼈으며, 미국 사법부가 "의도치 않게" 세계 법질서의 논쟁을 주도하는 위치에 올랐다는 점을 그녀는 언급한다.


그러나 그린하우스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받는 이러한 존경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제도를 그대로 수입한 나라는 없다는 냉철한 현실을 강조한다. 이는 다른 국가들이 미국의 강점과 약점을 평가하여 독자적인 사법 구조를 설계했기 때문인데,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판사의 임기 구조에서 나타난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미국처럼 판사에게 종신 임기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미국 제도의 독특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녀는 이탈리아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9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재판관의 12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12년 임기 사례를 제시하며, 이러한 임기 제한 모델이 일시적으로 집권한 정당이 사법부를 장기적으로 통제할 가능성을 제거하고 인선 절차의 과열을 막는 실질적인 장치라고 역설한다.


구조적 차이는 임명 과정에서도 첨예하게 드러나는데, 그녀는 미국 법관 인선 절차의 특징인 인사청문회(confirmation Hearing)를 통해 상원의 동의(advice and consent)를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승인절차는 다른 국가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하며, 독일의 경우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인준 요건으로 두어 절차 초반에 정치적 타협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사법부의 정치화를 제도적으로 완화한다고 설명한다. 재판 방식에 있어서도 유럽 법원들은 만장일치 규범을 준수하고 개별 의견을 금지하거나 익명으로 처리하는 경향이 있어 판사들이 공적인 정치적 역할을 맡을 가능성을 줄이는 반면, 미국 연방대법원은 명시적인 다수 의견과 반대 의견의 대립 구도를 통해 사법적 판단을 첨예한 정치적 논쟁의 장으로 끌어들여 그 영향력을 극대화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세계 법원에 던지는 가장 첨예한 질문은 '외국 법률 인용'에 관한 논란이다. 그린하우스는 '앳킨즈 대 버지니아'(Atkins v. Virginia, 2002), '로퍼 대 시몬스'(Roper v. Simmons, 2005) 등 사형 관련 판결과, '로렌스 대 텍사스'(Lawrence v. Texas, 2003) 동성애 관련 판결에서 다수의견이 유럽 법원이나 조약 등 외국 법률 자료를 인용하며 법을 진보적인 방향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미국 헌법을 해석할 때, 국제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발전하고 있는 인권과 존엄성에 대한 기준을 고려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었다. 특히, 보수 진영 법관인 '안토닌 스칼리아'(Antonin Scalia, 1936-2016) 대법관이나 '존 로버츠'(John Roberts, 1955-) 현 연방대법원장은 "원하는 결과에 가장 부합하는 의견을 골라내는 것"이라는 강력한 비판을 제기하였다. 즉, 이들은 외국 법률 인용이 미국 헌법 해석의 객관성을 훼손하고, 판사들의 개인적인 이념을 법리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며, 미국의 주권을 침해한다며 강력하게 경고하였다.


이 논란은 곧바로 정치권의 격렬한 반발로 이어져 'F. 제임스 센센브레너'(F. James Sensenbrenner, 1942-) 하원 사법위원회 위원장이 "사법부가 외국 법률을 부적절하게 준수하는 것은 미국의 주권을 위협한다."라고 경고하며 대법관 탄핵 위협까지 제기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정치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그린하우스는 연방대법원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고 의회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며 논란이 수그러들었음을 관찰했다. 이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종신 임기라는 강력한 제도적 방패를 기반으로 사법적 독립을 관철하는 동시에, 그 독립성이 정치적 공격에 얼마나 노출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이 모든 분석은 대법관 임기 6년, 정년 70세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법 시스템에 깊은 시사점을 던진다. 미국이 종신 재직을 통해 법관의 독립성과 심층성을 추구하는 반면, 한국 대법원은 연간 4만 건에 달하는 사건 적체와 14명의 대법관이라는 인력 부족 문제로 인해 최종 법률심으로서의 본질적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기 어려운 구조적 딜레마에 갇혀 있다. 한국은 임기 제한을 통해 정치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모델을 유지하면서도, 심리불속행 제도의 남용을 줄이는 동시에 대법관들이 중요 사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상고심 기능의 재정립과 적정한 대법관 수 증원 등 다양한 측면으로 구조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미국처럼 종신 재직이 아닌 임기 제한 제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권 교체 주기에 맞춰 대법관 다수가 한꺼번에 교체될 위험이 상존하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직시해야 한다. 결국, 한국 대법원의 중립성 확보는 단순히 사건 적체 해소라는 기능적 문제를 넘어, 임명 절차의 객관성 확보와 임명 시기의 제도적 분산을 통해 특정 정권의 정치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근본적인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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