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생태계 규제의 미래
[글의 요지]
숏폼의 실질적 해악이 입증되지 않은 현재 상태에서는 그에 대한 법적·정책적 근거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편, 몇 가지 관련 규제 입법 시도는 현재의 숏폼 규제 논의가 단순한 콘텐츠 규제를 넘어 플랫폼의 기술적 설계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는 양상을 보여준다. 특히 숏폼의 알고리즘적 중독 설계에 대한 직접적인 제동 장치 마련이 논의의 핵심이다.
이제 규제는 매체를 기준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정보 흐름의 ‘설계자’와 ‘통제자'가 누구인지를 기준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AI가 숏폼 영상을 제작·추천·배포하는 과정은 단순한 미디어 행위가 아니라, 이용자의 감정과 주의력을 자원으로 삼는 경제적 행위이다. 따라서 향후 규제의 패러다임에서 미디어법, 경쟁법, 산업정책의 융합적 접근과 조화는 필수적으로 요구될 것이다.
[이 글은 "법무사지" 2025년 12월호(vol. 702)에 실린 필자의 글을 옮겨 놓은 것임]
[본문]
바야흐로 ‘숏폼(short form)’의 시대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깊이 스며들어 있으며, 온라인 플랫폼들도 서로 앞다투어 숏폼을 전면에 내세운다. 최근 대다수가 사용이 고착화(lock-in)된 앱이나 사이트에서의 '강제노출'로 인하여 원치 않아도 보게 되는 경우가 더욱 많이 생겼다. 어쨌든, 이것은 최근 확실한 미디어 트렌드의 하나로 자리 잡아 나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1. 숏폼의 부상과 사회적 영향
‘숏폼’ 콘텐츠는 ‘틱톡(TikTok)’, 유튜브 ‘숏츠(Shorts)’, 인스타그램 ‘릴스(Reels)’ 등과 같이 주로 15초에서 60초 사이의 짧은 길이로 제작되는 영상을 말한다. 특히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되어 손가락 터치만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영상이 재생되는 특징을 갖는다.
숏폼은 콘텐츠의 ‘형태’일 뿐이므로 그 자체로 ‘좋다 나쁘다’ 단정할 순 없다. 짧은 시간에 정보를 압축‧전달하고 쉽게 공유할 수 있어 효율적인 정보 습득과 동시에 재미도 제공하는 순기능도 있다. 다만, 누구에게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그 영향은 달라질 수 있다.
무분별한 숏폼 시청은 특히 아동과 청소년에게 유해할 수 있다고 한다. 전두엽이 아직 발달 단계에 있어 주의 집중과 감정 조절 능력이 미숙한데, 숏폼은 짧은 간격으로 강렬한 도파민 보상을 터뜨리며 뇌를 자극한다. 이 때문에 숏폼에 많이 노출된 아이들의 뇌는 장기적인 노력이나 복잡한 사고가 필요한 활동에서 도파민 지연을 견디기 어려워 쉽게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결국, 독서나 깊은 학습에 필요한 주의 집중력이 붕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청소년은 극단적으로 편집되거나 과장된 행복, 외모 기준을 반복적으로 접하면서 상대적 박탈감과 왜곡된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성인이라고 해서 숏폼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비교적 발달된 자기 통제력을 가지고 있지만, 숏폼의 알고리즘적 중독성은 성인의 인지적 지구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숏폼은 지식‧정보를 소비하기 쉬운 엔터테인먼트 형태로 제공하므로, 숏폼에 중독된 성인들을 깊은 사고를 회피하는 습관으로 이끌릴 수 있다. 이는 사유하고 지식을 이해‧처리하는 데 필요한 정신적 근육을 약화시키고, 피상적인 지식과 즉각적인 자극에 중독된 채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2. 숏폼 규제 논의의 방향 전환과 전망
가. ‘숏폼 형식’ 규제가 어려운 이유
이러한 부작용 때문에 숏폼 콘텐츠에 대한 규제 논의가 고개를 든다. 그러나 ‘숏폼’이라는 표현 형식 자체를 규제 대상으로 삼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콘텐츠의 형식에 규제를 가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와 같은 헌법적 가치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숏폼 형식 자체를 겨냥한 규제는 현재로서는 아직 전 세계적으로 제한적인 것으로 파악되고, 이에 대한 규제는 '내용(content)'과 이로 인한 '영향(impact)'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중국은 청소년 보호와 사회 통제라는 목적 아래, 특정 시간대에만 숏폼 플랫폼 이용을 허용하고, 콘텐츠 필터링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는 행동 규제와 콘텐츠 '통제'의 성격이 강하며, 사회적 통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의 「시청각미디어 서비스지침(Audiovisual Media Services Directive, AVMSD)」과 아일랜드의 '자율규제'도, 형식 자체가 아닌 청소년 보호, 유해 콘텐츠 제한, 알고리즘 투명성, 광고 규제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즉, 명시적으로 숏폼 ‘형식’을 규제 대상으로 삼은 사례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숏폼의 실질적 해악이 입증되지 않은 현재 상태에서는 그에 대한 법적·정책적 근거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나. 규제의 중심은 콘텐츠가 아니라 ‘중독 설계’
한편, 몇 가지 관련 규제 입법 시도는 현재의 숏폼 규제 논의가 단순한 콘텐츠 규제를 넘어 플랫폼의 기술적 설계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는 양상을 보여준다. 특히 숏폼의 알고리즘적 중독 설계에 대한 직접적인 제동 장치 마련이 논의의 핵심이다. 이는 ‘자동 재생(autoplay)’ 기능의 기본 설정 금지, 개인 맞춤형 추천 시스템의 투명성 확보 및 제한, '무한 스크롤(infinite scroll)’과 같은 중독 유발 디자인에 대한 조사 의무 부과 등을 포함한다.
유럽연합은 「디지털 공정성법(Digital Fairness Act)」 등의 입법 추진을 통해 소비자 보호하는 알고리즘 설계를 의무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에 최고 수준의 프라이버시 기본 설정과 알고리즘 위험 감사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도입하였는데, 「미성년자 소셜 미디어 중독 방지법(Protecting Our Kids from Social Media Addiction Act, SB 976)」(2024.9.제정, 2025.1. 핵심조항 시행)에 따라 중독성 알고리즘 피드 제공이 제한되고 있다.
다. 알고리즘 규제의 현실적 저항과 한계
그러나 어린이 이용자에게 해가 되거나 유해할 수 있는 온라인 서비스, 제품, 기능에 대해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고려하여 디자인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연령 적합 디자인법(California Age-Appropriate Design Code Act, CAADCA)」은 2022.9. 제정 후 2024.7.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빅테크들의 이익단체인 ‘넷초이스(NetChoice)’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가처분(injunction)을 제기, 이를 연방항소법원이 인용하여 전면적으로 시행이 중단된 상태다.
이와 같은 규제 움직임과 그에 관한 담론은 언제나 그 시대의 젊은 세대를 향한 사회적 우려와 연결된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철학자로 알려진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가 말했듯, 지금의 숏폼과 같은 새로운 미디어 형식은 기존 사회적 구조와 가치관을 시험대에 올리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숏폼의 중독성과 주의력 잠식 우려는 시민적 숙고와 공적 영역의 질서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규제의 필요성이 제기될 수 있는데, 이러한 규제가 오히려 긍정적인 방식으로 혁신을 촉진할 수도 있다.
청소년 보호와 콘텐츠 규제라는 프레임워크(framework) 안에서, 플랫폼과 창작자들은 창작과 소비 방식을 새로운 형태로 적응하며 진화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AI를 기반으로 한, 개인 맞춤 추천과 생성형 콘텐츠 기술이 접목될 경우, 숏폼 콘텐츠는 기존 규제 틀을 넘어 새로운 환경에서 생산되고 소비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의 주창자로 알려진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 1948~)이 강조한 바와 같이, 기술의 진화는 항상 예측의 경계를 넘어서는 변화를 만들어내므로, 규제가 정해진 틀 안에만 갇혀 있으면 새로운 변화를 따라잡기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기술에 대한 규제는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원칙 기반의 접근 방식'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라. 규제 담론의 이중성
결국 숏폼 규제 담론은 단순한 '억제'나 '보호'라는 이분법을 넘어선다. 이는 새로운 세대를 향한 깊은 염려와, 동시에 그들이 펼쳐 보일 창작과 혁신의 가능성을 주시하는 복합적인 균형점을 찾는 과정이다. 현재의 규제 시도는 알고리즘 투명성과 플랫폼의 책임이라는 새로운 윤리적 기준을 탐색하는 첫걸음이며, 특히 자동재생 제한이나 맞춤형 추천 시스템 통제와 같은 구체적인 입법 논의는 규제가 플랫폼의 근본적인 설계 방식에 개입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숏폼’이라는 형식이 사회적 우려의 시선을 끊임없이 받고 있지만, 그 긴장 속에서 오히려 기술적 진화와 규제가 역설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의외의 혁신적 결과를 낳을 여지를 남긴다. 미래에 이 논의가 단순한 기우로 끝날지, 아니면 더 책임감 있는 기술 진화를 이끄는 마중물이 될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짧은 형식 안에도 젊은 세대의 보호와 미래 미디어의 잠재성을 동시에 담아내야 할 중대한 사회적 함의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3.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진화와 규제 패러다임의 변화
인류의 커뮤니케이션은 늘 기술의 진화와 함께 형태를 바꾸어왔다. 대량(mass) 인쇄 기술을 통해 신문이 정보를 문자로 고정시키며 ‘사실’을 '사회'의 기본 단위로 만든 시절을 지나, 라디오는 청각을, TV는 시각을 해방시켰다.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결정적인 임계점은 이 모든 매체를 하나로 엮어 놓았다.
기술이 매체를 통합할 때마다 인간은 새로운 감각을 배우고, 사회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왔다. 21세기 초반, 스마트폰과 플랫폼의 결합은 정보의 소비 단위를 ‘개인화’했다. 알고리즘은 각자의 취향과 시간을 맞춤형으로 편집했고, 이로써 뉴스·음악·드라마·광고의 구분은 사라졌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숏폼의 확산은 그 흐름의 필연적인 귀결일 수도 있다.
숏폼은 신문이 남긴 논리, 라디오가 남긴 리듬, TV가 남긴 이미지, 인터넷이 남긴 속도를 하나의 포맷 안에 압축해 놓은 결과물이다. 그것은 정보 전달의 종착점이 아니라, 감각의 통합체이자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빠른 표현 단위이다.
인간은 언제나 기술에 맞춰 자신의 인지 구조를 조정해 왔는데, 숏폼은 인간이 선택한 또 하나의 언어인 동시에 감정과 의미가 교차하는 새로운 문법일 수 있다. 다만 이 문법의 생산과 배분이 소수의 거대 플랫폼에 의해 통제될 때, 구조적 차원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지점에서 법과 규제가 다시 존재 이유를 얻는다.
기존의 미디어법은 표현의 자유와 공공성의 균형을, 경쟁법은 시장의 공정성과 혁신의 균형을 다뤄왔다. 그러나 AI와 플랫폼이 결합된 미디어 환경에서는 두 법의 경계가 의미를 잃는다. 뉴스, 광고, 콘텐츠, 데이터가 하나의 알고리즘 속에서 순환하는 시대에는 시장 지배력과 여론 지배력, 산업규제와 표현규제가 동일한 축 위에서 움직인다. 이제 규제는 매체를 기준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정보 흐름의 ‘설계자’와 ‘통제자’가 누구인지를 기준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예컨대, AI가 숏폼 영상을 제작·추천·배포하는 과정은 단순한 미디어 행위가 아니라, 이용자의 감정과 주의력을 자원으로 삼는 경제적 행위이다. 이는 경쟁의 문제이자 표현의 문제이며 동시에 산업정책의 문제이다.
따라서 향후 규제의 패러다임에서 미디어법, 경쟁법, 산업정책의 융합적 접근과 조화는 필수적으로 요구될 것이다. 따라서 규제와 진흥 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각각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던 시대는 빨리 끝내야 한다.
4. 초단위 콘텐츠 시대, 주체성 지키는 새로운 규제의 원칙
그렇다면, 미래의 규제는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할까? 숏폼을 비롯한 초단위 콘텐츠의 시대에서 중요한 것은 억제가 아니라 ‘공정한 감각의 진화 조건’을 마련하는 일이다. 인간이 스스로의 감각을 진화시킬 자유를 가지되, 그 과정이 특정 알고리즘의 코드에 종속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주는 것이 바로 기술문명 속에서 규제가 해야 할 역할이다.
AI가 결합된 미디어 생태계는 머지않아 개인의 감정, 사고, 소비 행태를 실시간으로 읽고 예측하며, 맞춤형 정보의 흐름을 설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세계에서는 ‘시장 경쟁’과 ‘여론 경쟁’, ‘콘텐츠 산업’과 ‘데이터 산업’이 완전히 뒤섞인다. 결국 규제의 초점은 매체의 형식이 아니라 ‘인간의 주체성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신문에서 시작된 정보의 시대가 온라인 플랫폼으로 수렴하는 거대한 원을 그리고 있는 지점에 서 있다. 기술은 언제나 인간을 압도했지만, 인간은 그 기술을 통해 다시 자신을 재구성해왔다. 미디어법과 경쟁법은 그 진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을 억누르기보다, 인간이 기술과 함께 진보할 수 있는 균형점을 설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미디어 정보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보장하기 위하여는 법을 현실 변화에 맞게 정비하여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윤리’의 적극적인 도움과 개입을 통한 조화와 균형도 필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자율규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자정 노력이 병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법적 기준이 미처 닿지 못하는 정보를 둘러싼 ‘미디어 인포스피어(media-infosphere)’ 영역의 복잡성과 속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업계 스스로 윤리적 기준을 확립하고, 법의 강제적인 개입 없이 해당 조직이나 산업 집단에서 스스로 윤리적 기준이나 행위 규칙을 정하여 집행하는 것이 법적 안정성과 윤리적 책임을 조화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