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알고리즘 담합 규제와 데이터 공유 법리
유럽연합 기능조약(TFEU) 제101조 제1항은 기업 간의 '합의'(agreements)뿐만 아니라 동조행위'(concerted practices)을 명시적으로 금지함으로써 담합의 규제 범위를 넓게 설정하고 있다. 미국 셔먼법이 '허브 앤 스포크' 구조 하에서의 명시적 혹은 묵시적 합의 입증에 주력한다면, 유럽의 법리는 경쟁사들 간의 '직접적인 접촉'이 없더라도 시장의 불확실성을 인위적으로 제거하는 모든 형태의 협력을 포괄한다. 디지털 전환기는 이러한 '조율된 관행'의 개념을 알고리즘과 실시간 데이터 공유라는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특히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고도의 시장 투명성이 역설적으로 담합을 용이하게 만드는 '디지털 투명성의 역설'(paradox of digital transparency)은 현대 유럽 경쟁법 담론의 가장 치열한 전장이다.
고전 경제학에서 시장의 투명성은 소비자의 탐색 비용을 낮추고 효율적 배분을 돕는 긍정적 요소로 간주된다. 그러나 알고리즘에 의해 매개되는 디지털 시장에서의 투명성은 기업들로 하여금 경쟁자의 가격 전략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즉각적으로 반응(real-time monitoring & response)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한다. 유럽 사법재판소(ECJ)는 과거 '에틸(Etil)' 사건{A. Ahlström Osakeyhtiö and others v Commission of the European Communities (1993), 이른바 'Woodpulp II') 등을 통해 단순히 시장 상황에 지능적으로 적응(intelligent adaptation)하는 행위와 반경쟁적 조율을 구분해 왔으나, 알고리즘 시대의 데이터 공유는 이 경계를 허물고 있다. 경쟁사들이 동일한 알고리즘 솔루션을 채택하거나 데이터 풀(data pool)을 공유할 때, 시장은 순식간에 '인위적인 투명성' 상태에 도달하며 이는 곧 경쟁의 소멸로 이어진다.
유럽 알고리즘 담합 법리의 금자탑이라 불리는 Eturas(2016) 판결은 디지털 환경에서 '조율된 관행'이 어떻게 성립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리투아니아의 여행 예약 시스템 운영사인 에타스(Eturas)는 자사 플랫폼을 이용하는 30여 개 여행사에게 할인율을 3%로 제한한다는 메시지를 시스템 내부 공지함으로 보냈다. 여기서 핵심 쟁점은 해당 메시지를 수신한 여행사들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음에도 시스템을 계속 사용하며 가격을 맞춘 행위를 담합으로 볼 수 있는가였다.
ECJ는 매우 획기적인 판시를 내놓았다. 재판소는 "사업자가 경쟁 제한적 제안을 담은 메시지를 수신할 수 있었던 상황이라면, 그에 대해 명확히 반대 의사를 표명하거나 수사 당국에 신고하는 등 자신을 해당 조율로부터 분리(public distancing)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한 담합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라고 보았다. 이는 디지털 플랫폼 환경에서 기업에게 '명시적 거부 의무'를 부과한 것이다. 알고리즘 시스템의 반경쟁적 설정을 인지하거나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침묵하며 그 이익을 향유한 행위는, 그 자체로 '의사의 합치'를 구성한다는 법리적 결단이다.
유럽 법리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알고리즘을 직접 운영하지 않은 '외부 대행업체'에 의해 발생한 담합에 대해서도 기업의 책임을 엄격히 묻는다. VM Remonts(2016) 사건에서 ECJ는 외부 소프트웨어 개발자나 컨설팅 업체가 담합을 주도했을 때 기업이 지는 책임의 범위를 확정했다. 재판소는 "기업이 대행업체의 반경쟁적 행위를 인지했거나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대행업체의 행위는 곧 기업의 행위로 간주된다"라고 판시했다.
이 판결은 알고리즘 담합의 책임론에서 '설계적 주의 의무'의 근거가 된다. 기업은 자사가 사용하는 알고리즘이 시장에서 담합적 결과를 도출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제어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알고리즘의 로직을 몰랐다"거나 "기술적 전문성이 없다"는 항변이 유럽 시장에서는 통용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알고리즘은 법적 인격이 없는 '도구'에 불과하며, 그 도구를 선택하여 시장에 배치한 기업이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경쟁 제한적 리스크를 전적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유럽 경쟁 당국은 이제 담합의 증거를 기업 간의 비밀 회동이 아닌, 알고리즘의 데이터 입력값(input)과 출력값(output)의 상관관계에서 찾는다. 만약 경쟁사들이 실시간으로 민감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API)를 공유하거나, 상호 간의 가격 데이터를 학습 데이터셋으로 사용한다면 이는 그 자체로 TFEU 제101조 위반의 강력한 정황 증거가 된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Margrethe Vestager) 전 집행위원은 "알고리즘이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가격을 조정한다 하더라도, 그 알고리즘을 고용한 기업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반경쟁적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천명하며 기술적 자율성 뒤에 숨은 담합의 실체를 경고했다.
유럽연합에서의 법리는 디지털 카르텔이 더 이상 '명시적 계약'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적 설계'의 문제임을 시사한다. Eturas와 VM Remonts 판례는 기업에게 디지털 환경에서의 높은 주의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알고리즘이라는 검은 상자가 담합의 피난처가 되는 것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사후적인 처벌을 넘어, 기업들이 알고리즘을 도입할 때부터 경쟁법적 리스크를 검토하도록 유도하는 제도적 장치로 작동한다.
결국 유럽의 접근법은 디지털 시장의 투명성이 독이 되지 않도록 법의 칼날을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으로 평가할 수 있다. 알고리즘을 통한 데이터 공유가 경쟁의 압력을 제거하는 장벽이 될 때, 경쟁법은 기술적 효율성이라는 명분을 넘어 시장의 역동성을 지키기 위해 개입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