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연구의 경제성에 관하여

귀족의 학문을 하는 서민 연구자의 비싼 취미 생활

by 날개

경제적 관점에서 법학연구는 자본주의의 효율성 논리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고도의 지적 훈련을 위해 투여되는 막대한 시간과 기회비용은 시장 가치로 거의 환산되지 않으며, 연구자가 밤을 새워 벼려낸 논리적 성취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시급보다 못한 경제적 보상으로 돌아오기 일쑤다. 실무계가 자본의 역동적인 흐름 속에서 수임료와 실적을 쌓아 올리는 동안, 연구자는 도서관 서가 속에 매몰되어 자발적으로 빈곤을 감내한다. 이러한 불균형은 법학연구를 학문적 탐구라기보다 지불 능력을 초과한 ‘값비싼 취미’의 영역으로 전락시키며, 연구자로 하여금 스스로가 시대착오적인 ‘귀족 놀음’에 빠진 것은 아닌지 회의하게 만든다.


과거 법학이 막대한 부를 소유한 귀족들만이 향유하던 전유물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현대의 법학연구자가 겪는 고통은 귀족적 사유를 지향하면서도 서민적 생존을 이어가야 하는 계급적 괴리에서 기인한다. 먹고사는 문제에서 해방된 이들이 정의와 질서를 논하던 유희의 형식을 빌려왔으나, 정작 현실의 연구자는 생계라는 세속적 압박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정의'를 조각해야 한다. 당장의 생존에 아무런 기여도 못 하는 텍스트의 성벽을 쌓는 행위는 타인의 눈에 우아한 사치로 비칠지 모르나, 그 내부의 실상은 영혼의 평화까지 지불하고 얻어낸 처절한 지적 허영에 가깝다.


이러한 지적 사치는 필연적으로 태평양 한가운데 홀로 던져진 듯한 고립감과 마주하게 된다. 법학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연구자는 나름의 항로를 설정하고 노를 젓지만, 사방을 둘러봐도 끝없는 수평선과 텍스트의 파도뿐이다. 내가 쓴 문장 하나가 세상의 질서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곧 신기루로 판명되고, 연구자는 자신의 배가 전진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제자리에서 표류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에 놓인다. 이 막막함은 법이 실제 인간의 삶을 구제하는 온기 있는 도구가 아니라, 그저 모니터 위에 적힌 허망한 약속들의 나열일지도 모른다는 근원적 불신을 낳으며 연구의 동력을 잠식한다.


법학적 사유의 폐쇄성은 이러한 공허를 더욱 심화시킨다. 연구자는 이미 견고하게 짜인 판례와 통설의 격자 안에서 미세한 틈새를 찾아 각주를 보태는 언어 세공사로 전락한다. 창의적 영감은 정합성이라는 검열관 앞에 무력해지고, 연구자는 이미 존재하는 논리들을 재조합하여 또 다른 파일 뭉치를 생산하는 무한 루프에 갇힌다. 예술가가 빈 캔버스 앞에서 창작의 고통을 겪듯, 법학자 또한 빈 모니터 앞에서 실체 없는 개념을 붙들고 씨름하지만, 그 결과물이 가져다주는 사회적 영향력은 지극히 미미하다. 결국 연구는 세상을 향한 외침이 아니라, 자기만족적 논리 체계 안에서 침잠하는 고독한 유희로 수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싼 취미'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법학이 지닌 역설적인 숭고함 때문이다. 연구자가 치르는 경제적 손실과 정신적 소모는 사회적 법치주의가 유지되기 위해 누군가는 반드시 지불해야 할 지적 비용의 성격을 띤다. 가성비를 따지는 세상에서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공정함과 정의의 미세한 균열을 응시하는 행위는, 자본의 언어로는 포섭할 수 없는 인간 존엄의 마지노선을 지키는 일이다. 따라서 연구자가 직면한 태평양의 적막은 무능의 증거가 아니라, 일상의 소음을 뚫고 법의 본질이라는 심해까지 내려간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고귀한 고독이자, 이 비싼 취미를 감당하는 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단단한 눈빛의 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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