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시계

by 날개

아침술은 난이도가 가장 높다. 이는 대개 전날 해독되지 못한 알코올의 잔여 용량이 추가적인 공급을 갈구하는 신호일 가능성이 크다. 만약 눈을 뜨자마자 술부터 찾았다면 그것은 유희가 아니라 시스템의 통제력을 상실한 질병적 징후에 가깝다. 이 시간의 술은 즐거움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비루한 구걸에 불과하다.


점심시간으로 넘어가며 반주라는 명목하에 낮술의 영역이 열린다. 오후 3~4시경, 일찍 문을 여는 술집들이 하나둘 셔터를 올리면 진정한 낮술의 시간이 시작된다. 모두가 부품처럼 움직이는 대낮에 홀로 취기를 빌려 중천에 뜬 해를 바라보는 것은 묘한 승리감과 이득을 보는 듯한 착각을 선사한다. 시스템의 틈새를 공략하는 소심한 반항의 시간이다.


오후 5~6시로 접어들면 공식적인 해방과 본격적인 점화가 일어난다. 많은 직장인이 퇴근 후 회식을 시작하기 가장 좋은 타이밍이다. 이어지는 저녁 7~8시는 도시가 본격적인 술타임으로 달아오르는 구간이다. 이때의 술은 하루의 노동을 보상받으려는 집단적 합의이며, 가슴 속 깊이 묻어두었던 울분을 알코올의 기화열로 날려 보내는 과정이다.


밤 9~10시 사이 유흥가는 피크에 도달한다. 인기 있는 가게마다 자리를 찾기 힘든 이 시간은 이른 귀가를 선택하는 이들과 2~3차를 고집하는 주당들의 욕망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본격적인 유흥이 극에 달하며 도시의 소음이 가장 커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자정을 넘겨 새벽으로 접어들면 막차의 압박이라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힌다. 밤을 새울 것인가, 아니면 집으로 향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운명의 갈림길이다.


자정을 지나 새벽 시간으로 깊숙이 침투하면 만취자가 속출하고 시간은 쏜살같이 증발한다. 새벽 3~4시경이 되면 돌아갈 이들은 모두 떠나고 오직 밤을 새우기로 작정한 이들만이 남는다. 이미 감각은 해체되었고 술은 내일의 생명력을 무한정 가불하는 위험한 도박으로 변질된다. 동이 터오기 시작하는 4~5시경, 하나둘씩 쓰러져 낙오자가 발생하며 현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붉게 떠오르는 해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끝내 잔을 놓지 않는 자들은 지구의 자전과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무모한 투사들이다. 하지만 태양을 이기려는 그 처절한 사투는 주당이라는 명예 대신 신체적 사망 선고를 앞당길 뿐이다. 무박의 도전에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면 그 끝에는 승리가 아니라 존재의 완전한 붕괴가 기다리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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