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미디어가 언론 카르텔을 흔든다

명예보호 vs 표현의 자유 전쟁

by 날개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명예에 관하여, “명예는 외적인 양심이고, 양심은 내적인 명예다”, “명예란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의 가치에 대한 타인의 견해이고, 주관적으로 보면 이러한 견해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이다.”라고 말했다. 인간은 타인과 어울리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책무를 수행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 나가는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본태적으로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즉 신뢰할 수 있는지 좋게 평가할 수 있는지에 따라서 다양한 명예가 생겨나고 이러한 명예는 개인의 삶 전반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도 철학자들은 다른 사람의 의견은 그들의 견해일 뿐이니, 멀리서 바라보며 평정심을 잃지 말라고 조언하긴 한다. 그렇지만, 쇼펜하우어의 일대기를 읽어보면 그 자신도 명예 혹은 명성에 대한 상당한 결핍이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


작금의 초정보 초연결 사회에서 관심을 끌기 위해 쏟아져 나오는 자극적인 컨텐츠들은 이러한 명예의 보호를 더욱 어렵게 한다. 사실 온라인 플랫폼이나 언론매체 등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미디어를 통하여 한번 뱉은 말이나 발행된 글은 전파속도 파급효과가 커서, 다시 주워 담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더 많은 정보 속에 잠식되어 기억에서는 망각될 수 있겠지만, 디지털로 아카이빙 된 말과 글은 '잊혀질 권리'에 큰 장애가 된다.


물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갖는다(이 모든 자유는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말로, 글로, 행동으로, 연대로 외부로 표출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표현의 자유'라고도 일컬어진다). 이 중 특히 출판의 경우에는 1456년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typography) 이후 대량으로 글을 찍어내여 전파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창출되었고, 17세기에는 언론의 자유(freedom of speech)와 출판의 자유(freedom of press)의 개념이 입헌주의 헌법전 속에 수록되기 시작되었다고 한다. 언론의 자유는 지식과 정보의 획득 및 진리 발견의 전제조건이자 개인적 인격발전과 자아실현의 수단으로서 인간의 존엄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적인 자유권이다. 또한, 불특정다수에게 언어와 문자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하며 의사표명을 통해 여론형성에 참여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제도 운영에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표현의 자유우위 원칙(수정헌법 제1조)을 내세우며 표현의 자유를 절대적인 권리로 오해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렇지만 이 원칙은 대 국가를 상대로 한 권리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확립된 것이기 때문에 개개인 간의 명예 또는 프라이버시권의 충돌이 문제되는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가 우위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 헌법에도 기본권 간에는 우열관계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헌법에 근거한 '인간의 존엄성'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가치인 '명예의 보호'나, 헌법 제17조가 보호하고 있는 프라이버시권은 표현의 지위에 대해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 따라서 각 권리가 충돌할 경우에는 사안별로 개별적인 법익형량을 통하여 규범조화적 해석을 통한 적절한 균형점을 찾게 되는 것이다. 즉,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표현의 자유는 인정되기가 어렵다.


정보나 의견 전달의 플랫폼이 온라인으로 대거 이동함에 따라, 신문, 방송과 같은 전통적인 언론매체 소속의 기자(데스크)와 같은 역할을 1인 미디어의 유튜버, BJ, 블로거 등이 맡게 되었다. 즉,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1인 미디어가 언론매체와 유사한 정보제공, 여론 형성, 논평 등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경우가 흔해졌다. 1인 미디어는 방송·통신, 신문, 정기간행물 등 어떤 법령의 인·허가 등 규제에도 구속되지 않으며, 저널리즘의 내부 윤리기준 등의 자기 통제와도 거리가 멀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존 밀턴(John Milton)이 '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에서 말하는 사상의 자유시장에서의 현명한 독자의 '자동필터'(자율조정)를 믿는다면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큰 관심이 큰 돈으로 환산되는 온라인 플랫폼 시대에 예컨대 '가짜 뉴스' 와 같은 현재 상황을 존 밀턴이 본다면 같은 얘기를 할 수 있었을까?


한편, 전통적인 언론매체의 기자는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는 기자의 특권(Reporter's Privilege)을 향유해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관공서에는 기자들에게 기자실(기사송고실)이라는 공간을 주고, 브리핑과 보도자료도 제공한다. 일반인에게 통제되는 구역에 대한 물리적 접근권이나 정보에 대한 액세스도 포함된다. 이러한 접근권은 뭔가 공식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취재활동에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특권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취재원을 발설하지 않을 권리(취재보호권)도 그중에 하나로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편의(?)는 일반인이나 1인 미디어에게는 제공되지 않은 것인데, 사기업의 종업원에 불과한 기존 언론매체의 기자들은 일상에 바쁜 국민들을 대신하여 사건 현장에 출동하여 취재하여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으로 국민의 알권리는 위탁받아 '공적 과업'을 수행하는 것으로 봐야 할까? 1인 미디어가 필터를 달고 나름의 사명감과 균형감을 가지고 '공적 과업'을 수행하는 것으로 인정받는다면, 오히려 기존의 언론매체 기자만 특권을 독점적으로 누리는 것이 그들만의 카르텔인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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