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인류 지적 유산의 운명은?
영국의 철학자인 '나이젤 워버턴'(Nigel Warburton, 1962-) 교수는 '표현의 자유'(free speech)와 '저작권'(copyright)의 대립관계에 관하여 우리에게 담론을 던진다. 오늘날 디지털 기술로 인해 저작물에 대한 복제와 재사용이 극도로 쉬워지고, 방대한 저작물이 넘치는 인터넷 시대에 기존의 저작권 개념이나 규제가 유효한 것인가? 혹시, 그것이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 아닌가?
그가 첫째로 강조하는 점은, 저작권은 저작의 '아이디어의 표현'(expression of ideas, 특정 단어나 이미지)을 보호하는 것뿐이지, '아이디어 자체'(ideas themselves)는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창의성을 촉진하기 위해 원래 저작권은 아이디어의 '독점'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만, 창작자의 노력이 들어있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표현 방식은 기록 순간부터 그 공개와는 관계없이 보호된다. 즉, 출판, 낭독 등에 대한 통제권이 저작자에게 부여되며, 창작자로서 명예 훼손적이거나 경멸적인 방식으로 저작물이 각색되지 않을 권리를 포함하는 저작인격권(moral rights)도 인정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법에서는 여전히 타인의 저작물(말이나 이미지)을 콜라주(collage)하거나 재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고, 비평(criticism)이나 검토(review)를 위한 '공정 거래'(fair dealing) 또는 '공정 사용'(fair use) 이외에, 상업적 이익을 위한 실질적인 사용은 허용되지 않는다. 공정 사용은 미국 저작권법상의 개념으로서 영국의 공정 거래보다 더 넓은 개념인데, 우리나라의 '공정 이용'은 미국법과 유사하나 실제 적용에 있어서는 미국만큼 넓지는 않다고 한다. 아무튼, 현재 저작권은 인물의 사망 후 70년까지 인정되고 있는데, 예컨대 전기 작가(biographer)와 같은 사람들은 대상인물이 실제 사용한 특정 단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저작권이 표현의 자유를 크게 제한한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워버턴은, 특히 인터넷 시대에 저작권법이 재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법학자 '로렌스 레식'(Lawrence Lessig, 1961-) 교수의 입장을 소개한다. 레식은 1998년 미국에서 통과된 '소니 보노 저작권 기간 연장법'(Sonny Bono Copyright Term Extension Act, CTEA)에서 개인저작물의 경우 저작권 기간이 50년에서 20년이 연장된 것에 대하여, 그 당시 복제와 콜라주가 쉬워진 상황에서 오히려 저작권 보호 기간이 연장되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고 한다. 레식은 급기야 지적 재산의 공동 활용이 가능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에 대해 워버턴은 저작권의 재사용에 대한 모든 법적 제한을 해제하자는 급진적인 입장은 창작자의 경제적 기반을 훼손할 위험이 있으므로, 창의적 재사용을 위한 예외를 확대하여 금전적 인센티브와 표현의 자유 사이의 공정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 문학 저작권 보호 기간인 저작자 사후 70년은 타협의 결과로 창작 의욕 고취라는 도덕적이고 이상적 목적이라기보다는 국가 간 법률 조화와 저작권 보유자들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려는 실용적이고 정치적인 타협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환경에서 통제를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이 너무 많아지면서, '인쇄 시대의 타협'의 결과물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워버턴 교수는 문학 부문에서 예를 드는데,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작품처럼 저작권이 만료되어 공공 영역(public domain)으로 오게 된 단어들은 '토머스 스턴즈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1888-1965)이 그의 시 '황무지'에서 차용하여 재탄생되었다. 엘리엇은 재맥락화를 통해 새로운 의미와 예술적 가치를 창조하였는데, 이는 저작물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이 문화적 발전과 창의성 확대에 기여하는 중요한 가치임을 시사한다.
문학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인 법학 연구에서도 기존의 연구 성과의 재해석과 재구성은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다만, 법학은 저작권 준수에 대하여 엄격한 분야이다. 비평, 학술 연구, 뉴스 보도 등의 목적으로 적절한 분량의 저작물을 인용하는 행위는 저작권법상 공정 이용의 예외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특히 법학에서는 각주와 출처 표기가 매우 중요 시 된다. 이것은 단순한 형식적 장치가 아니라, 학문적 성실성과 후속 세대 연구의 토대를 제공하는 핵심적 관행인 동시에, 학자적 양심과 논증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방법론으로 간주된다. 누구의 생각인지, 무엇이 자신의 논증이고 무엇이 다른 학자의 견해인지 명확히 구분함으로써, 연구자는 지식의 계승과 검증 가능성을 확보한다. 이러한 방식은 학문의 신뢰성과 지속성을 보장하며, 후속 연구자가 기존 논의를 따라가고 새로운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는 장점이 강조된다.
한편, 글쓰기나 연구에서 AI의 역할이 매우 커지고 있는 요즘의 환경에서는, 워버턴 교수의 담론은 한 단계 더 깊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 AI는 그 구조적 특성상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해 통계적 패턴과 연관성을 기반으로 결과물을 생성하므로, 개별 학자의 글이나 아이디어가 어디서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추적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특히, 연구용 AI나 생성형 글쓰기 도구에서 나온 문장은 수많은 원재료가 혼합되어 하나의 출력으로 통합되는 과정을 거치므로, 누가 어떤 기여를 했는지 명확히 표시할 수 없으며, 전통적 각주 방식으로 이를 재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학문적 엄밀성을 지키면서 AI를 활용하는 데에는 기술적,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고 지적된다.
따라서, 저작권과 그에 대한 공정이용의 문제는 AI 시대에 더욱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르게 된다. AI 학습 과정에서 사용되는 방대한 저작물은 대부분 디지털 자료로 존재하며, 이들을 모두 개별적으로 허락받아 사용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수 있다. 동시에 AI를 이용한 창작 활동은 인간 연구자와 창작자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탐구하고 재가공할 수 있는 효율적이고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만약 기존 저작권을 엄격히 적용하면, AI를 통한 연구와 창작은 제약을 받아 기술과 학문 발전을 저해할 가능성도 있다. 그리하여, 현재 우리는 새로운 AI 시대에서 저작권은 보호와 활용 사이의 균형을 재조정해야 하는 결정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공정 이용의 확대는 표현의 자유를 넘어 학문과 창작의 자유를 보장하는 주요 논리로 부상한다. AI가 생성한 텍스트나 아이디어를 인용하거나 참고하는 행위가 학술적 목적, 교육, 연구 등 제한된 범위에서 이루어진다면, 기존 저작권 체계와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연구자는 새로운 지식 창출에 참여할 수 있다. 이는 표현의 자유와 창작의 자유가 단순히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도구적 차원의 AI를 포함한 협력적 환경에서도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AI를 활용한 학문과 창작에서는 완전한 출처 표기가 불가능하다는 한계를 인정하면서, 저작권 완화와 공정이용 확대를 통해 최소한의 '규제'의 설계를 재조정하는 방식의 접근이 바람직하다. 연구자와 AI 개발자는 투명한 이용 규칙을 설정하고, 학문적 목적에 부합하는 범위에서 AI의 창작물을 활용함으로써, 기술 발전과 표현의 자유, 학문의 진흥이라는 여러 목표를 조화롭게 달성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기존 학문 전통과 완전히 대립하지 않으며, 오히려 기술적 환경 변화에 따른 현실적 대응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공정한 이용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단순히 국내법 개정의 문제를 넘는 것이 될 수 있다. 국제 조약과 통상 마찰의 위험 때문에 독자적으로 큰 폭의 확대를 추진하기 어려운 한계가 분명히 있다.
결국, AI 시대의 저작권 논쟁은 단순히 법적 보호와 침해 여부를 가리는 문제가 아니라, 학문과 창작이 지속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 구조적 조건을 재설계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출처 명시와 각주라는 전통적 관행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AI의 학습과 생성 과정에서 이를 완벽히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정이용 확대, 연구 목적의 제한적 활용, AI 활용 규칙 설정 등의 조화로운 정책적·학문적 대응이 필요하며, 이는 학문과 기술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셰익스피어의 오래된 단어들이 엘리엇의 손끝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듯, AI라는 새로운 도구 앞에서 우리는 인류의 모든 지적 유산이 공공 영역으로 흐르는 강물로 모여들게 하고 창작의 마중물로 순환되게 해야 한다. 창작자에게 정당한 보상을 제공하여 창작 의욕을 꺾지 않으면서도, 인류의 지적 유산이 정체되지 않고 다음 세대의 창의성을 위한 자원으로 끊임없이 순환되도록 하는 섬세한 법적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즉, AI 시대의 '표현과 표절 사이'를 가르는 새로운 법적 경계를 설정하는 이 작업은, 결국 미래 세대가 물려받을 창의적 자유의 지형도를 그리는 일과 같다.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