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왔다. 그동안 일이 너무나 많았다. 정신없이 지나갔고, 지금은 일생일대의 중요한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기대를 하면 안 되지만 너무나 간절한 것이라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간절한 날들 속에 살면서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가고 있다. 느끼는 것들도 많고 깨닫는 것들도 많아 이곳에 그 흔적을 남겨보려 한다
보이지 않는 삶
이재은 아나운서의 브이로그를 자주 본다. 처음에는 무심코 봤다가 어느덧 팬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종종 동기부여가 필요할 때마다 그 채널을 찾는다. 이재은 아나운서는 뉴스 앵커를 굉장히 오래 한 것으로 안다. 그리고 책도 썼다. 하루를 48시간으로 사는 마법이라는 책이다. 브이로그를 보면 뉴스 앵커가 되면 하루 종일 뉴스 준비만 하는 것 같다. 아침에 출근해서 뉴스 생방을 할 때까지 공부하고 기사를 찾고 신문을 읽고 오직 뉴스를 위한 삶을 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조금 특이했던 점은 이재은 아나운서는 매일 아침마다 큐티라고 성경을 매일 노트에 옮겨 적는다. 어쩌면 그것이 이재은 아나운서가 긍정적이고 감사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이어리에 일정도 빼곡히 적는다. 그리고 휴일 브이로그를 봐도 출근할 때와 비슷하게 아침마다 큐티를 하고 일정한 루틴들을 이어간다. 튀지 않는 잔잔한 삶을 살면서 그치지 않는 잔잔한 열정들이 인상적이었다.
최근에는 뉴스가 아닌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브이로그를 보면 계속 꾸준히 공부하고 루틴을 이어가시는 것 같았다. 그 공부가 뉴스가 아닌 다른 분야로 바뀌었을 뿐. 무엇이 주어지건 그 주어진 업무와 일상을 충실히 살아내려고 하는 모습이 마음에 남았다. 물론 원하는 길을 너무나 정석적으로 걸어왔고 굉장히 성공한 사회인이다. 운과 노력이 모두 따라주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재은 아나운서가 '보이지 않는 삶'을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쉬는 날은 나태해지기 쉽고, 매일매일 하루 종일 파이팅 넘치게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도, 또 매일을 감사함을 가지고 산다는 것도 너무나 힘든 일이다.
허무로 시작된 이야기
나의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굉장히 불만이 가득한 사람이다. 그냥 만사가 다 불만이었다. 지금도 아니라고는 말을 못 한다. 사람 어디 가겠나.. 너무나 힘들게 살아왔고 항상 뭔가가 잘 안 풀렸다. 그래서 세상에 도전적이었고 항상 반항적이었다. 왜냐면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작은 일에도 화가 났고, 작은 손해라도 보면 너무나 억울했다. 이렇게 사는 게 무슨 감사한 마음이 들겠나. 매일을 내가 왜 태어나서 이 고생일까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물론 객관적인 상황이 안 좋았던 건 사실이다. 혼자 이겨내고 헤쳐나가야 했기에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독기만 가득해졌다. 내 생존이 최우선이다 보니 감정도 없어지고 타인과 세상에 관심이 없어졌다. 그냥 먹고사는 일에만 급급했다.
그리고 그렇게 나이를 먹었는데 너무 허무했다. 생각해 봤다. 왜 이렇게 된 거지. 나는 지금 내 인생이 바닥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왜 내 인생은 이렇게 안 풀리고 바닥을 치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이제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다고. 원하는 공부도 못했고 돈이 급해 일만 하면서 살아오다고 온몸이 망가졌는데 잃은 건강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만두지 못한다. 기댈 곳이 없다.
그런데 작년부터인가,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안될 거니까 안 해라는 마음보다 안되더라도 밑져야 본전인데 GO!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냥 뭐든 하기 시작했다. 성과가 나오지 않아도 그냥 했다. 어차피 나는 보여주기 위한 화려한 인생은 실패했다. 보통 수준도 못 미친다. 대신에 보이지 않는 삶 쪽에 서서 무언가를, 아니 무언가라도 해야 했다. 아무리 해도 티가 나지 않고 설사 평생 성과가 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성공하지 못할 거면 도전하지 않겠다고 했다. 가능성이 없다면 시작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예전의 나는 그랬다. 유명한 말이 있다. 커넥팅 더 닷. 내가 살면서 찍은 모든 점들은 결국 연결된다는 것. 살아가면서 그 의미를 더욱더 느낀다.
내공을 쌓자
이재은 아나운서에게는 좋은 환경과 운, 노력 이 삼박자가 잘 맞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누가 보지 않고 성과로 연결되지 않아도 항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노력을 하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 인상 깊었다. 그 모든 게 그분의 내공이 되지 않을까.
인생을 살다 보면 운이 좋아 반짝 잘 될 때가 있다. 하지만 결국 오래가는 사람은 내공이 좋은 사람이다. 예전에 아이유가 대화의 희열에서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의 인기가 모두 거품일까 봐 무서웠다고, 그 거품이 빠지고 밀도 있게 압축해서 봤을 때 자신이 너무 작은 사람일까 봐 걱정된다고, 그래서 그때부터 성공하든 아니든 직접 프로듀싱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공은 한 번에 쌓지 못한다. 작은 모래알부터 시작할 거다. 그런데 오래갈 수는 있다. 분명 오래갈 거고 끝까지 남을 거다. 살다가 장맛비가 퍼부울 때 나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장우산이 될 것이다. 물론 그것이 성공과 맞닿아 있지는 않다. 잘 사는 것, 이 사회가 성공이라 불러주는 무언가가 되려면 좋은 머리와 기가 막힌 운이 필요하다. 인생은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생을 살도록 버텨주는 것은 의미 없어 보이는 어떠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타인은 모르는 나에게만 당위성이 부여되는 노력들 말이다. 남들이 왜 그러냐고 하는데 나는 꼭 해야 되는 그런 것들 말이다. 남들이 어려운 길이라고 말려도 나는 꼭 가야 하는 길 말이다.
살아보니 실패하는 삶이 무서운 게 아니고 후회되는 인생이 더 무섭더라.
마지막으로 정영한 아나운서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의아함은 그들의 몫, 나는 나다운 걸 하자'
나는 이 말이 참 좋다.
그리고 가끔 떠올릴 때마다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삶을, 의미 없는 나만의 무언가를 쌓아나가는 모든 이들의 여정을 응원하자.
그 끝이 성공은 아닐지라고 적어도 후회는 없는 삶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