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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 <24개 카프리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 <24개 카프리스(Caprice)>

몇 해 전, 음악회에 갔을 때 일이다. 바이올린 연주자가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던 중 현이 끊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협연자는 잠시 당황한 듯 보였지만, 이내 다시 연주를 이어나갔다. 연주 중 연주자의 현이 끊어진다면 연주자들은 어떻게 대처할까? 단독 솔리스트의 연주인 경우 연주장 밖으로 나가 현을 교체한 후 다시 연주를 이어나간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연하는 연주자의 경우 콘서트마스터(악장)의 악기를 재빨리 이어받아 연주한다. 악장에게 넘겨진 악기는 다시 옆 주자에게 넘겨지고, 옆 주자는 뒤로 악기를 넘긴다. 마지막 주자에 이르면 연주자는 악기를 무대 밖으로 들고나가 현을 교체한 후 독주자에게 건넨다. 


200년 전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리는 파가니니는 연주 중 바이올린 현이 끊어졌다. 청중들이 놀라며, 그의 행동에 주목했다. 파가니니는 당황한 기색 없이 남은 세 줄로 연주를 계속 이어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또 한 줄의 현이 끊어졌다. 이번에는 남은 두 줄로 연주를 이어나갔다. 급기야 한 줄의 현만 남게 되었다. 파가니니는 남은 한 줄로 연주를 했고, 끝까지 연주를 마쳤다. 신기에 가까운 연주 실력이었다. 이후 사람들은 파가니니가 재능을 얻기 위해 악마와 거래했다는 루머를 만들어냈다. 


파가니니의 <24개 카프리스>는 악마적인 연주기교를 총망라한 작품이다. 카프리스는 “자유로운 형식을 가진, 역동성 넘치는 짧은 소품곡”을 말한다. 기상곡 또는 카프리치오라고도 불리는 카프리스는 총 24곡으로 구성되었다. 파가니니는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기 위해 1802년부터 1817년까지 약 15년에 걸쳐 작곡되었다.  많은 작곡가들이 파가니니의 카프리스를 편곡하여 연주하였다. 리스트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대연습곡> 브람스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등이 바로 그것이다.


카프리스 악보를 본 당대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연주 불가능 곡”이라고 입 모아 평했다. 각 곡마다 곡의 길이는 길지 않지만, 짧은 시간 동안 손가락이 견디지 못할 정도의 다양한 기교들이 나온다. 아주 높은 고음의 휘파람 소리 같은 하모닉스, 활 털을 튕기며 연주하는 운궁법, 둘 이상의 현을 동시에 누른 채로 연주하는 중음 주법 등 고난도의 기술들이 요구된다. 바이올린 연주자들에게 테크닉을 위한 연습곡으로 사용되고 있다. 무엇보다 카프리스는 피아노나 오케스트라 반주 없이 연주되는 무반주 독주곡이다. 파가니니가 어떤 바이올린리스트였는지 짐작케 한다. 


파가니니의 <24곡의 카프리스>의 1번 곡은 32분 음표의 연속적인 행진이 펼쳐지며 시작을 알린다. 다른 줄에 걸리지 않도록 점프하듯 깨끗하게 연주해야 하는 2번 곡을 지나면 고난도의 연속적인 옥타브와 트릴이 펼쳐지는 3번 곡이 나온다. 아름다운 멜로디의 4번 곡은 오페라 아리아 같은 느낌마저 든다. 5번 곡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큰 폭의 아르페지오와 스피카토가 나온다. 6번 곡은 ‘트릴’이라는 부제가 붙은 곡이다. 두 줄을 동시 그으면서 트릴을 연주하는 트릴을 위한 곡이다. 9번 곡은 ‘사냥’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다른 곡에 비해 어렵지 않아 어린 학생들도 많이 연주하는 곡이다. 


‘악마의 미소’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13번 곡은 마치 악마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곡은 24번과 더불어 가장 유명한 곡이다. 24번 곡은 전 곡 중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지고 사랑받는 곡이다. 광고음악, 영화음악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길이도 전곡의 길이 중 가장 길다. 하나의 테마를 시작으로 11개의 변주곡으로 구성되었다. 전곡의 각종 기교가 24번 곡에서 모두 펼쳐진다. 리스트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대연습곡> 제6번의 원곡이다. 두 곡을 비교해서 감상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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