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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Mar 12. 2024

미사 보려고 줄 서는 성당, 경비도 삼엄하네

은퇴한 부부의 좌충우돌 배낭여행기(25화)

여행 중에 수많은 성당을 가보았지만 미사에 참석할 기회는 없었다.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는 일요일 아침 9시에 시작하는 인터내셔널 미사가 있다. 여행객들을 위한 미사다. 평소 성당에 잘 안 나가긴 하지만 성당에서 결혼식도 한 우리는 이 미사에 참석하고 싶었다.



인원 제한이 있다고 들어서 한 시간 일찍, 오전 8시에 성당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도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우리 앞에서 끊길까 봐 조마조마했다. 차례가 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고 다행히 들어갈 수 있었다. 경비가 삼엄하고 입구에 들어서니 보안의 이유인지 가방 검사를 한다. 공항 들고날 때처럼 엑스레이 투시기를 통과해야만 한다. 전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테러의 위협이 있어 그런 것 같다. 


             

▲  스테인드글라스 빛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내부

ⓒ 김연순


             

▲  사르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인터내셔널 미사가 끝나고 사제단이 내려오는 모습

ⓒ 김연순



미사가 시작되었다. 언어는 달랐지만 익숙한 전례다. 아침의 밝은 태양빛은 성당 양쪽 벽면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붉은빛으로, 초록빛으로, 푸른빛으로 내부의 벽과 바닥, 천장에 투과된다. 오묘하고 은은한 빛은 성가대에서 흘러나오는 성가와 함께 어우러지며 내 마음의 경건함은 최고조에 달했다.



미사의 마지막 부분,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데 옆에 있는 남편에게 인사하며 온 마음을 다해 그가 평화롭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왼편의 사람, 앞과 뒷사람에게도 고개 숙여 인사하며 진심을 다해 평화를 빌었다. 그 순간만큼은 머리 색깔, 얼굴 색깔들 달라도 마치 오랜 인연으로 이어져 온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감사하다.



미사를 마치고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크루아상과 꼬르따도를 주문했다. 바로 눈앞에 파밀리아 성당 전경이 보인다. 지금 본 이 장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지금도 성당은 공사 중이기에 내일이면 지금의 모습과 또 달라지기 때문이다.        



오후엔 호안 미로 미술관에 가기로 했다. 숙소를 나섰는데 비가 내린다. 버스를 타고 미술관 앞에서 내리니 더 굵고 세찬 비가 쏟아진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우비를 꺼내 입었다. 미술관 입구까지 걷는 동안 얇은 우비는 강한 비바람에 견디지 못하고 여기저기 찢겨 나갔다. 손수건으로 대충 빗물을 닦고 안으로 들어갔다.


             

▲  호안 미로 미술관 전경

ⓒ 김연순



 

▲  호안 미로. 스페인 출신의 대표적 미술 작가.

ⓒ 김연순



호안 미로 미술관은 미로와 그의 부인, 친구와 후원자들이 기부한 작품 총 1만 4천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의자에 앉아 있는 호안 미로가 맞아주었다. 물론 사진이다. 호안 미로는 1893년에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나 1983년 12월 25일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피카소, 달리와 함께 스페인을 대표하는 작가이며 오래도록 열정적으로 활동해 회화와 조각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원색으로 채색된 원과 단순한 곡선, 호안 미로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다. 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서 눈에 익은 초현실주의자 호안 미로의 그 이미지, 미술관에서 실제 작품을 직접 보니 신기하기 그지없다. 


             

▲  호안 미로의 작품

ⓒ 김연순



이어폰도 빌려 작품 설명을 들었다. 못 알아듣는 건 넘어가고 일부 알아듣는 건 대략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뭔가 기분이 벙벙하고 마음이 풍성해지는 것 같다. 옥상에도 그의 작품이 있다.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바르셀로나 시내 전경이 또 기가 막힌다.



  

깔끔하고 세련된 붉은색 지붕의 건물들이 가득하다. 비가 갠 야외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밖으로 나왔다. 해가 비치는 초록의 잔디밭에 붉은색 조각품, 그리고 흰색 미술관 건물이 대비되어 한층 더 돋보인다. 호안 미로 미술관, 비 온 뒤라 그런지 산뜻하면서도 운치 있다.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RCDE(Real Club Deportivo Espanyol de Barcelona) 스


타디움에 도착했다. 벌써부터 심장이 벌렁벌렁한다. 바르셀로나엔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팀 FC 바르셀로나가 있다. 그런데 바르셀로나엔 FC 바르셀로나 말고도 실력이 만만치 않은 또 다른 축구팀이 있다. 바로 RCD 에스파뇰이다. 오늘 RCD 에스파뇰 홈구장에서 FC 바르셀로나와 RCD 에스파뇰의 경기가 펼쳐진다.  



바르셀로나 여행계획을 짜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도 아니요, 카사 바트요도 아니었다. 혹시나 FC 바르셀로나의 축구 경기를 볼 수 있을까, 였다. 축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FC 바르셀로나에 대한 유별난 관심은 바로 협동조합이기 때문이다.



평소 협동조합에 대한 강의를 하며 외국의 사례로 FC 바르셀로나를 자주 거론했다. 짧은 영상도 보여주며 수강생들과 소감도 나누곤 했다. 그 사례인 축구팀의 경기를 직관할 수 있다는 거, 정말 꿈같은 일이다. 



FC 바르셀로나의 경기를, 그것도 홈구장인 캄 누우에서 꼭 보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가 바르셀로나에 머무는 동안 캄 누우에선 경기가 안 열린다. 어떻게든 보고 싶은 마음에 여행 떠나기 전 작은 아이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봐라, 했다.



아이는 열심히 검색하더니 FC 바르셀로나의 경기를 찾아냈다. 그게 바로 RCD 에스파뇰 홈구장에서 하는 경기였다. 캄 누우에서 열리는 경기는 아니라도 이게 어디냐 싶었다. 아이에게 폭풍 같은 찬사를 내뱉고 적당한 가격의 좋은 자리를 골라 바로 예약에 돌입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그 경기장에 왔다.     


             

▲  FC바르셀로나와 RCD에스파뇰의 경기 시작 직전

ⓒ 김연순



경기장 들어가기 전부터 거리는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시민들로 가득했다. 남편과 나는 경기장 입구에 있는 카페에서 맥주를 한 잔씩 하며 축구를 영접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축구를 영접하려면 약간의 술기운, 약간의 흥분은 필수다.



경기장 출입구 역시 경비가 삼엄했는데 여기서 여행 내내 들고 다니던 텀블러를 압수당했다. 경기장에 던지면 위험할 물건은 모두 압수한다. 심지어 생수가 든 물병도 안 된단다. 그것도 멀리서 던지면 무기가 된다나? 너무도 아끼던 텀블러라 쓰레기통에 넣지 못하고 저 멀리 출입구 한쪽에 두었다. 혹시나 끝나고 나올 때까지 그대로 있으면 가져오려고(나올 때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실종이다).  



경기장에 입장해 지정된 좌석에 앉았다. 좌석은 만석이고 에스파뇰 응원단의 파란색 유니폼으로 경기장은 가득 차 있다. 우리 좌석은 공교롭게도 에스파뇰 응원석이다. 소수의 바르셀로나 응원단은 저 멀리 맞은편에 아주 조그마하게 보인다. 이미 주위는 흥분의 도가니다. 우리 옆 좌석은 나이 든 아저씨들이고 앞 좌석은 청소년들인데 이들은 서로 아는 사이인지 먹을 것도 나누며 신이 난 채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우리는 FC 바르셀로나를 응원한다는 것을 티 낼 수가 없었다. 축구 티켓 예매한 곳에서 사전에 연락이 왔는데, 에스파뇰 홈구장에서 FC 바르셀로나를 상징하는 깃발이나 도구를 절대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고 주의 경고를 보내왔다. 경기 중에 흥분의 도가니에 빠지게 되면 위험하다는 거다.


             

▲  FC바르셀로나와 RCD에스파뇰의 경기가 끝났다. 4:2로 바셀이 승리했다.

ⓒ 김연순



드디어 선수들이 입장한다. 먼저 등장하는 FC 바르셀로나 선수들을 전광판에서 한 명 한 명 소개하는데 순식간에 끝났다. 뭔가 후다닥 해치우는 느낌이다. 너무나 웃겼던 건, 에스파뇰 선수들이 등장할 때다. 선수 한 명 한 명 등장하는데 관중석 지붕 전체에 불이 번쩍번쩍 들어오고 동시에 신나는 음악도 나온다. 선수들을 맞는 관중들의 환호성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이렇게까지 대놓고 한다고? 너무 노골적이라는 게 너무 웃긴다. 한참을 웃었다.



경기가 시작되었는데 FC 바르셀로나의 실력이 월등히 우세하다. 한 골씩 먹을 때마다 관중석은 집단적으로 자지러지는 신음 소리를 낸다. 상대 선수들에겐 야유를 보내고 자기 팀 선수가 슛을 하면 마치 골이라도 넣은 것처럼 환호한다. 우리는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골을 넣을 때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물론 속으로만이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분위기는 고조되었고 소리는 더 커졌다. 이날 경기장에 와서 알았는데 놀랍게도 이 경기는 바르셀로나가 이기면 라리가 우승이 결정되는 경기였다. 바르셀로나 팀은 우승을 위해서, 에스파뇰 팀은 리그 성적은 하위권이었지만 바르셀로나의 오랜 경쟁자로서 사력을 다 할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결국 4:2로 바르셀로나가 승리했다. FC 바르셀로나가 드디어 라리가 최종 우승을 거머쥐었다. 감격에 찬 선수들은 기쁨에 겨워 운동장에서 원을 그리며 뛰었다. 우리도 주변을 살피며 소심하지만 확실한 환호의 표정을 지었다. 눈앞에서 FC 바르셀로나의 경기를 직관하다니. 그것도 라리가 결승 경기를 보다니. 게다가 바르셀로나가 우승을 하다니...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  라리가 우승의 현장. 우승한 FC 바르셀로나가 우승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김연순



감격에 겨운 것도 잠시,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순식간에 쫓기듯이 경기장을 빠져나간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진짜 쫓기고 있다. 성이 난 에스파뇰 응원단이 관중석에서 물병을 던지고 경기장으로 난입해 급기야 어디서 가져온 건지 모를 의자까지 던진다. 바르셀로나 선수들에게 대거 몰려가는데 그게 그렇게 웃길 수가 없다. 아니 그렇게 뛰어가서 뭘 하겠다는 건지.



다행히 빠르게 경찰들이 막아서는 바람에 집단으로 몰려간 성난 군중은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뛰어 들어간 사람들 중 나이 많은 할아버지들도 있다. 대체 어쩌겠다는 건지, 그 할아버지들이 앞장서 뛰어 나가는 모습이 웃기면서도 귀엽기까지 했다. 경기는 끝났지만 경기 외에도 볼게 많다. 한참 동안 웃다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밖으로 나오니 의외다. 예상하기로는 분명 흥분한 관중들이 길가의 돌이라도 차던가, 구조물이라도 밀어 버릴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 놀랍게도 모두들 차분하게 돌아간다. 술집에 몰려가 흥분을 배가하며 알코올에 빠질 거라는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즐비한 술집도 그냥 지나치고 대부분 전철역으로 향한다. 우리도 끼어서 역으로 향했다. 모두들 차분하고 안정된 분위기에서 줄을 서고 기차표를 산다. 놀라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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