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 집, 계약할까 말까?

비건 셰어하우스 만들기 3화

by 현주

집을 구하는 일, 이렇게 감정의 롤러코스터일 줄은 몰랐어요.


마포구 근방의 매물을 닥치는 대로 찾아봤습니다. 직방 앱을 켜고 ‘비건 셰어하우스에 어울리는 완벽한 집’을 검색하고 싶었지만, 그런 카테고리는 없더라고요. 손품과 발품을 팔 수밖에요. 그런데



정말 뜻밖에도, 첫날부터 만났어요
나의 한남더힐을





처음에는 이 정도 조건만 정해놓고 집을 봤어요(이후에는 20개로 늘어남)

- 보증금: HUG 버팀목은 무소득 무직자도 2억까지 대출이 나와요. 셋이서 영끌하면 2억 5천까지는 모을 수 있을 것 같아 이를 최대치로
- 월세: 이전 집보다 단 10만 원이라도 줄이고 싶었어요. 셋이서 50만 원씩, 최대는 150만 원
- 위치: 마포구는 서울에서 비건 식당이 가장 많아요. 망원시장의 야채와 과일은 가성비가 환상적!
- 방 개수: 셋이서 살고 싶고, 개인 공간이 필요하니 쓰리룸만
- 부엌: 두 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구조
- 그 외: 층간소음, 벽간소음, 수압, 단열, 곰팡이, 거실이 남향




1. 상암동 빌라(Y부동산)

3,000/130, 방3, 화장실2, 22평


문을 열자 아들분이 맞아주셨고, 어머니도 계셨어요. 조심조심 들어가 양해를 구했죠. 임장은 처음이라. 떨리는 마음을 누르고, 미리 준비해 간 체크리스트를 살펴봐요. 창은 남동향, 부엌은 두 명이 동시에 쓸 수 있겠고, 벽간소음도 괜찮네. 하는 스스로를 보며 어른이 된 것 같아 뿌듯 으쓱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5분 만에 바로 나와야 할 집이었는데 말이죠..ㅎ


창문마다 물방울이 송골송골. "결로가 좀 있네요" 제 말에 젊은 중개인은 "환기를 안 시켜서 그래요~" 가볍게 넘겨요. "근처에 이렇게 큰 매물 없어요. 저렴한 편이에요", "한번 계약되었다가 다시 나왔어요,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신다고" 그때는 그러려니 했어요. 근데 이제 보니까 중개인들이 말 돌리는 전형적인 멘트입니다. 둘 다 조바심 유발에, 후자는 '문제 있는 집'이라는 속뜻까지. 중개인의 말을 조심하세요.


이 집의 결정적 단점은 따로 있어요. 1층이 고깃집. 저녁마다 고기 굽는 냄새가 풍기는 비건 셰어하우스? 아무리 궁해도 이건 아니죠. 비건 셰어하우스의 첫 관문은 생각보다 험난했습니다 ㅠㅠ




2. 합정동 빌라(T부동산)

1억/120, 방3, 화장실2, 14평


이 집은 형제가 사는듯했는데, 마주치지는 않았어요. 다행히 첫 번째 집과 다르게 결로도 없었죠. 해가 잘 들고, 단열도 잘 된대요. 그런데, 벽을 똑똑 두드리니 제 통장 잔고 소리가 나요. 텅텅. 음??!? 당황스러웠어요. "요즘 신축은 다 석고보드예요" 중개인이 너무 당연하듯 말해요.


이후 다른 집을 돌아다닐 때마다 이 집 석고보드인가요? 벽을 두드렸는데 그런 집이 어딨냐며 되려 제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어요. 그제야 깨달았어요. 중개인 잘 만나는 게 중요하다는 게 이런 거구나.


집 하나 구하는 게 이렇게 어렵다니. 속지 않기 위한 방법이 내가 단단히 공부하고 준비하는 거라니, 속이는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 집을 집답게 짓지 않는 사람도, 정보 격차를 악용하는 사람도 너무 많다는 현실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요. 이런 사람들은 꼭 가까운 지인에게 지독하게 배신당하길 빌어요 :)




3. 망원동 빌라(H부동산)

2.5억/15, 방3, 화장실1, 9평


공실에 벽과 바닥이 빤딱빤딱한 재질이라 깔끔하게 느껴져요. 창도 넓어서 채광이 좋았죠. 침대에 누워 햇빛을 쬐는 저를 상상하니 미소가 사르르. 그런데 상상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요. 스트레칭은 방에서 못하겠는데, 거실에서 해야 하나? 스쿼트는 화장실에서?


'셋이서 살려면 20평은 되어야겠다'는 기준이 생겼어요.


H 부동산 사장님은 제가 좋아할 만한 매물이 있다며 기다려 달라고 했어요. 앞선 중개인들과 달리 제가 물어보지 않은 것까지 설명을 야무지게 잘해주셨거든요. 그래서 얼마나 좋은 매물을 보여주실까 기대되었어요. 이후에 보러 가기로 한 집을 취소하고 H사장님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4. 합정동 H아파트(H부동산)

2.5억/90, 방3, 화장실2, 22평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어요. 집에 돌아와서도 H아파트만 생각하면 막.. 가슴이 막 미친 듯이 뛰어요. 일이 손에 안 잡히죠. 상상 속에서는 거실 식탁에서 이미 수십 끼를 먹었습니다 푸하하


'아파트'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동도 하나밖에 없고, 경비원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지만, 빌라가 아닌 아파트라는 지칭어가 왠지 모르게 안전하다는 느낌을 줬거든요.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샷시도 튼튼해 보이고, 방 크기도 적당해요. 다용도실에 곰팡이가 있긴 하지만, 거실, 부엌, 방, 화장실에서는 보이지 않아요.


위치도 딱 비세권. 제일 좋아하는 비건식당에 슬리퍼를 신고 갈 수 있다니! 하우스 메이트, 그리고 근처에 사는 비건 친구들을 불러 홈파티 하는 상상도 해요. 그리고 갈 수 있는 크로스핏 박스가 4개나 된다는 점에서 최종 합격.


그냥 이 집을 계약해 버릴까?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콩닥콩닥 뛰어요. 하지만 이건 2.5억짜리 계약. 이렇게 큰 금액을 단번에 계약할 수는 없으니, 집을 좀 더 둘러보기로 해요. 임장 첫날만에 마음에 드는 집을 만나다니 얼떨떨하면서도, 이 집이 나가더라도 비슷한 매물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일주일 뒤, H아파트를 다시 찾았어요. 예비 하우스메이트들과 함께. 또 봐도, 또 좋았어요.


그런데 이상하죠.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집은 팔리지 않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 이 집을 계약해도 될까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2월 회고 - #이달의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