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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JO Aug 07. 2023

05 우물 안 개구리

내 고향은 고추장으로 유명한 전북 순창이다. 나는 1967년 순창에서도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하는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자그마한 마을 바로 앞에 국민학교가 있었고, 마을 뒤편으로는 팔명당과 큰실봉, 작은실봉이 사이좋게 마주 보고 있었다. 

학교에는 송구부(핸드볼부)가 있었는데  운동신경이 좋았던 나는 4학년 때부터 송구부에 뽑혔고 곧바로 주전을 꿰찼다.  그 당시 선수들을 나눠 수시로 연습 게임을 하곤 했는데 나는 열 골이면 아홉 골을 넣을 정도로 골 감각이 뛰어나 언젠가부터 '국가대표'라는 별명이 붙었다.   

    

1970년대 초반 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지만 아직 우리 마을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마을도 가난하고 학교도 가난해서 선수들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었다. 궁리 끝에 학교에서는 선수들을 위해 학생 1인당 달걀 하나와 라면 한 봉지를 의무적으로(?) 가져오도록 하였다. 우리는 1주일에 한 번씩 연습이 끝난 후 운동장에서 큰 솥단지에 달걀을 넣은 라면을 끓여 먹었는데 그럴 때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어느덧 6학년이 되었고 최고참으로 주장도 맡게 되었다. 키도 제법 컸고 기량도 이전과는 몰라보게 향상되었다. 나는 더 이상 이 작은 학교에서 썩고 있을 인재가 아니었다.      

그해 10월 드디어 내 실력을 뽐낼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순창군 내에는 송구부가 있는 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가까운 남원시로 친선시합을 하러 가게 되었다. 그동안 주위에서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받아왔던 터였기에 이번 시합의 MVP는 때 놓은 당상이었다.


시합이 열리는 날.

새벽같이 교장 선생님, 체육선생님 그리고 아버지를 비롯하여 많은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남원으로 출발했다. 태어나 처음 타보는 버스에 긴장했는지 얼마 가지 못해 심한 멀미로 정신이 혼미했다. 여기저기서 시합 걱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울퉁불퉁한 도로 양쪽으로 오늘따라 얌전하게 늘어선 코스모스,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 파란 가을 하늘, 모두 한마음으로 우리를 응원하는데 나만 시들어버린 풀잎처럼 힘이 없었다.  

찬물을 들이켜고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나니 남원 국민학교에 도착했다. 교문에서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가볍게  몸을 풀고 상대방이 국가대표(?)의 실력을 눈치채지 못하게 슛도 가볍게 던져 보았다. 경기장 양쪽에 모인 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나를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양쪽 선수들이 중앙에 마주 섰다. 

서로 눈싸움을 하며 인사를 나누자 시합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분명 국민학생이라고 했는데 체격은 중학생보다 훨씬 커 보였다.  "키만 멀대같이 큰 거지. 별거 없을 거야" 나지막이 우리 팀 선수들에게 말했다. "‘오늘 작은 고추가 맵다는 것을 보여주자" 힘차게 파이팅을 외치고 나니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아버지는 언제 막걸리를 드셨는지 벌써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셨다. 이리저리 왔다갔다하시며 능숙하게 꽹과리를 치고 계셨다. 우리가 먼저 공격이었다. 나는 잽싸게 패스를 받아 쏜살같이 드리블을 하여 한달음에 상대편 골문 앞으로 달려가 첫 번째 슛을 날렸다. 비록 골인은 되지 않았지만 기선제압이었다. ‘봤지, 나 이 정도야. 너희들 오늘 잘못 만난 거야’. 당황한 상대편이 약간은 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내 공을 잡은 골키퍼가 공을 길게 던졌고, 이를 잡은 공격수는 곧바로 우리 편 골네트를 갈랐다. 순식간이었다. ‘이게 아닌데.’ '그럴 수도 있지, 이제 시작이잔아'. 동요하는 선수들을 향해  다시 한번 파이팅을 외쳤다.      

아버지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고, 꽹과리 소리도 더 요란해졌다. 아까 봤던 파란 가을 하늘이 검은 먹구름으로 가득했다. 덩달아 나의 심장도 격렬해졌다. 땀방울이 비 오듯 쏟아졌다. ‘파이팅’을 목이 터져라 외치며 상대를 파고들었지만 번번이 슛도 던지지 못하고 공을 뺏기고 말았다. 어느덧 점수는 5-0.


전반전이 끝났다. 붉게 상기된 얼굴에 처음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었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시는 교장 선생님과 어르신들의 격려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5분 휴식 후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전반전은 한바탕 꿈같았다. 후반전도 경기양상은 변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제 완전히 취하신 듯했다. 꽹과리 소리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볼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 땀인지 눈물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속절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어느덧 점수는 10-0. 남은 시간은 1분이었다. 후회가 밀려왔다. 왜 그렇게 자신만만했을까. 경쟁 상대 없는 작은 시골에서 그동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우쭐거렸다. 그러나 되돌 릴 수도 없었다. 

한 골만 넣자고 외치면서도 속으로 나도 모르게 상대방의 실수를 빌었다. 가장 멋지게 한 골만 넣으면 이 모든 창피함을 날려버릴 것만 같았다. 내 바람이 통했을까. 


기다리던 황금 같은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다. 중앙선 근처에 멍하니 혼자 서 있는데 공이 날아왔다. 공을 받아 들고 번개처럼 내 달렸다. 온몸은 땀으로 흥건했고 나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그렇게 달리고 있었다. 현란하게 드리블을 한 뒤 야무지게 두 손으로 공을 움켜잡았다. 순간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공이 자꾸 빠져나가려 했다. 모든 시선이 다시 나의 떨리는 두 손위로 모여드는 것 같았다. '이때다'. 그동안 수도 없이 연습했던 7미터 지점에서 힘껏 날아올랐다. 얼마나 높게 뛰어올랐는지 중학생 같던 골키퍼가 한참 작게 보였다. 그대로 공중에서 360도 회전을 하며 골대 오른쪽으로 공을 힘차게 던지고  골키퍼 앞에 그대로 쓰러졌다.  '오늘의 가장 멋진 골, 그래 이것이면 충분해, 됐어'. 바닥에 얼굴을 묻고 어떤 모습으로 일어날까 잠시 망설였다.     

주위가 조용했다. 힘겹게 고개를 드는데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쟤, 도대체 왜 넘어진 거야. 별명이 국가대표라며, 쯧쯧쯧·’ 팔꿈치는 바닥에 깎여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힘차게 슛을 던졌건만 손에 너무 힘이 들어갔는지 공은 내 머리 위에서 패대기 쳐지듯 빠져나가 버렸다. 상대편 골키퍼가 거인처럼 뚜벅뚜벅 내 앞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또렷해지는 순간 다시 한번 나를 때려눕힐 듯이 종료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포성처럼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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