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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JO Aug 04. 2023

03 그녀는 너무 예뻤다 -천생연분

본격적인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오른 다리를 무릎까지 석고붕대로 깁스를 했다. 머리 곳곳의 살점이 여러군데 떨어져 나갔고, 가운데 이도 하나 깨진 채 한쪽 겨드랑이에 목발을 짚고 다니는 모습이 영락없는 영구였다. 나도 내 얼굴을 쳐다 보기가 민망했다. 아버지가 쓰러지셨을 때 보호자로 3개월 병원 생활을 한 적은 있지만 내가 환자가 되어 입원한 것은 처음이었다. 머리 감는 것, 밥 먹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특히 힘들었던 것은 석고붕대 안의 다리가 가려울 때였다. 단단한 석고붕대를 떼어 낼 수도 없고, 손가락도 닿지 않아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궁리 끝에 옷걸이를 길게 펴 가려움을 해소할 수 있었으니. 나름 슬기로운 방법이었다. 어느덧 병원 생활에 익숙해졌고 이제 외상도 어느 정도 치료가 되었다. 

나를 힘들게 했던 석고붕대도 풀렸고 다시 직립보행이 가능해졌다. 퇴원해서 다시 직장에 복귀할 생각을 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 제출할 진단서를 발급받으러 원무과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연히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나처럼 오른쪽 다리를 절뚝거리고 있었다. 교통사고를 당해 4주 진단을 받고 입원했다고 했다. 무심한 것처럼 어떻게 사고가 났는지 물었다. ’ 초보 운전이라 앞만 보고 호남대 사거리 쪽으로 달리고 있었어요. 사거리 교차로에 막 들어섰는데 갑자기 구급차 한 대가 달려오는 거예요. 피할 틈도 없었어요. 구급차가 제 조수석을 들이받았고 저는 20미터 넘게 밀려가 정신을 잃었어요 ‘ ’아, 예 큰일 날 뻔했네요 , 천만 다행이었내요‘. 나의 무용담을 들려줬다. 아스팔트가 산산조각이 날 정도로 세게 머리로 부딪혔는데 고작 4주 진단이 나왔고 이제 성공적인 병원생활 끝에 내일 퇴원할 예정이라고. 치료 잘 받으라고 인사를 하고 나는 다음날 퇴원 했다.  직장에 복귀하여 예전처럼 

정신없이 업무에 임했다. 


그해 12월은 쓸쓸했다. 크리스머스 전날 봤던 미팅도 아무런 소득 없이 1998년 새해를 맞았다. 또다시 다가오는 밸런타인데이.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내 나이 서른둘이었다. 몇 번이나 주민등록증을 다시 봐도 서른둘이  맞았다. 죄없는 주민등록증을 내동댕이치기를 몇번 그래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밸런타인데이. 어떻게 생겨난 날인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날을 무사히 넘기는 것이 중요했다. 이날을 잘 넘겨야 진짜 서른둘이 된다고 생각했다. 퇴근을 앞둔 어느 날. 슈마허 님이 나를 보자고 했다. 잘 아는 분 딸이 있는데 한번 만나 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전우같은 생각에 나는 망설임 없이 ’ 예스‘라고 답했다. 


 2. 14. 밸런타인데이. 시골로 뺘져나가는 모퉁이에 있는 호텔 커피숍이었다. 전문용어로’ 선‘이었다. 나는 이 선을 성공적으로 넘기를 바랐다. 사고 때 입었던 것과 똑같은 조끼 달린 갈색 양복을 다시 샀고 그 양복을 입고 약속 장소로 갔다. 나의 바램처럼 여기저기 조심스럽게 ’ 선‘을 넘고 있는 남녀들. 그녀가 나타났다. 순간 당황했고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내 앞에 나타난 여인은 지난번 병원에서 보았던 그녀였다. 감전사고가 난 것처럼 잠시 침묵이 흘렀다. 슈마허 님은 전문가처럼 잠시 소개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이산가족이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나는 이것은 운명이고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했다.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연도 이런 우연은 없다. 아니다. 이 세상에 우연은 단연코 단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은 필연이라고 나는 믿었다. 말하자면 형법 인관관계 학설 중 ’ 조건설‘처럼 말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지 않았더라면, 출장을 가지 않았더라면, 내가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것을 ’ 필연설‘이라고 명명하고 그 설을 절대적으로 따르기로 했다. 내가 태어나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쭉 준비되고 이어져 왔던 그 필연의 끝이 오늘 이자리라고 나는 굳게 믿었다.  ’ 그녀는 경찰이라고 했다 ‘나도 수사관이라고 했다’ 그녀는 야간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 나도 작년에 야간대학에 입학하여 곧 2학년이 될 거라고 했다’ 그녀는 기독교를 믿는다고 했다. 나는 천주교를 믿는다고 했다. 종교가 문제가 될 수 없다고 나는 단호하게 답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휘호 여사도 종교는 달랐지만 서로 존중하며 평생을 같이해 오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나는 흥분했다. 지금은 9급이지만 5급 행정고시에 합격하는 것이 목표라고 큰소리쳤다. 우리는 서로 다니는 야간대학을 오가며 데이트를 했다. 나는 그녀가 좋아하는 책이 무엇인지 물어 그 책을 읽었고, 택견을 배운다는 말을 듣고  택견 도장에 등록했고, 그녀가 좋아하는 클래식 명반을 찾아들었다. 시간이 없어도 시간을 쪼개어 자주 편지를 썼다. 밸런타인데이에 처음 그녀를 만났고, 한 달이 지난 화이트데이에 손을 잡고 고백을 했다. 1999. 2. 28. 우리는 그렇게 부부가 되었고 아들 둘, 딸 하나를 낳았다. 그리고 나는 2020. 11. 3. 드디어  5급 사무관 승진시험에 합격하여 그렇게 큰소리쳤던 5급 사무관의 약속을 26년만에 지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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