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는 어떻게 알았을까, 종달새 둥지에 알 낳는 법을

하룻밤에 읽는 우주와 생물의 진화 이야기

by 황사민

서장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서부극 ‘OK목장의 결투’의 주연 배우 커크 더글러스의 아들 마이클 더글러스는 아버지가 판권을 물려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제작하여 1975년에 개봉하였다. 이 영화는 그에게 아카데미상(제작상)과 어마어마한 흥행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뻐꾸기 둥지’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뻐꾸기는 스스로 둥지를 만들지 않으니 뻐꾸기 둥지가 있을 리 없다. 위 영화 제목에서 ‘뻐꾸기 둥지’는 정신병원을 은유한 것이다. 뻐꾸기는 스스로 둥지를 만들지 않고,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것으로 유명하다.

뻐꾸기 암컷은 작은 다른 새들, 즉, 뱁새, 멧새, 종달새(숙주 새)의 둥지에 재빠르게 알을 낳고 날아가 버린다. 뻐꾸기는 어미 새가 둥지를 비운 틈을 타서 10초 이내에 전광석화처럼 알을 낳고 유유히 사라진다. 다시 돌아보는 일도 없다. 알만 낳는 것이 아니고 심지어 둥지 안에 있던 숙주 새의 알을 한 개쯤 빼내버리기도 한다. 뻐꾸기 알은 색깔과 크기가 숙주 새의 알과 비슷하기 때문에 어미 새는 알아채지 못하고 열심히 품어 부화시킨다. 뻐꾸기 새끼는 알을 깨고 나오자마자 숙주 새의 알이나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 버린다. 결국, 둥지 안에는 뻐꾸기 새끼만 남고 어미 새는 자기 새끼로 알고 열심히 먹이를 가져다 먹여 키운다.


뻐꾸기는 어떻게 알았을까?


도대체, 뻐꾸기는 다른 새 둥지에 알을 낳는 법(탁란)을 어떻게 알았을까? 부모나 누군가 가르쳐 준 것인가? 그럴 리는 없다. 뻐꾸기를 양육한 새는 어미 뻐꾸기가 아니라 뱁새나 종달새니까. 어린 뻐꾸기가 종달새의 둥지를 나와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른 뻐꾸기로부터 그 방법을 배웠을 가능성도 희박하다. 새들의 언어는 복잡한 내용을 전달하기에는 너무 단순하다. 뻐꾸기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지만 스스로 탁란법을 터득한다.


놀라운 것은 탁란법 뿐만이 아니다. 뻐꾸기는 알의 색깔과 크기가 비슷한 새를 용하게도 알아보고 그런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다. 또 있다. 알을 깨고 나온 뻐꾸기 새끼는 자기가 생존하려면 다른 새의 알이나 새끼를 밀어내야 한다는 것도 안다.


뻐꾸기의 비밀을 알아내려면 먼저 모든 우주와 생물이 생겨난 행로를 따라가봐야 한다.







제1장 우주의 탄생 - 생명 탄생의 전사 -


뉴턴의 사과나무


1665년경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고향집에 돌아온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3–1727)은 저녁을 먹은 후 정원에서 차를 마시다가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지어낸 얘기 같지만 사실에 가깝다. 뉴턴 주변 인물들이 그와 비슷한 증언을 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뉴턴이 사망한 후, 그의 친구이자 전기 작가인 윌리엄 스턱클리(William Stukeley) 가 남긴 회고록이다. 뉴턴은 그 때 사과가 옆으로나 위로 가지 않고 곧장 땅에 떨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링컨셔주 울스롭의 ‘뉴턴 사과나무’는 오래 전에 쓰러졌지만 그 줄기에서 새로 자란 가지의 묘목은 세계 여러 곳에 분양되어 지금도 가지를 뻗고 있다. 심지어 우리 나라에도 분양되어 자라고 있다.

뉴튼이 그 날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에 대한 영감을 얻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때로부터 20여년이 지난 후인 1687년 만유인력에 관한 법칙을 수학적으로 정립한 <프린키피아>를 출판하였다. 그것이 저 유명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다.

뉴턴은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의 크기(단위: 뉴턴 N)는 두 물체의 질량을 곱한 것에 비례하고 두 물체 사이의 거리(간격)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것을 밝혔다. 아래 식은 지구과학이나 물리 교과서에 나와 있는 익숙한 만유인력 공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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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의 몸무게가 70kg이라고 할 때, 이 공식에 지구의 질량과 그 사람의 질량을 대입해보면 그 사람이 느끼는 몸무게가 된다. 달과 지구 사이의 인력을 위 공식으로 계산해보면 1.98×(10의 20승)N이 나온다. 이 막대한 힘이 달을 지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붙잡아 놓는다.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들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질량이 클수록, 거리가 가까울수록 당기는 힘이 곱절로 커진다.


그런데, 만유인력, 혹은 중력은 왜 생길까? 왜 지구는 사과나무의 사과를 끌어당기는 것일까?

뉴튼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지만, 그 힘이 왜 생기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그는 ‘나는 현상의 수학적 법칙을 밝힐 뿐, 그 힘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는 추측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휘어지는 시공간


만유인력의 원인을 설명한 사람은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이다. 그가 1915년에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질량(에너지)이 있는 물체는 시공간을 휘게 만드는데, 물체들은 이 휘어진 공간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서로 끌어당기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푹신하고 매끄러운 고무 매트 위에 탁구 공을 올려놓으면 매트 위에 얌전히 놓여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옆에 볼링 공을 놓으면 매트가 움푹 들어가면서 비스듬하게 휘어지게 되어 탁구공이 볼링 공을 향하여 구르게 될 것이다. 휘어지는 것은 시공간이다. 질량이 있는 물체가 휘어지게 만드는 것은 공간만이 아니다. 시간도 휘어진다.

현대물리학은 중력이 작용하는 메커니즘을 시공간의 휘어짐으로 설명하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더 발전시켜 보려고 여러 가설을 만들며 애를 써왔다. 그 가설 중 하나가 ‘중력자(graviton)'다. 중력자는 중력을 매개하는 가상의 입자로, 다른 기본 힘(전자기력, 핵력 등)이 입자로 설명되듯 중력도 입자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중력자가 관측된 적은 없다.

일반상대성 이론이 발표된 지 11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중력에 관하여는 최고의 이론이고 지금까지 실험과 관측에서 모두 들어맞았다. 가장 최초의 입증은 1919년 에딩턴(Arthur Stanley Eddington, 1882-1944)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그해 5월 아프리카 서해안의 프린시페 섬에서 개기일식을 관측하여 별빛이 태양 옆을 지날 때 휘는 각도를 측정했고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따라 태양 근처를 지나는 별빛이 태양의 중력장에 의해 휘어짐을 확인해주었다.

시간의 휨도 확인되었다. 중력에 의한 지구 표면에서의 시간은 위성에서의 시간보다 더 더디게 흐른다. GPS 위성시계는 지상의 시계보다 1초 당 약 4.5×(10의 -10승) 더 빠르다.


세페이드 변광성


1900년대 초기까지도 과학자들은 은하계가 우주의 전부라고 알고 있었다. 밤하늘의 희미한 점들을 성운(nebula)라고 불렀다.

1923년 미국 윌슨산 천문대장 에드윈 파월 허블 (Edwin Powell Hubble, 1889-1953)은 당시 세계 최대 구경의 반사망원경으로 안드로메다 성운을 관측하다가 그 안에 있는 세페이드 변광성(Cepheid variable)를 발견했다. 이 별은 밝기의 주기(변광주기)로부터 거리 계산이 가능한 별이다. 안드로메다가 우리 은하보다 훨씬 멀리 있는 또 다른 은하임이 발견된 것이다.

허블은 베스토 멜빈 슬라이퍼(Vesto M. Slipher)이 발견한 성운의 적색편이(빛의 도플러 효과에 의해 빛이 긴 파장 쪽으로 이동하는 현상) 데이터를 가져와 자신이 측정한 은하들의 거리 값과 적색편이에 따른 속도 값을 비교해보았다. 24개 은하의 데이터를 그래프로 그린 결과 직선관계를 발견했고 은하가 멀리 있을수록 더 빨리 멀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벨기에 신부이자 천문학자 조르주 르메트르(Georges Lemaître)가 1927년에 제안한 우주 팽창이론이 증명된 것이다.


우주 배경복사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면서 “공간이 팽창하거나 수축할 수 있다”는 개념이 생겼다. 이를 바탕으로 우주가 멈춰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팽창하고 있다는 이론이 제시되었다. 르메르트가 제시한 빅뱅이론 자체는 수학적·철학적 우주 기원 이론 수준이었다. (핵)물리학적 수준으로 빅뱅이론이 발전시킨 사람은 조지 가모프 (George Gamow, 1904–1968)다.

1940년대 후반, 가모브는 ‘뜨거운 빅뱅 이론(Hot Big Bang Theory)’을 제시했다. 초기 우주는 매우 고온·고밀도 상태였으며 그 속에서 핵융합(nucleosynthesis) 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1948년경 가모브와 그 제자들은 초기 우주의 뜨거운 빛이 지금쯤 약 5켈빈(절대온도) 정도로 식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17년 후인 1965년 펜지어스(Penzias)와 윌슨(Wilson)이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하면서 가모프의 예측이 정확했음이 확인되었다. 우주배경복사(Cosmic Microwave Background, CMB)는 우주가 한때 아주 뜨겁고 빛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는 결정적 증거다. 말하자면, 즉, 빅뱅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화석 빛’, 혹은, 우주의 “출생 당시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 전역에 퍼져 있는 마이크로파(극도로 긴 파장의 빛)”다. 빅뱅이 일어난 약 38만 년 후 우주가 충분히 식어서 빛이 자유롭게 움직이게 된 순간의 잔광(殘光) 이다. 오늘날 우리가 관측하는 이 복사는 모든 방향에서 거의 똑같은 세기(균일성)로 감지된다. 이것은 우주가 한때 매우 뜨겁고 균일한 상태였음을 보여준다.

1965년의 펜시어스와 윌슨의 CMB 발견의 에피소드는 1953년의 왓슨과 크릭의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과 함께 과학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우연의 발견의 하나로 꼽힌다.

1964년, 뉴저지 주에 있는 벨 전화 연구소(Bell Labs)에서 두 젊은 전파천문학자 아노 펜지어스(Arno Penzias) 와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은 새로 설치된 6m짜리 혼형 안테나를 이용해 은하 전파를 관측하고 있었다. 어느 방향을 잡아봐도, 주파수 7.35cm(≈ 4.08GHz) 근처에서 약한 “쉭—” 하는 잡음(noise)이 사라지지 않아서, 이 잡음을 없애기 위해 말 그대로 모든 방법을 다 써봤다. 장비 점검, 수신기 교체, 전자기 간섭 차단, 심지어 안테나 안에 둥지를 튼 비둘기 두 마리와 배설물까지 청소해보았지만 그 잡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느 방향을 향하든, 어떤 시간대든, 강도도 거의 일정했다. 외부, 더 나아가 우주 전체에서 오는 신호였던 것이다. 그 무렵 그들로부터 불과 40km 떨어진 프린스턴대에서는 프린스턴대학의 로버트 딕(Robert Dicke), 짐 피블스(Jim Peebles), 데이비드 윌킨슨(David Wilkinson)이 빅뱅의 잔열, 즉,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피블스는 이미 이 이론을 강의에서 “곧 관측될지도 모른다”고 말하던 참이었는데, 장비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런데 벨연구소로부터 그 전설적인 전화 통화가 걸려왔고, 방향을 불문하고 균일한 잡음을 해결할 수가 없다는 내용의 이 통화로 로버트 딕은 위대한 발견을 빼앗긴 것을 직감했다. 펜지어스와 윌슨은 1978년 노벨물리학상의 영예를 안게 되었고, 딕 팀은 과학사의 뒷얘기로만 기억되었다.


t=0


빅뱅이론에 의하면, 우주의 역사는 약 138억 년 전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계속된 팽창과 진화의 과정이다. 모든 물질과 에너지, 공간과 시간이 한 점(특이점)에서 폭발적으로 팽창하면서 우주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특이점(singularity)’은 일반적으로 수학적·물리적으로 ‘값이 무한대가 되는 지점’을 말한다. 밀도, 온도, 공간의 곡률(curvature)이 모두 무한대(∞)이고 시간 간격이 0인 상태를 가리킨다. 일반상대성이론을 적용하여 우주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 보면 모든 은하가 서로 다가가 결국 하나의 점으로 수렴하는데, 이 점이 바로 ‘빅뱅 특이점(Big Bang Singularity)’이다.

공간의 부피가 0이므로 ‘어디(위치)’라는 개념 자체가 없고, 밀도와 에너지가 무한대(0으로 나눈 값)이고 t = 0 이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빅뱅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은 성립하지 않는다. 흔히 “한 점에서 폭발했다”고 말하지만, 위치라는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에 공간 속의 한 점(좌표)에서 일어난 폭발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비로소 생겨나기 시작한 ‘시공간 전체의 한계점’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거시적 규모에서 시공간의 곡률과 중력 현상을 탁월하게 설명하지만, 플랑크 길이 이하의 미시적 영역에서는 양자효과를 반영하지 못해 그 적용에 한계를 가진다. 이러한 특이점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로는 중력을 양자화하여 설명하려는 양자중력이론, 모든 입자를 1차원 끈으로 간주하여 특이점을 제거하는 끈이론(String Theory), 시공간 자체를 불연속적 격자로 이해하여 특이점 대신 “바운스(bounce)” 현상을 제시하는 루프양자중력이론(Loop Quantum Gravity), 그리고 수축한 우주가 반동을 일으켜 다시 팽창한다고 보는 우주바운스 모델(Big Bounce) 등이 제안되어 있으나, 이들 모두 아직 실험적 검증과 이론적 완결성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138억년 보다 긴 1초


우주의 역사는 약 138억년 전의 빅뱅에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일반적으로 빅뱅의 증거(흔적)를 3가지에서 찾는다. 첫째는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은하들이 서로 멀어지고 있음. 허블 법칙), 둘째는, 우주배경복사(CMB 빅뱅 38만년 후 방출된 빛이 식어서 우주 어느 곳에나 남아 있는 잔광), 셋째는 수소․헬륨 비율(빅뱅 핵합성; 빅뱅 후 3분 동안 만들어진 수소와 헬륨 비율의 계산 값이 실제 관측과 일치함)이다.

빅뱅(t=0) 이후 현재의 우주까지를 크게 3단계로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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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 후 38만년은 미시적 입자의 세계에서 원자의 세계로 넘어가는 시기다. 빅뱅으로부터 우주배경복사(CMB) 방출 때까지의 초기 우주 38만년은 플랑크 시대, 대통일 시대, 인플레이션, 쿼크 시대, 하드론 시대, 경입자 시대, 핵합성 시대, 복사 지배 시대, 재결합과 CMB 방출 등으로 9개로 세분된다. 프빅뱅 직후인 프랑크 시대는 상상할 수 없는 고온의 우주로 4대 기본 힘(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이 하나의 통일된 힘으로 존재했다고 추정된다. 대통일 시대에 중력이 다른 힘들과 분리되고 우주가 빛보다 빠른 속도로 급팽창하는데 우주는 뜨겁고 균질한 상태로 채워진다. 그 후 에너지와 온도가 낮아지면서 쿼크, 전자, 중성미자, 광자등이 분리되는 쿼크 시대를 거쳐 하드론 시대와 경입자 시대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빅뱅 후 약 1초로 본다. 수소와 헬륨이 생성된 핵합성시대(빅뱅 후 3분) 이전에 일어난 이 모든 일들이 빅뱅 후 불과 1초만에 일어난 것이다.

1초라는 짧은 시간에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구나 하고 감탄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 1초는 그 후의 138억년보다 훨씬 긴 세월이다. 아니, 비교를 허락하지 않는 긴 1초다.

미래가 영원한 시간이라면, 과거 또한 영원한 시간이다. 과거의 끝은 없다. 빅뱅이 시작되기 직전에는 시간이 아예 흐르지 않았고, 빅뱅 직후의 시간은 거의 멈춰서다시피한 시간이다. 빅뱅 후 1초라는 시간은 사실은 138억년 따위와는 비교를 허락하지 않는 실로 무한정한 과거를 뜻한다.


지구 46억년의 고독


‘지구 46억년의 고독’은 2000년 10월 일본에서 출판된 책이다. 원제는 地球・46億年の孤独 : ガイア仮説を超えて (“지구·46억 년의 고독: 가이아 가설을 넘어”)이다. 이 책은 과학적 통찰과 철학적 시각을 절충하며, 지구가 어떻게 물이 풍부한 행성으로 진화했는가, 그리고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갖추었는가를 논한다. “가이아 가설(지구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기능할 수 있다)”을 넘어서는 시각에서, 지구의 자기 조직화, 대륙 형성, 대기 변화, 생명의 출현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한국어 번역판은 2000년 도서출판 푸른산)

이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지구의 나이는 46억년전이다. 빅뱅 후 약 1억년에 최초의 별이 등장하고, 이어 수억년 동안 별들이 모여 은하들을 형성했다. 은하계의 초신성의 잔해가 응축되어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가 형성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46억년 전으로 본다.

약 46억 년 전, 태양계와 지구의 탄생은 “별의 죽음으로부터 새로운 별이 태어나는 순환”의 대표적인 예다.

‘별의 재료’는 어디서 왔을까? 빅뱅 직후 만들어진 원소는 수소(약 75%)와 헬륨(약 25%) 뿐이었다. 철, 산소, 규소 같은 무거운 원소는 이전 세대의 별들이 초신성(supernova)으로 폭발하면서 만들어졌다. 태양과 지구는 이전 세대 별의 잔해로 만들어진 “재활용 우주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양 성운의 형성 시기는 약 46억 7천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우리 은하의 한 구석에 존재하던, 수소와 헬륨 가스 및 미세한 먼지로 이루어진 거대한 분자 구름(molecular cloud) 이 중력에 의해 수축하면서 태양계의 기원이 되었다.

구름 속의 가스가 서로의 중력(gravity) 으로 끌려 모이기 시작하는 현상을 중력 붕괴(gravitational collapse) 라 하는데, 이는 단순한 자발적 과정보다는 외부적 자극에 의해 유도된 붕괴(triggered collapse)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수십 광년 규모의 가스 구름에 근처 초신성(supernova) 폭발로부터 방출된 충격파(shock wave)가 가해져 중력 붕괴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고 여겨진다. 그 결과, 중심부는 밀도와 온도가 점차 높아지면서 원시태양(protostar) 이 형성되었고, 바깥쪽은 회전 운동에 의해 원반형 가스·먼지 디스크(태양 성운, Solar Nebula) 를 이루게 되었다.

약 46억 6천만 년 전, 중심부 온도가 약 1천만 K 이상으로 상승하면서 핵융합 반응(4H → He + 에너지) 이 개시되었고, 이에 따라 현재의 태양(Sun) 이 탄생하였다. 새로 형성된 태양의 복사압(빛의 압력) 은 주변의 가스를 밀어내어 중심부에는 항성이 남고, 그 주위의 원반 구조가 안정화되었다.

이후 태양 주위를 도는 성운 원반(Solar Nebula) 속 미세한 먼지 입자들이 서로 충돌·응착(coalescence) 하며 점점 큰 미행성체(planetesimal) 로 성장하였다. 미행성체는 다시 서로의 중력으로 더 많은 물질을 끌어들여 원시행성(protoplanet) 으로 성장했고, 그 중 일부는 주변의 가스를 포획하여 거대 가스 행성(giant planet) 으로, 다른 일부는 암석질 물질로 이루어진 암석 행성(terrestrial planet) 으로 발전하였다. (태양 성운설 Solar Nebula Theory)

태양에 가까운 내행성(수성·금성·지구·화성)은 형성 당시의 높은 온도 때문에 휘발성 물질이 증발하여 사라지고, 규소와 금속 중심의 암석성 행성으로 형성되었다. 반면, 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행성(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 은 낮은 온도 환경에서 수소·헬륨 등 가스와 얼음 성분을 많이 포함한 거대 가스 행성으로 만들어졌다.

약 45억 4천만 년 전 태어난 지구 원시 행성(proto-Earth)은 수많은 미행성체 충돌을 통해 성장했다. 충돌 시 발생한 열로 내부가 녹아 철과 니켈이 중심핵(core)으로 가라앉고, 가벼운 규소·산소 성분이 표면으로 올라와 맨틀과 지각을 형성했다. 초기에 온도는 매우 높아 용융 상태의 바다(magma ocean)로 뒤덮여 있었다.

약 45억 년 전에 달이 형성되었다. 화성 크기의 천체 테이아(Theia)가 지구에 충돌했고, 지구의 일부가 튀어나가 궤도에 남아 그 파편이 모여 달(Moon)을 형성했다. 이 충돌로 지구의 자전축이 약 23.5° 기울어 계절이 생기게 되었다.

초기 지구는 화산활동이 격렬했고, 이때 방출된 수증기·이산화탄소·질소 등이 모여 원시 대기를 형성했다. 지구가 서서히 식으면서 수증기가 응축되어 비가 내리고, 지표면의 함몰부에 바다(ocean)가 형성되었다.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적당한 거리(생명 거주 가능 영역)에 있었기에 액체 상태의 물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해양 내에 원시세포가 출현할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지구가 46억년 전에 생겨난 후 약 10억년이 지난 이후에 생명이 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초의 생명 출현 시기를 정확하게 산출하거나 입증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미생물 화석과 생명활동에 관한 화학적 흔적을 가지고 추정할 뿐인데, 그보다 이른 생명활동이 흔적을 남기지 못하거나 발견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화석 또는 화학적 흔적에 기초한 추정치는 약 35억년전 내지 38억년전인데, 약 41억년설도 주장되고 있다.


제2장 모든 생물의 공통 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