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만큼 노력하지 말 것

by 평야워너비

나는 나를 믿지 못하며 살아왔다.

문제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고, 세상의 여러 가지 이유로 혹은 아무런 이유없이 일어나는 일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끝까지 버텨내는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어쩌면 젊은 시절에는 통했을 수도 있다.

자신감이 없을 때마다 주문처럼 외우는 '능력이 부족하다면, 시간을 좀 더 쏟아보자.'라는 혼잣말은 체력만은 따라주던 2,30대 시절엔 종종 통했다. 아니 통했다기보다, 어쩌다 보면 문제가 끝날 때까지 자리에 남아는 있었고, 그게 내가 유일하게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자격쯤으로 믿어왔다.



내 근무 시간과 가정에서 일하는 시간은 나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거의 매일 12시쯤까지 야근을 하고, 어쩌다 10시에 퇴근하는 날은 하늘의 달이 더욱 밝아 보이기까지 했다. 집에 오면 엄마라는 사람을 기다리다 잠든 아이들 얼굴도 볼 틈 없이 밀린 집안일을 하고, 다시 달빛을 보며 쓰레기봉투를 내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것까지는 어찌어찌 해나갈 수 있었지만, 직장에서의 결과물은 노력한다고 따라주는 것은 아니었고, 날카로운 말들을 들으며 다시 책상 앞에 앉아야 했다.


그즈음, 난 삶이 유한하다는 것에 제일 큰 위안을 느꼈던 듯하다.

이 고통이 언젠가는 끝날 것이라는 것만큼, 나를 지탱해 주는 것은 없었다.


세상 모든 직장인 중에서, 제일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올해 1월,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부서 이동이 있었다.

처음에는 약간의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야근은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았고, 주말 출근도 훨씬 줄었으며, 정해진 업무 시간을 충실히 지내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래도 되는 걸까?

첫 1주간 지낸 후 솔직한 심정이었지만, 지금은 지난 1년간의 직장 생활이 너무나 가혹했음을 꺠달았다.


죽을 만큼 노력하면, 정말 죽고 싶어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몸담고 있는 곳을 바꾸는 것도 답이 될 수 있음을, 이렇게나 나이가 들어서 깨닫게 되었다.


지난 금요일 밤에는, 연세 드신 엄마와 함께 숙소를 잡아 가까운 곳에 다녀왔다.

가정을 돌볼 수 있어, 이제 직장이 나를 죽이는 곳이 아니라 고마운 곳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언젠가는 다시 예전 같은 부서로 갈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죽을 만큼은 노력하지 않겠다. 항상 최소한 몸과 마음의 에너지 20%는 남겨두고 살아가야겠다.

작가의 이전글시작하는 이들을 바라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