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내가 한국에 갔다 온다고 했을 때 한 편의 편지를 써줬다.
그 편지에는 녹진한 그의 향수 냄새가 풍겼다.
‘Going to keep it short.
Just wanted to say I will miss you.
And in case you do, I hope this helps.
S&R’
그는 코코넛 향이 은은하게 나는 스파이시한 향수를 뿌리고 다녔었다. 나는 그 향을 좋아했다. 겨울엔 햇빛을 머문 눈처럼 포근하게 느껴졌고 여름엔 칼칼한 밤바다같이 느껴졌다. 자칫 그 향에 집중하다 보면 그의 품에 안겨 다른 세상으로 떨어져 버릴 것 같은 향이었다. 내가 그 향을 좋아하는 걸 그도 잘 알았다. 하지만 한국에 머문 열흘간 단 한 번도 그 편지를 열어보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모든 것이 은우의 자취를 진하게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은우와 나는 대학교 때 처음 만났다. 나는 선배들과 윗기수의 무능력에 몸서리치며 그들의 부조리를 세습하지 않으리라 오만한 각오를 가지고 학생회에 몸담았다. 나는 학부를 위해 참으로 애썼다. 학교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아침, 밤, 새벽을 지새우며 행사를 준비했다. 그곳에서 은우를 만났다. 우리는 같은 학부가 아니어서 같이 일 할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나는 멀리서나마 그를 동경했다. 그는 뱉은 말이라면 절대로 지키었고 시작한 일이라면 절대로 끝내었고 맡은 일이라면 충실히 책임을 다했다. 그가 단체를 이끄는 모습이 멋졌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게 멋졌다. 억척스러운 나와 대비되는 것이 멋졌다. 그래서 그를 존경했고 그것이 필히 사랑의 시작점이라 믿었다.
나는 학생회장으로서 처참히 실패했다. 그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회장직에서 사임하던 날 나는 애잔한 마음을 어쩔 줄 몰라 그를 붙잡고 술을 같이 마셔달라 했다.
“내가 제일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은 내가 자발적으로 나를 끌어들였다는 거야.”
“응.”
“내가 내린 선택이 최악의 결과로 내게 돌아왔다는 거야.”
“응.”
“여태까지 살면서 늘 좋은 경험만 하고 좋은 결과만 누리고 살았다는 것은 아니야. 다만 그 상황에 자발적으로 놓인 적이 없었다는 거야. 부모를 탓할 수 있었고, 국적이라도 환경이라도 뭐라고 탓할 수 있었다는 거야.”
“응.”
“근데 이번의 실패는 정말로 허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냥 순전히 나의 자행이었던 거야. 내 머리로는 정당화가 안 돼. 무엇을 위해 그렇게 많은 시간과 나의 장학금까지 학부에 기부하면서, 사비를 들여가면서까지, 친구를 잃고 적을 만들고 모두의 표적이 되면서까지 나를 밀어붙인 걸까.”
“응.”
“그 괴리가 너무 괴로워서라도 나는 인생의 경험을 하나 쌓은 거라고 생각하려고.” 나는 초라한 스스로를 애써 위로하려 했다.
“학생회는 너 인생교훈 배로우라고 있는 자리가 아니야.” 계속 묵묵히 술주정을 들어주던 그가 마침내 첨언했다. 그는 내가 필요할 때 옆에서 소주잔을 같이 비워주는 둘도 없는 단짝친구였지만 칼같이 채찍질을 해 줄 수 있는 진정한 멘토였다. 내가 진로 때문에 갈피를 못 잡을 때에도 그저 묵묵히 자신의 전공에 임하는 모습으로, 본인의 꿈에 대한 열정과 진지한 자세로 내게 답을 해줬다. 나는 그의 모든 것을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를 나의 스승이었다고 감히 말한다. 그에겐 항상 자신다움이 있었고 그것에서 비롯된 자신감이 있었고 흔들림이 없는 강인한 사람이었다. 나의 내적 시간은 미래를 향해 있어 늘 불안하고, 그 불안이 나의 원동력이라 믿었던 나를 바로 잡아주던 중축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야 실감하게 된 그와의 이별은 어느 봄학기 그와 함께 들은 철학 수업을 생각나게 했다. 큰 강의실 맨 뒷 열에 나란히 자리했던 우리. 그 자리에 비추던 봄날의 햇살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하루는 네가 강의가 시작하고 한참이 지나도 자리에 부재했다. 이유 없이 수업을 빠질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아서 나는 조금 걱정이 되어 도통 수업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실존주의에 대한 교수님의 마지막 한 소절만 빼고.
“하이데거가 말하길 죽음만이 실존에 현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죽음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대체로 죽음의 편재성을 망각한 채 살아가죠. 우리 주변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고 모든 순간이 사실 마지막 순간임을 극명하게 인지하는 삶을 살아내기에 인간은 너무 나약하죠. 망각은 생존 메커니즘입니다. 선명한 인지의 상태가 철학이고요.”
고작 몇 시간 그의 부재로 그때 나는 생각했다. 그와의 매 순간이 마지막이고, 지금 당장이라도 이 관계가 죽음을 맞이해도 이상할 게 없겠구나. 그걸 자각하고 그에게 임하겠다고.
하지만 그가 더 이상 내 기억 밖에서는 존재할 수 없게 된 지금, 나는 교수님의 말들을 잘근 씹으며 살기 위해 망각을 선택해야. 오로지 그로 하여금 나일 수 있었던 나. 미지의 가능태였던 내가 그를 만나 수년간 그를 통해 실체화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 것. 그 모든 것이 모종의 죽음을 맞이한 것이었다. 그것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없었다. 구겨지는 마음을 부여잡고 나는 망각의 공간인 타지로 헐레벌떡 뛰어가리라 생각했다. 은우는 앞으로도 우리의 흔적 속에서 계속 삶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망각하지 못하는 자는 매일 같이 죽음을 연습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 고통에 혼자 둔 나는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겁쟁이.
도쿄에 돌아와서도 가끔씩 그리고 꽤나 자주 꿈에 은우가 나오기라도 하면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잠에서 깨곤 했다. 한국에서 모든 것을 정리했다고 믿었는데 문득 찾아오면 정리란 없음을, 언제나 한편에 있음을.
그 꿈을 생각하며 역시 오늘 확실한 정리가 필요하다 느끼며 요요기우에하라역으로 향했다. 개찰구 밖으로 나를 기다리는 쌤. 오늘따라 그의 하찮은 존재감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를 보자마자 그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다. 말 한마디 없이 그런 확신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게 있어서. 나는 힘겹게 그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그는 어딘가 불안정한 삐그덕거림으로 내게 포옹을 하며 안부인사를 하려 했다. 그것이 절대적으로 불편했던 나는 자석마냥 튕겨 나갔고, 그럴수록 내게 더 큰 어색한 확고함으로 다가오려는 그였다.
“Yoyogiuehara? Bit odd."라고 말하는 그였다. 그렇긴 하다. 어딘가 애매한 역이다. 내가 여기서 만나자고 권한 이유는 새로 이사한 집이 오다큐선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사를 했다고만 했지, 어디로 이사를 했다고는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끝끝내 그에게 새로운 주소를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그의 삶에 그렇게나 깊숙이 스며들었는데, 나의 삶의 손끝만큼도 나는 그에게 내어주지 않았다.
"아, 새로 이사한 집이 오다큐 선이라. 미안, 너무 내 생각만 했네.”라고 말했다.
우리는 브런치를 먹으러 음식점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날따라 가방 속 지갑이 안 찾아졌다. 나의 헤매는 손을 바라보는 그. 그 눈빛에는 실망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과 그래도 혹시나 하는 희망이 묘하게 섞여 있음을 느꼈다. 한국에서부터의 기념품 선물을 기대한 것일까? 그런 것은 없었다. 도쿄로 돌아올 때 그의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직 단 한 번도 제대로 숙제를 끝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막걸리를 사갈까. 그런 생각도 찰나, 한국에서의 내 마음의 서사들로 그에 대한 문을 굳게 닫아야겠다 결의를 다졌기에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잘 지냈어?”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초인적인 힘이라도 발현되는 것인지 퍽 따뜻하고 친절하게 말을 건넸다.
“아니 실은 잘 못 지냈어.”라는 대답을 들으며 혹시 나의 부재 때문인가 라는 오만한 생각과 동시에 부디 그런 하찮은 이유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대학원 졸업 발표를 하지 못했어."라는 말에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래? 아… 정말 힘들었겠다.” 안도감을 느낀 스스로의 이기심에 조금 놀라며 어서 자연스러운 반응을 찾아 얼굴에 붙였다. 그에게 있어 친할아버지가 대단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알고 있었다. 실패한 어머니와 위대한 아버지 사이에서 마음의 위로를 기대할만한 작은 틈새라고 나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이전에 말했듯이 코스타리카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던 때의 기억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비언어적 폭력과 물리적인 폭력도 동반되어 있었다고 어렴풋한 느낌만 남았다는 것에서 나는 감히 추측해 본다. 그때가 그의 두 번째 인격이 생성된 때가 아닐까 하고. 그리고 자신이 겪어야 했던 부조리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을 때 부모님이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 찾으려 했다는 절대적 2차 가해의 피해자였다. 이것은 어린 소년이 겪기에 분명히 잔혹한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부모가 절대적 불신의 대상이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그녀를 엄마로서 얼마나 실패한 여성인지 수차례 되풀이 할 때마다 그의 말에서 여성 혐오를 읽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실패한 엄마가 너무나도 많다. 주는 사랑을 모르는 채 엄마가 되어버린 것이다. 주는 사랑은 인간의 독립기의 시작점이요, 어른이라 불릴 수 있는 최소요건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은 한쪽 귀에서 다른 쪽 귀로 그저 흘렀다. 졸업 발표를 하지 못했다는 말은 내 눈썹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졸업발표를 못할 이유가 뭐지? 왜 못했는데,라고 터져 나오는 질문을 힘겹게 삼키며 우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에 대해서 텅 빈 공감을 말을 내놓았다.
“할아버지는 나를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었어.”라고 그는 내게 몇 번이고 반복했던 이야기를 다시 주섬주섬 꺼내었다.
“마지막을 같이 해드리지 못해서 마음이 많이 안 좋겠다.”
“아니. 오히려 그걸 원하지 않으셨을 거야.”
“졸업 발표는 어떻게 된 일이야?”
“최종본을 가져가야 할 것을 실수로 수정본을 가져가서...”라고 말을 흘렸다.
“최종본이랑 많이 달랐어? 아예 발표를 못한 거야?”
“응. 준비했던 거랑 많이 달라서 당황해서 거이 아무 말도 못 했어.” 한없이 동그라한 눈이 초점 없이 음식점 벽면에 맞닿았다. 벽에는 전형적인 미국 남부에서 볼듯한 사슴 머리가 걸려있었고, 길 따라한 뿔이 천장을 향해 있었다.
그는 왜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쌤인 걸까. 로랜드처럼 계획을 단칼에 베어버릴 수는 없는 것일까. 로랜드라면 망설임 없이 사슴을 정중시켜 목을 갈라 집에 걸어놓았을 것이다. 쌤은 총에 맞은 순간부터 잘라져 버린 목이 매달릴 때까지 한없이 동그라한 눈을 한 사슴.
약간의 적막 속에서 아보카도 토스트와 커피에 괜히 시선을 고정한 채 묵묵히 먹었다.
“그러면 졸업을 못하는 거야?”
“응. 다음 학기에 다시 졸업 발표를 해야 해.” 그의 목소리에 묘함이 느껴졌다. 졸업을 하고 싶은 사람의 안타까움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구나.”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혹시 다음 주에 이즈 여행 갈래?” 그가 여태 꺼내고 싶었던 본론.
“내가 한국 가기 전에 네가 말한? 누구 온댔지?”
“응. 루카스랑 원준이, 키아나, 리타, 마이클, 알렉스, 케인.”
“음… 그래.”
답을 하며 나는 내 안의 모순을 기어코 해소할 수 없었다. 수 달 동안 미뤄왔던 끝맺음을 오늘은 기어코 내리리라 마음을 다잡았으면서도 사교성의 매춘이 되어버린 나의 자아가 자꾸만 이 기회비용을 놓고 싶어 하지 않았다. 매춘부라는 단어가 퍽 적절하다. 그의 존재는 나를 너무나도 고통스럽게 했지만, 그가 내게 제시한 카드들이 없는 삶도 결코 매력적이진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음식점에서 나왔다.
나는 혼잡스러운 마음의 소리를 들키지 않으려 밝은 몸짓으로 역 근처 상점을 뛰어다녔다. 이런 감정적 노동이 나는 스스로가 매춘부가 되었음을 부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집에서 저녁을 보내게 되었다. 나의 결의와 현실에 타협하는 간극에 너덜너덜해져 갔다. 스스로를 타이르는 내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데, 갑자기 더 이상 만나지 말자고는 말 못 하지. 그렇게까지 잔혹할 필요가 있어?
그의 집에 처음 초대받았을 때 거실 진열대에 빼곡히 나열되어 있던 온갖 고급술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위스키, 테킬라, 럼, 진, 사케, 우메슈, 와인 없는 술이 없었다. 반 고흐가 좋아했다는 악명 높은 압센트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보다 지금 그 모든 술이 다 없어진 공백의 진열대에 나는 더 많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The only thing that kept me alive when you were gone.”라고 말하며 냉장고에 있는 맥주를 꺼냈다. 그는 테라스 난간에 기대어 깜깜한 밤하늘을 보며 맥주를 꿀꺽꿀꺽 삼켜 내렸다. 얼마나 많은 밤을, 그리고 새벽을 혹은 낮을 그렇게 보냈을지 상상이 됐다.
쌤의 삶은 의존의 반복이다.
내가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 진열대가 오래된 술들로 가득 쌓여있었던 이유는 그때만 해도 커피 중독이 심했던 터였기 때문이다. 그때 그는 내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손을 댄 술이 그때로부터 반년 전에 루카스가 심각하게 우울할 때 같이 마셔준 맥주뿐이었다고. 술을 마시지 않겠다 다짐했는데 당연히 루카스를 위해서라면 신념 따위는 가볍게 버릴 수 있다고 말했었다.
중독에는 극복이라는 것이 없다. 그저 의존하는 대상을 바꿔나가는 것일 뿐. 쌤은 카페인에 의존했다가 니코틴에 의존했다가 알코올에 의존했다. 그 대상은 때때로 비디오 게임이기도, 가벼운 성적 파트너이기도 했다. 그것에 의존하지도 의존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의존해도 불행하고 의존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 고장 난 시스템이다. 평온함을 오롯이 빼앗겨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지옥이고, 그것은 전쟁이다. 중독이라는 것은 그렇게 파괴적이다.
“네가 없는 동안 술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 그는 재차 얘기했다.
그는 마치 나의 부재가 그의 고통의 근원인 것처럼 말했다.
“나는 가끔 작은 행복을 느끼려 할 때면 두려워. 추락이 어떤지 익히 알고 있어서.”
나는 침묵했다.
“이것을 이해해 주는 건 루카스뿐이야. 우리 둘이 서로를 부여잡고 행복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렇기에 슬프지도 않은 밤을 보낼 수 있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몰라.”라고 술에 젖은 입술을 하며 내게 말했다. 나는 그의 감성에 전혀 몰입이 되지 않았다.
“감정은 선택적으로 무디게 할 수 없어. 고통과 외로움과 슬픔을 느끼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기쁨도, 성취도, 희열과 감사의 감정도 희미해져 가.”
“잘됐네.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아.” 늘 그가 지나치게 감성적이라고만 치부했던 나이지만, 문득 한국에서 느꼈던 첨예한 고통이 생각났다. 나도 흐리멍덩하게 무뎌짐 속에 살고 싶다고 눈물을 애써 삼키며 혼자 되뇌었으면서. 그의 아픔에서는 늘 이리도 차가웠다.
나는 그가 취약성에 취약하다 느꼈다. 그가 관계를 맺고 인생을 살아갈 힘이 별로 없다는 것, 관계와 삶이 종종 수여하는 깊은 고독과 소외, 씁쓸함에의 역치가 낮다는 것도 일찍 감치 알 수 있었다. 다만 그가 취약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나 때문이라고 의심하기에는 스스로의 자만심이 웃겼지만 머지않아 나 때문 일리가 없다는 부정이 얼마나 잔인한가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