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건이 있고 일주일도 안되어서 나는 그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Oh gosh. I knew this was coming.” 그는 공포에 질린 어린아이가 되어 내게 답했다.
나는 하루빨리 이 짐을 내려놓고 싶어 아니, 내던져버리고 싶어서 오늘 당장 만나고 싶다고 했다.
“Can we talk tomorrow?” 하루라도 단두대에 올라가는 것을 늦추고 싶었는지 이렇게 답이 왔다. 그의 말과 행동은 퍽 애잔하게도 그가 원하는 정반대방향으로 내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그 미욱한 대답은 나로 하여금 그에 대한 모든 것을 단칼로 끊어버리고 싶다고 느끼게 했다.
그렇게 그를 만나 두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의 일그러진 정신 건강 때문에 나도 많이 다쳤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비극적 상황을 허용한 것에 대해서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 어두운 곳으로 나를 데려가려 하지 말라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나의 안전을 위해 나는 절대적으로 거리를 둘 것이니 도움을 받기 전에는 다신 내 삶 근처를 얼씬 거리지 말라고 논리 정연하게 반박할 틈 없이 열거했다. 그는 그날로 바로 정신과 상담을 예약했다. 그리고 마치 본인을 돕는 것을 나를 위하는 것처럼 내게 알려왔다. 묻지 않았는데 그는 상담 결과가 어땠는지, 어떤 약을 복용하게 되었는지, 약의 복용으로 심리가 어느 정도 안정되었는지를 내게 보고해 왔다. 나는 진작에 그의 상담가이기를 그만두고 싶었는데 그가 계속해서 더 큰 불안정으로 나를 묶어두었다. 보고받는 것도 일이라는 것을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알림이 핸드폰에 뜨는 것조차도 내게는 스트레스가 되었고, 나는 일체 그의 연락에 응하지 않았다. 아픈 사람에게 침묵하는 것, 단절하는 것, 소외시키는 것보다 잔인한 것이 없다는 죄책감은 늘 그런 죄책감에 짓눌리게 한 그에 대한 정신적 격분을 동반했다. 그 사건으로부터 서너 달 동안 나는 누구보다 서늘한 표정을 한 채 침착하게 분노가 사그라지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그가 정말로 마지막일 테니 만나자고 했을 때 나는 마지막 자비를 짜내어 그를 보러 향했다.
전철 안에서 생각했다. 서너 달 만에 그의 얼굴을 대면한다. 고작 몇 달 사이에 그와의 나날들이 퍽이나 얄팍한 것이라는 걸 깨닫고 이제는 그저 희미해진 3류 영화 감상평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이를테면 돈이 보장해 주는 안락함과 편안함은 굳이 마다할 일이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그것으로 인해 티끌만큼이라도 분명히 정신적 온전함을 대가로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장 그 상황에서 도망가야 한다. 스스로가 영악하고, 그것이 똑똑한 것이라고만 믿어왔던 지난 반년 간의 시간에는 당연히 상흔이 남는다.
그를 북적북적한 신주쿠 역옆 한 카페 야외석에서 마주했다. 시끌벅적한 무리 속에 그는 흡사 진공상태였다. 그 근처에서만 소리가 진동하기를 멈추었고 빛이 굴절되는 것만 같았다. 나는 한 번의 심호흡을 하고 그의 옆에 앉았다.
“어, 안녕.” 그의 검고 날카로운 눈이 나의 경계선을 닿아 촉촉이 변했다. 동그란 눈을 하고 그는 내게 인사했다. 나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줄게 있어.” 라며 가방에서 작은 가방을 꺼냈다. 내 물건들이었다.
“이게 너네 집에 있었구나.” 언젠가 그의 집에 놓고 갔던 내 티셔츠, 카디건, 이어폰, 화장품 등이 담겨있었다.
“너 물건에 너 향이 남아 있어서 덜 외로웠어.”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웃음을 그가 마침내 끝을 받아들인 것이라 이해했다.
“마지막이니까. 서로 덕분에 배운 점이나 느낀 점 혹은 어떤 긍정적 여향이 있었는지 세 가지 정도 이야기해 보는 거 어때.” 그가 처음으로 내게 뭔가를 이야기해 보자 제시했다. 상담을 받으니 변화가 있는 것 같아서 기뻤고 그가 사용한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반가움을 숨기지 못했다. 그 가벼운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명랑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동그란 눈은 수줍지만 확실한 기대를 머금은 채 나를 응시했다.
약간의 침묵은 그의 눈빛에 서늘한 실망의 그림자를 빠르게 드리웠다.
“Nothing?" 그가 물었다.
“응?” 그제야 그가 내게 어떤 답을 기다렸음을 눈치챈 나는 서둘러 답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나는 말을 더듬으며 끝끝내 단 하나의 답도 발견하지 못했다.
단 하나의 답도 발명하지 못했다.
“Really, nothing?"
그는 내게 더 이상의 실망을 느낄 수 없다는 듯 빠르게 체념하고 준비한 답을 머리에서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어버버함은 늘 그의 몫이었는데, 여태 내게 질문을 받아온 그의 기분이 이런 거였을까.
“너 덕분에 이기적인 것이 뭔지를 알게 되었어. 고마워.” 이기적이라는 단어에 나도 모르게 반응했다.
“덕분에 마침내 의미 없는 관계에서 나 자신을 분리시킬 수 있었어. 나를 우선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야.” 나는 잠자코 들었다.
“덕분에 지난 반년동안 다시 뛰었고, 다시 오르게 되었어. 고마워.” 나는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적이 있다.
“덕분에 다시 건강한 폐로 헉헉 숨을 쉬게 되었어. 담배도 끊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살아있다고 느꼈어. 너와의 산정상과 러닝의 끝에서.” 왜냐면 그가 이전에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이 비디오 게임을 좋아했고 그녀에 맞추느라 밤낮이 바뀐 생활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호감을 가지면서 굉장히 건강한 일상을 체득할 수 있었다고 나는 자만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세상을 넓혀줘서. 네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헤세, 아담 스미스. 네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와인의 맛. 네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산속들, 공원들, 도쿄의 시내 거리들, 많은 술집과 카페들.” 그와의 겨울, 봄, 여름과 가을이 스쳐 지나갔다.
“너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참 좋았더라고 말하고 싶어. 내게는 없었던 다채로운 순간들이었어. 그리고 나는 욕심이 생겼어. 더 많이 읽고 더 잘 표현하고 싶어. 더 높이 더 많은 곳들을 다니고 싶어.” 그의 말들이 외부소음들에 흡수되어 흩어지는 것만 같았다.
“정말로 내게 아무런 해줄 말이 없는 거야?” 그는 이제는 포기했다는, 장난스러운 투로 말을 마쳤다.
나는 누구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정도로 애매하고 따분한 고맙단 말을 이리저리 포장했다.
그렇게 나는 끈적한 그라는 잔여물을 닦아 낼 수 있었다. 역에서 작별인사를 하면서 나는 그에게 앞으로 힘내라고 그의 어깨를 토닥이고 게이트를 통과했다.
누군가와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상처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나는 나와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받았고, 준 상처는 내게 더 큰 상처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 과정 속에 우리는 서로에 대한 아릿한 연민과 노력에 대한 의지를 다짐하는 정도의 죄책감과 기대 등으로 관계를 이어간다. 모든 관계는 내게 삶의 서글픔과 함께 오고 간다. 서로의 아픔을 알아가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그와의 관계는, 내게 분노만을 남겨둔 채 해방감과 함께 끝이 났다. 그래서 개운하고, 그런 미성숙함 속에 스스로를 너무 오래 방치하지 않을 만큼은 나 자신을 아끼고 있다는 확신을 준 경험이라 오히려 즐겁기까지 하다. 그래서 내가 흥겹게 게이트를 통과하며 뒤를 한번 쳐다보고 손을 흔들었을 때 그의 얼굴은, 공포스러울 정도로 낯선 것이었다. 그것은 쌤의 얼굴도, 롤랜드의 얼굴도 아니었다. 그것은 나는 더 이상 이름을 붙여줄 권리를 잃은, 또 다른 그였다. 마침내 그는 나를 이해한 것이었다. 마침내 나를 응시하는 그의 눈동자는 마땅히 그랬어야 하듯이 처음 보는 사람을 경계하는 듯했고, 그의 이질적인 입꼬리는 미묘하게 떨리었다.
그 입꼬리는 점점 더 크게 떨렸다. 그리고 낯섬도 나를 삼켜버릴 것 같이 커져갔다. 알 수 없는 공포감에 내 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그의 얼굴 전체가 붕괴해 버렸다.
“지진이야!”라는 나의 룸메이트의 외침을 들으며 잠에서 깼다. 그녀는 얼이 빠진 사람처럼 내 방문을 열더니 집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위험한 물건들을 땅으로 내려놓았다. 그녀가 앞뒤로 거세게 흔들리는 텔레비전을 부여잡고 있는 모습이 잠결에 흐릿하게 보였다.
지진. 그것은 작년에 쌤과의 신년 파티 때 그저 웃고 지나갈 자연의 재롱 같은 거 아니었나. 그 생각이 스칠 즘 밖으로 뛰어나가는 룸메이트의 발걸음이 들렸다. 십여 분간 진동이 계속되었다. 창문 밖으로 물건들이 날아가고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에도 나는 이불을 걷어차지 못했다.
‘왜 나를 구하려 하지 않지?’ 강진으로 흔들리는 침대에 몰락한 채 나는 나를 구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지배되기 시작했다. 머리로는 빠르게 문을 다 열고 책생이든 어딘가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몸은 점점 침대 아래로 깊이 빠져들었다. 나는 조난이라도 당한 사람이 그대로 단잠에 저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책상 아래 그가 나를 만난 첫날 건네어준 지진상비가방에 시선이 닿았다.
어느 역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쌤이 내게 던진 말.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 한 걸음인데 그 전과 후가 너무 다르다는 생각에 매료되서라도. 발을 내디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하잖아.”
맞아. 사실 우리 모두 마음 한켠에는 끝내고 싶은 자연스러운 욕구가 있지. ‘스스로를 아껴야만 해’라든가 ‘살아가야만 해'라는 강박 때문에 쉽게 의심해 보지 않을 뿐인 건가? 실제로 스스로를 온 힘을 다해 지켜내야 할 순간이 오면 그런 선택을 할까? 자멸이라는 쉬운 선택을 하지 않을까? 살아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지도.
이게 그 칠흑으로 들어가 버린 쌤의 마음이었을까. 이제 와서야 때늦은 공감을 해서 무엇하나. 그가 떠난 지 반년이 지난 지진이 있던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 묻힌 그를 꺼내 숨을 붙여보려 했다. 그가 이즈에서 그날 돌아왔다면 나는 아무것도 깨우치지 못한 채 또 똑같이 그에게, 그는 나에게 몹쓸 가해를 반복하고 있었겠지.
이윽고 그와의 일들을 글로써 남김으로써 나의 마지막 숙제를 다해보려 한다. 한 땀 한 땀 단어와 문장을 일구는 노동을 통해 그라는 한 우주를 만들어보려 한다. 마침내 정성을 다해보려 한다. 왜냐면 이제는 내 안에 가득한 언어만이 내가 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