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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아홉시 반

by seungbum lee



저녁 아홉 시 반,
창밖은 이미 짙은 파란으로 물들고
너와 나만 남은 방에
마지막 햇살 한 조각이 늦게 들어와
네 목덜미에 걸려 있다
나는 그 빛을 따라가며
천천히 네 이름을 부른다
한 글자씩, 숨결처럼
“사랑아…”
거리엔 퇴근하는 사람들로 가득한데
우리 시간은 이제 막 시작된다
하루의 끝에서야
서로에게 가장 솔직해지니까
네가 건네는 따뜻한 잔 하나
김이 피어오르며
오늘의 피로와
내일의 걱정을
조용히 녹여 버린다
창문에 비친 두 그림자가
서로에게 기대듯 기울고
밤은 점점 더 깊어지는데
우리만 밝아진다
이 시간이 영원하면 좋겠다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새벽이 와서 우리를 떼어놓기 전까지
이 저녁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
네 손등에 입 맞추며 말한다
“오늘도 무사히 돌아와줘서 고마워”
그 한마디에
하루가 다 녹아내린다
저녁이여,
조금만 더 느리게 지나가 다오
이 사랑이 새벽에게
넘겨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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