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80)

한정임의편지

by 이 범

강씨 가문 저택, 사랑방
강무일은 아내 한정임의 편지를 강지윤에게서 받아들고,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편지를 펼쳐 읽고, 접고, 다시 읽었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사랑방 안에는 종이가 바스락거리는 건조한 소리만이 간헐적으로 울렸다. 평소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던 무일이었기에, 지윤은 아버지의 흔들리는 어깨를 보는 것이 낯설고도 두려웠다.



강지윤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숨소리조차 조심스럽게 내며 아버지의 반응을 기다렸다.긴 침묵이 흘렀다.

한참 후, 무일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가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깊게 패인 주름 사이로 회한(悔恨)인지 슬픔인지 모를 감정이 짙게 배어 나왔다. 그는 편지를 차마 탁자 위에 내려놓지도 못한 채, 가슴께로 가져가 꽉 움켜쥐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강무일이 편지를 내려놓고, 강지윤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물었다.


"지윤아."
갈라진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는 목이 메는지 잠시 말을 멈췄다가, 힘들게 이어갔다.
"네 어머니가... 이 편지를 쓸 때, 많이 힘들어하시더냐?"


그의 물음은 단순히 건강을 묻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안에 담긴 내용—아마도 그가 외면해왔거나 미처 알지 못했던 정임의 진심—을 마주한 자의 죄책감이 묻어나는 질문이었다. 지윤은 입술을 깨물며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얼마쯤 시간이 더 흐른후에 무일이 말했다



강무일은 담담하게 "언제 경성에 갈 것이냐?"

하고 물었다.
강지윤은 조심스럽게 "새달 초엿새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강무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여전히 강지윤의 눈길을 피한 채, 담뱃대를 집어 들었다.


강무일이 "그래. 그러면 이 문제는 그 안에 매듭지어 주마. 물러가거라."하고 말했다.



그는 애써 강지윤의 눈길을 피하며 담뱃대에 엽초를 꾸겨 넣었다. 그의 움직임은 평소보다 거칠었다.

강지윤은 강무일의 성격을 오래전부터 적응해 온지라, 두말도 하지 않고 일어났다. 그녀는 깊이 절을 하고, 조용히 사랑방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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