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살아야 100년인 것을 (69)스물다섯, 아직

진로 확신 강요

Nov 23. 2025

진로 확신 강요

Q: 왜 20대에 평생 할 일을 정해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A: 사회가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해법은 인생은 여러 장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변화는 실패가 아니라 성장입니다.

스물다섯, 아직 멀었다고 말해줘

스물다섯의 정답
새벽 7시 12분,
서울의 한겨울 하늘은 늘 그렇듯 무표정한 회색이었다.
윤하늘, 스물다섯.
흔히 말하는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그의 눈은 날마다 더 깊은 피로를 품었다.
회사 빌딩 앞, 자동문이 부드럽게 열리는 순간마다
하늘은 마치 커다란 파도에 휩쓸려 들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평생 할 일을 지금 정해야 한다.”
이 말은 그에게 주문처럼 새겨져 있었다.
아버지는 늘 확고했다.
“남자는 스물다섯이면 방향이 잡혀야 한다.”
상사는 말하곤 했다.
“헤매는 나이는 지나지 않았나? 하늘 씨.”
하늘은 서른 명이 모여 있는 사무실 중앙 어딘가,

그저 ‘무난한 직원 1’로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문득문득,

그는 자신의 삶이 마치 누군가가 대신 작성한 시나리오 위를 걷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카페의 재회
운명은 늘 사소한 회전문에서 찾아온다.
그날도 그랬다.
점심시간, 말없이 회사 식당에 줄을 서 있다가
갑자기 모든 소리가 멎는 듯한 순간이 왔다.

하늘은 숨을 고르고, 줄에서 빠져나와 가까운 카페로 되돌았다.
문을 열자,
고요하고 따뜻한 커피향,
그리고 오래전에 잃어버린 나침반 같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대학 시절 그의 멘토, 서담 교수.
“하늘이구나.”
남색 코트를 입은 선생의 눈빛은 변함없이 따뜻했다.
하늘은 결국 말했다.

“선생님… 전 요즘 제 인생이 뭔지 모르겠어요.
다들 말하잖아요. 스물다섯에 평생 할 일을 정해야 한다고.
전…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선생은 조용히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하늘아, 정답을 정해야 하는 건 인생이 아니라 시험지야.”
하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우린 책이야.
스물다섯 장 중 두세 장 읽어보고 전체 결론을 내리라고 강요받는 거지.
그게 얼마나 비논리적인지 생각해봤니?”
하늘은 그 말에 처음으로 숨이 트였다.

“그럼… 이렇게 막막한 게 틀린 게 아니에요?”
“막막함은 실패가 아니라 시작이야.”
그 말은 하늘의 심장에 기름처럼 번져 따뜻하게 불타올랐다.

깊은 밤의 각성
며칠 뒤, 야근 후의 사무실.
창밖의 도시 불빛은 수천 갈래의 강물처럼 흘렀다.
하늘은 갑자기 모든 일을 멈추고,
조용히 노트북을 열어 메모장을 띄웠다.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하늘아… 넌 뭘 좋아했지?”
그 질문은 너무 오래 묻혀 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타이핑했다.
– 사진
– 여행
– 길거리에서 들은 대화 조각
– 글쓰기
– 새벽 도시의 풍경

– 사람들의 표정 기록하기

단어들이 화면에 하나씩 생겨날 때마다
하늘은 잊고 있던 자신의 조각들을 찾는 기분이었다.
숨이 섞인 한숨이 터졌다.

“평생 직업을 정하라는 말에,
정작 내가 좋아하는 걸 한 번도 정리해본 적 없었네…”
그 순간,
그는 인생의 작은 전환점을 맞았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는 일,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다시 꺼내 보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그 밤 이후로
하늘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