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문을 열다
“소연 씨… 혹시 출판사에서 연락 받으셨어요?”
준혁의 목소리는 마치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는 손끝 같았다.
“강연 보고 큰 감명을 받았대요.
당신 에세이를 정식 출간하고 싶다고… 제안이 왔어요.”
순간, 소연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정식 출간…?”
그 짧은 한마디 뒤로, 긴 침묵이 흘렀다.
그동안 그녀가 써온 문장들은
작은 책방의 구석에서, 조용한 독자들의 손을 거쳐가던
소박한 이야기들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제—
그 문장들이 세상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갈지도 모르는 순간이었다.
준혁이 다시 물었다.
“하고 싶어요? 아니면… 너무 부담스러워요?”
소연은 대답하지 않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초가을 햇살이 바람에 흔들리며
유리창에 기울어지는 풍경이
마치 그녀의 마음을 대신 설명하는 듯했다.
“조금… 무서워요.”
마침내 소연이 입을 열었다.
“내 글이 내 손을 떠나
너무 멀리 가버릴까 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곳까지…”
그 말에 준혁은 조용히 그녀의 손을 감싸 쥐었다.
그의 손끝 온기가,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주는 듯했다.
“멀리 가도 괜찮아요.”
그는 단단하면서도 따뜻하게 말했다.
“그 글은 결국 당신의 마음이에요.
세상이 아무리 멀어져도—
당신의 글은 당신처럼 남을 거예요.”
두 사람은 오래된 책방 구석에 앉아
출판 제안서를 함께 펼쳤다.
소연은 자신이 쌓아온 문장들을 꺼내어 천천히 읽었다.
흔들리는 마음을 하나하나 매만지듯.
“조용한 문장이 누군가의 하루를 바꿀 수 있다면,
그건 내가 살아온 시간의 의미가 된다.”
책방 안에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창 너머로는 가을 햇살이 따뜻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그날 두 사람은
작은 책방의 한 페이지에서
새로운 문을 조용히 열었다.
그리고 그 문 너머엔—
아직 쓰이지 않은 또 다른 이야기들이
고요하게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