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장 - 가을 편지를 받고
답장 - 가을 편지를 받고
사랑하는 당신에게.
당신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낙엽 사이로 스며든 햇살처럼
당신의 문장들이 내 마음에 조용히 내려앉았어요.
가을이 되면 당신이 나를 더 이해하게 된다고 했죠.
그런데 나는 고백해야겠어요.
나 역시 가을이 오면
당신을 더 깊이 그리워하게 된다는 것을.
그날, 우리가 함께 걸었던 산책로를 기억합니다.
당신은 내가 단풍잎을 집어 들었던 순간을 기억하지만,
나는 그때 당신의 표정을 기억해요.
"이렇게 아름다운데… 떨어지는 게 슬프지 않다니."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사실 조금 두려웠어요.
내가 너무 감상적으로 들릴까,
내 마음이 너무 무겁게 느껴질까.
하지만 당신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나를 바라보았죠.
그 시선이 말해주었어요.
"나는 당신의 그 모든 감성을 이해한다"고.
당신이 대답하지 못했던 그 순간,
나는 당신의 침묵을 들었습니다.
말보다 더 정확한 언어로
당신이 내게 말을 걸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어요.
당신이 말했죠.
"당신은 아름답고 슬픈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당신은 모를 거예요.
내가 그 말을 듣고
얼마나 마음이 떨렸는지.
사람들은 늘 내게 말했어요.
"너는 너무 예민해", "왜 그렇게 작은 것에 마음 쓰니"라고.
그래서 나는 늘 내 감성을 숨기려 했죠.
무뎌 보이려 애썼고,
강한 척 웃으려 했어요.
하지만 당신은
내가 숨기려 했던 그 모습을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봐주었어요.
그 순간 나는 깨달았습니다.
아, 이 사람 앞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여도 괜찮구나.
가을바람이 불던 그 돌길에서
당신이 했던 말도 기억해요.
"너와 걸을 때라면 더더욱."
그 말이 바람에 섞여 내게 닿았을 때,
나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나는 웃음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죠.
말을 하면 목소리가 떨릴 것 같아서,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내 마음이 전부 쏟아져 나올 것 같아서.
당신은 내 웃음이
바람보다 따뜻했다고 했지만,
사실 그건 당신의 그 한마디가
내 가슴을 너무 뜨겁게 데웠기 때문이에요.
강가에 앉아 은행잎을 바라보던 순간,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나요?
"가을은… 마음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계절 같아."
당신은 그때 대답했죠.
"나는 이미 알아. 내 마음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알았어요.
우리의 마음이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바람이 그 말을 가져갔다고 생각했나요?
아니에요.
나는 그 말을 온전히 들었어요.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내 마음도 당신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습니다.
당신이 편지 끝에 썼던 문장,
"언젠가 당신이 가을을 떠올릴 때,
그 잎 사이로 스치는 작은 고백이
내 이름이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제 고백할게요.
가을이 올 때마다
내 마음속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당신의 이름입니다.
낙엽이 떨어질 때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단풍이 물들 때마다,
나는 당신을 떠올려요.
당신과 함께 걸었던 그 길을,
당신이 집어 들었던 그 단풍잎을,
당신이 흘려보냈던 그 조용한 고백을.
당신은 말했죠.
사랑이란 그 사람이 가진 계절을
천천히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나는 당신의 가을을 배웠어요.
고요하고, 섬세하고, 아름다운 당신의 계절을.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가장 편안한 나를 발견했습니다.
이제 나도 당신에게 내 계절을 보여주고 싶어요.
때로는 서늘하고,
때로는 쓸쓸하지만,
당신이 함께 있으면
가장 따뜻해지는 나의 가을을.
사랑하는 당신.
당신이 단풍보다 천천히,
바람보다 따뜻하게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고 했죠.
나도 그렇게 할게요.
조급하지 않게,
하지만 확실하게,
당신을 향해 걸어갈게요.
우리의 걸음이 만나는 그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계절을 함께 맞이할 수 있을 거예요.
그때까지
나는 당신이 흘려보낸 고백들을
하나하나 주워 담을게요.
바람이 가져간 줄 알았던 그 말들을
내 마음속에 곱게 펼쳐놓을게요.
이 답장을 쓰는 지금,
창밖에서는 낙엽이 또 떨어지고 있어요.
하지만 이제 나는 알아요.
떨어지는 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다시 땅으로 돌아가
새로운 봄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걸.
우리의 사랑도 그럴 거예요.
계절이 바뀌어도,
시간이 흘러도,
우리는 계속 서로를 향해
새롭게 피어날 거예요.
늘 깊게,
그리고 조용히 당신을 품고 있는
— 나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