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스키여행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는 따뜻하고 감성적인
“당신과 함께라서, 속도마저 따뜻했던 하루들.”
사랑하는 당신에게.
이 계절이 오면, 유난히 눈빛이 밝아지던 당신의 얼굴이 먼저 떠오릅니다.
하얀 봉우리 위를 바라보며, 마치 세상을 통째로 품을 수 있을 것 같은 눈웃음.
그 웃음 하나로도, 나는 이미 그 겨울의 절반을 다 여행한 셈이었지요.
우리가 함께 떠났던 그 겨울 스키여행을 기억하나요?
끝없이 쌓인 설원이 마치 시간을 멈춰 놓은 듯,
모든 소음은 눈 밑으로 묻히고
남은 것은 단지,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던 작은 말과 숨결뿐이었던 그날들.
리프트에 나란히 앉아 올라가던 순간,
당신은 장갑을 낀 내 손을 슬쩍 잡아 주었지요.
차가운 바람 너머로 전해지는 체온 하나가
그 어떤 난로보다 뜨거웠어요.
나는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겨울이었는데, 손끝은 봄처럼 따뜻했던 그 시간.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당신이 말했죠.
“같이 내려가는 거, 무서우면 천천히 해도 돼.”
그 말이 왜 그렇게 달콤했을까요.
마치 겨울이라는 계절이 우리에게 잠시 멈춰도 괜찮다고,
속도보다 곁이 먼저라고,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거든요.
당신 앞에서 나는 늘 용감해집니다.
하얀 슬로프를 향해 첫 미끄러짐을 시작하던 순간,
당신이 뒤에서 웃으며 따라오던 그 소리.
내 귓가에 남아 있던 겨울의 음악은
바람의 속도도, 눈의 사각임도 아니고
오직 당신의 웃음이었어요.
점심시간에 우리가 잠시 들어갔던
따뜻한 스키장 카페도 잊을 수 없어요.
얼굴은 차갑게 얼어 있었지만
마주 앉은 당신의 눈은 따뜻한 코코아보다 달콤했고
내 장갑 위로 내려앉는 당신의 말들은
겨울 바람이 아니라, 흰 눈송이였어요.
닿으면 녹아 사라지지만,
그 자리에 은근한 온기를 남기는 기적 같은 것.
그리고 마지막 날,
저녁이 내려앉은 슬로프에서
당신이 불현듯 이런 말을 했죠.
“다음 겨울에도 같이 오자.”
그 약속 한마디가
내 마음속에서는 눈사태처럼 커져
우리를 앞으로 데려가는 동력이 되었어요.
겨울 아래 묻혀 있던 꿈들이
한꺼번에 깨어나는 기분이었죠.
사실 나는 그날 이후부터
눈이 내릴 때마다 당신을 떠올립니다.
스키를 타지 않아도, 산에 있지 않아도
겨울 바람의 결이 우리 여행의 그 순간들을 그대로 불러와요.
당신이 내 옆에 있었던 모든 기억이
눈발처럼 가볍고
설원처럼 깊어서
그 어디에도 묻히지 않고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올겨울,
당신과 다시 그곳을 걸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처음 떨어졌던 눈밭 위에
다시 두 줄의 발자국을 남기며.
리프트에 앉아 손을 잡고
하얗게 부서지는 바람 속에서
또다시 작은 약속을 지어볼 수 있을까요?
나는 그 겨울이 다시 오기를 기다립니다.
당신 때문에, 겨울이라는 계절이
더 이상 차갑지 않은 계절이 되었으니까요.
설원의 흰 공간 전체가
당신의 이름처럼 느껴지는 계절이니까요.
이 편지의 마지막 줄을 적으며
나는 또다시 확신합니다.
스키가 아니라도, 여행이 아니라도,
어느 계절 어떤 길에서든
당신과 함께라면
내 하루는 늘
포근하고, 눈부시고,
살아 있는 속도가 됩니다.
당신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올겨울도 당신과 함께 미끄러지고 싶은
당신의 사람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