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사우와 야곱이야기(픽션)

쌍둥이의 운명

by 이 범


불임의 고통

서울 강남의 고급 산부인과 대기실. 이석 대표(40)는 창밖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 5년 차, 아내 나리와 함께 찾은 병원은 이미 열 곳이 넘었다.



"이석 씨 가족분,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진료실 안, 나리(38)는 긴장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의사는 모니터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이번에도..."

나리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이석은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병원을 나서는 길, 나리가 말했다.

"여보, 미안해. 내가 문제인가 봐."

"무슨 소리야. 우리 함께 이겨내자."

그날 밤, 이석은 홀로 서재에 앉아 기도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간절히 손을 모았다.

"주님, 저희에게 아이를 허락해 주십시오. 간절히 원합니다."



기적

3개월 후, 나리는 심한 입덧으로 화장실을 드나들었다. 반신반의하며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했다. 두 줄.

"여보! 여보!"

나리의 목소리에 이석이 달려왔다. 두 사람은 얼싸안고 울었다.



"주님, 감사합니다."

산부인과를 찾은 날, 의사는 놀라운 표정으로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쌍둥이시네요."

"쌍둥이요?"

"네, 두 아기의 심장박동이 모두 건강합니다."

이석과 나리는 벅찬 감동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불길한 징조

임신 5개월째, 나리는 밤마다 이상한 꿈에 시달렸다. 뱃속의 아기들이 서로 싸우는 꿈이었다. 어느 날 새벽, 극심한 복통에 응급실을 찾았다.

"태아들이 너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어요. 드문 경우긴 한데, 조심하셔야겠습니다."

나리는 불안했다. 집에 돌아와 기도원을 찾았다. 백발의 목사님이 나리의 배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배 속에는 두 나라가 들어있고, 두 민족이 네 몸에서 갈라져 나올 것이라고. 큰아이가 작은아이를 섬길 것입니다."

나리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 묵직한 것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탄생

출산 예정일보다 2주 앞당겨진 어느 봄날. 나리는 진통을 시작했다.

"여보, 병원 가야 할 것 같아."

이석은 급히 차를 몰았다. 분만실에서 12시간의 진통 끝에 첫째가 세상에 나왔다.

"남자아기입니다!"

아기의 피부는 유난히 붉었고, 머리카락이 많았다. 간호사들이 신기해했다.

"이렇게 머리숱이 많은 신생아는 처음 봐요."

"이름은 에상으로 하겠습니다."

잠시 후, 둘째가 나왔다. 놀랍게도 첫째 아기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이건 정말 드문 경우예요. 마치 형을 뒤따라 나오려는 것 같네요."

"이름은 야곱으로 하겠습니다."

두 아들을 품에 안은 이석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다른 성장

에상과 야곱은 쌍둥이였지만 모든 면에서 달랐다.

에상은 활발하고 거칠었다. 세 살 때부터 집 밖을 좋아했고, 다섯 살이 되자 동네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아왔다. 피부는 햇볕에 그을려 갈색이었고, 몸은 근육질로 다부졌다.

"아빠, 오늘 메뚜기 스무 마리 잡았어요!"

에상은 언제나 무언가를 잡아오는 것에 열중했다.

반면 야곱은 조용하고 사려 깊었다. 집 안에서 책을 읽거나 어머니를 도왔다. 똑똑했고 계획적이었다.

"엄마, 제가 설거지 할게요."

"우리 야곱이는 참 착하구나."

이석은 에상을 편애했다. 사냥을 좋아하던 자신의 아버지를 닮은 에상이 마음에 들었다. 주말마다 에상을 데리고 낚시를 갔다.

"에상아, 아빠가 회사 물려줄 거다. 네가 장남이니까."

나리는 야곱에게 더 마음이 갔다. 섬세하고 영리한 야곱이 대견했다.

"야곱아, 너는 정말 특별한 아이야."


첫 번째 갈등

고등학교 1학년, 체육시간이었다. 에상은 축구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반 아이들이 환호했다.

"에상이 형! 최고!"

야곱은 운동장 구석 그늘에 앉아 책을 읽었다. 에상이 다가왔다.

"야, 야곱아. 너도 좀 뛰어. 맨날 책만 보면 어떡해."

"나는 이게 좋아."

"쯧, 재수 없는 놈."

에상은 친구들에게 돌아갔다. 야곱은 책장을 넘기면서도 가슴 한편이 답답했다.

집에 돌아온 이석이 물었다.

"오늘 학교에서 뭐 했니?"

에상이 신나게 대답했다.

"아빠, 오늘 축구에서 골 세 개 넣었어요!"

"우리 아들, 역시! 나중에 운동선수 해도 되겠는걸."

"야곱이는?"

"책 읽었어요."

"그래... 공부도 중요하지."

그 말투에서 야곱은 실망을 느꼈다.


위기

대학입시

쌍둥이가 고3이 되던 해. 에상은 체육특기생으로 대학에 가려 했고, 야곱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목표로 했다.

어느 날, 아버지 이석이 두 아들을 불렀다.

"에상아, 너는 우리 회사 후계자다. 대학은 적당히 가고 일찍 회사 일을 배워라."

"네, 아빠."

"야곱이 너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 잡아라."

야곱은 주먹을 쥐었다. '나도 형만큼, 아니 그보다 더 잘할 수 있는데...'

그날 밤, 야곱은 어머니와 차를 마시며 말했다.

"엄마, 나도 회사 경영에 관심 있어요."

"그래? 그럼 경영학 열심히 공부해. 기회는 네가 만드는 거야."

나리는 야곱의 손을 꼭 잡았다.

8. 운명의 날

대학 졸업 후, 에상은 아버지 회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점심시간이면 어김없이 골프 연습장에 갔고, 회의 시간에는 졸았다.

야곱은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형의 회사가 신경 쓰였다. 퇴근 후 몰래 형의 회사 재무제표를 분석했다. 문제가 많았다.

'이렇게 가다간 3년 안에 망한다.'

어느 금요일 저녁, 이석 대표는 피곤에 지쳐 집에 돌아왔다.

"야곱아, 아빠 좀 도와줄 수 있겠니?"

"무슨 일이신데요?"

"회사에 큰 거래처가 생겼어. 계약서 검토 좀 해줘."

야곱은 밤새 계약서를 분석했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빠, 이 계약 하시면 안 돼요. 조건이 너무 불리해요."

"그래? 근데 에상이가 괜찮다고 했는데..."

"형은 제대로 안 본 거예요. 여기 이 조항 보세요."

이석은 야곱의 설명을 듣고 깜짝 놀랐다. 계약했다면 회사가 큰 손해를 볼 뻔했다.

"고맙다, 야곱아. 네가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팥죽 사건

몇 달 후, 회사는 더 어려워졌다. 에상은 여전히 무책임했고, 이석은 건강이 나빠졌다.

어느 겨울날 저녁, 야곱은 어머니와 팥죽을 끓였다. 에상이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왔다.

"아, 배고파 죽겠네. 뭐 먹을 거 없어?"

"형, 팥죽 있는데."

"오, 야곱아! 그거 나 좀 줘. 진짜 쓰러질 것 같아."

야곱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형, 나랑 거래하자."

"거래? 무슨?"

"형의 장자 상속권을 나한테 줘. 그럼 이 팥죽 줄게."

"뭐? 야, 너 미쳤어?"

"형은 어차피 회사 경영에 관심 없잖아. 나는 달라. 나는 회사를 살릴 수 있어."

에상은 허기가 너무 심했다. 게다가 회사 일은 정말 싫었다.

"좋아, 가져. 그까짓 상속권. 나는 팥죽이나 먹겠다."

"제대로 약속해줘."

"알았어, 알았다고!"

야곱은 팥죽을 내밀었다. 에상은 게걸스럽게 먹었다.

그 순간, 나리가 부엌 문틈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버지의 축복

2년 후, 이석 대표는 중병에 걸렸다.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에상아, 와라."

이석은 큰아들을 불렀다. 회사를 물려주고 축복하려 했다.

"아빠, 부르셨어요?"

"에상아... 내가 이제 오래 못 산단다. 너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싶다."

하지만 그 순간, 나리가 방으로 들어왔다.

"여보, 잠깐 할 말이 있어요."

나리는 2년 전 팥죽 사건을 이야기했다. 에상이 장자권을 야곱에게 넘긴 것을 녹음까지 해뒀다고 했다.

"뭐라고?"

이석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여보, 야곱이가 회사를 더 잘 이끌 수 있어요. 에상이는 회사에 관심도 없잖아요."

"하지만 에상이는 장남이야!"

"장남이라는 이유만으로요? 능력이 있는 아들에게 맡겨야죠."

이석은 며칠간 고민했다. 회사 장부를 다시 살펴봤다. 야곱이 몰래 도운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반면 에상의 결정은 대부분 실패였다.


선택의 순간

일주일 후, 이석은 두 아들을 모두 불렀다.

"아빠, 무슨 일이세요?"

에상과 야곱이 나란히 섰다.

"에상아, 야곱아. 너희 둘 다 내 소중한 아들이다."

이석은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야곱이에게 맡기겠다."

"뭐라고요?!"

에상이 소리쳤다.

"형, 미안해..."

야곱이 고개를 숙였다.

"야곱이 너는 그동안 회사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 네가 더 잘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아빠! 이건 불공평해요! 나는 장남이에요!"

"에상아, 너에게는 다른 길을 준비했다. 해외 법인을 맡아라. 거기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

에상은 분노로 온몸을 떨었다.

"좋아요. 마음대로 하세요!"

에상은 방을 박차고 나갔다.

형제의 길

에상은 짐을 싸서 집을 나갔다. 캐나다 법인으로 떠났다.

"절대 용서 안 해, 야곱."

공항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야곱은 회사를 맡았다. 밤낮없이 일했다. 3년 만에 회사를 회생시켰고, 5년 만에 업계 1위로 만들었다.

하지만 야곱은 행복하지 않았다. 밤마다 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형... 미안해."


아버지의 죽음

야곱이 회사를 맡은 지 7년째 되던 해, 이석 대표가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장에 에상이 나타났다. 7년 만이었다. 캐나다에서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 있었다.

"형..."

"말 걸지 마."

에상은 차갑게 말하고 돌아섰다.

장례식이 끝나고, 나리가 두 아들을 불렀다.

"에상아, 야곱아. 엄마 이야기 좀 들어줄래?"

"..."

"너희 둘 다 엄마의 소중한 아들이야. 엄마가 잘못했어. 너희 사이를 갈라놓았어."

나리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에상아, 미안하다. 네가 장남인데 엄마가 너를 소홀히 했어."

"엄마..."

"야곱아, 너도 미안하다. 네가 똑똑하다고 형을 이기게 만들었어."

"엄마, 제 잘못이에요."


화해

그날 밤, 에상과 야곱은 처음으로 단둘이 술을 마셨다.

"야곱아."

"응, 형."

"사실... 나도 알았어. 내가 회사 경영에 재능이 없다는 거."

"형..."

"너만큼 똑똑하지도, 부지런하지도 않아. 그래서 더 화가 났던 거야."

에상은 술잔을 비웠다.

"나는 캐나다에서 내가 좋아하는 아웃도어 사업을 했어. 거기선 성공했어. 내 방식대로."

"형, 잘됐다."

"야곱아, 미안하다. 그동안 원망만 했어."

"아니야, 형. 내가 미안해. 너무 욕심을 부렸어."

두 사람은 얼싸안았다.


새로운 시작

1년 후, 야곱은 에상에게 제안했다.

"형, 우리 같이 일하자."

"뭐?"

"형의 캐나다 사업과 우리 회사를 합치자. 형은 아웃도어 부문 대표, 나는 본사 대표."

에상은 잠시 생각하다 웃었다.

"좋아. 해보자."

두 회사가 합병했다. 형제가 함께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이 탄생했다.

"형, 이번 프로젝트 어때?"

"좋은데? 야곱이 네 아이디어는 항상 날카로워."

"형의 실행력도 대단해."

회의실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에필로그

10년 후, 두 형제는 각자의 가정을 꾸렸다. 명절이면 어머니 나리의 집에 모였다.

"할머니!"

에상과 야곱의 아이들이 나리에게 달려들었다.

"그래그래, 우리 손주들."

나리는 행복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안았다.

에상과 야곱은 마당에서 나란히 서서 하늘을 바라봤다.

"형, 아버지가 보고 계실까?"

"그럼, 분명히."

"우리 잘하고 있는 거 맞지?"

"응. 이제야 제대로 된 형제가 된 것 같아."

두 사람은 서로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늘에서는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었다. 마치 축복처럼.

쌍둥이로 태어나 경쟁하고 갈등했던 두 형제가 결국 화해하고 서로의 길을 인정하며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 장자권과 축복을 둘러싼 가족의 갈등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진정한 축복은 무엇이며, 형제란 무엇인가.

월, 화, 수,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