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인간의 식탁이 곧 그의 운명이었다 —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는 열 만 번 밥을 먹는다. 그리고 그 열 만 번 안에, 삶과 죽음이 모두 담겨 있다."
하루 세끼를 365일 먹으면 일년에 1095끼를 섭취하게 된다. 이를 100년으로 환산하면 10만9500끼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10만번의 식사 과정에서 온갖 질병이 싹트게 된다. 기후, 사고 같은 외부 요인을 제외하면 질병의 원인 대부분이 섭취한 음식 같은 ‘내인’(內因)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조선일보)
첫 번째 밥상
경상북도 안동 외곽의 작은 마을, 1967년 이른 봄.흙냄새와 짚단 냄새가 뒤섞인 새벽, 최순복은 아궁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불을 지폈다. 손끝이 터 있었다.
겨울 내내 갈라진 손마디에 바람이 파고들었지만 그녀는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아들이 오늘 아침 밥을 먹어야 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재원아, 일어나라. 밥 됐다."방문 너머로 목소리를 던졌다. 잠시 후 여섯 살짜리 사내아이가 눈을 비비며 부엌 문지방을 넘어섰다.
한최재원. 이마가 넓고 눈이 유달리 까만 아이였다.밥상은 소박했다. 보리쌀이 반 이상 섞인 밥 한 그릇, 된장찌개, 깍두기 두 조각. 쌀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최순복은 아들 밥그릇만큼은 쌀이 위로 오게끔 정성스럽게 퍼 담았다. 보리는 아래에 숨겨두고."많이 먹어라."
아이는 숟가락을 들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 한 숟가락이 자신의 생애 첫 번째 밥상이라는 것도, 앞으로 십만 번 가까이 이 행위를 반복하게 된다는 것도. 그저 따뜻하고 부드럽고, 어머니 손에서 나온 것이기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것만 알았다.
밥을 먹는 동안 아침 햇살이 부엌 창으로 비스듬히 들어왔다. 밥솥에서 올라오는 김이 그 빛 속에서 하얗게 피어올랐다. 재원은 훗날 노인이 되어서도 그 장면을 기억했다. 쌀밥의 따뜻한 온기, 된장의 구수한 냄새, 어머니의 거친 손등.그것이 그의 세계의 시작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최순복을 '음식 귀신'이라고 불렀다. 손이 귀신같이 맛있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무엇이든 발효시키고 절이고 오래 끓였다.
된장은 3년 이상 묵혀야 제맛이라 했고, 간장은 여름 볕에 한 달을 더 끓였다. 고추장은 메줏가루와 쌀가루의 비율을 손가락 마디로 가늠했다. 레시피 같은 것은 없었다. 몸이 기억하는 것이었다.
재원은 그 밥을 먹고 자랐다.국민학교 시절, 그는 도시락 반찬이 부끄러웠다. 반 친구들은 소시지, 계란말이, 심지어 돈가스 부스러기까지 가져왔는데,
재원의 도시락에는 언제나 김치와 멸치볶음, 된장에 무친 나물이 전부였다. 한번은 학교 소풍날, 친구가 햄 샌드위치를 건네자 재원은 그것을 받아들고 한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희고 부드러운 식빵 사이에 분홍빛 햄이 끼워진 것. 그것은 다른 세계에서 온 음식처럼 보였다.그 샌드위치는 재원의 마음속에 씨앗 하나를 심었다.저런 것을 먹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은 단순한 음식에 대한 욕망이 아니었다. 도시에 대한 욕망이었고, 가난을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이었으며, 어머니의 밥상이 아닌 자신만의 밥상을 차리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그 씨앗은 오래 자랐다. 그리고 결국 꽃이 피었다. 다만 그 꽃이 어떤 색일지는, 아직 아무도 알지 못했다.
쌓이는 밥상들
서울, 1985년.한최재원은 스물네 살이 되어 있었다. 지방 국립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의 작은 무역회사에 취직한 지 2년째. 고시원 반지하 방에서 자취를 하면서도 그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
고향에서 대학 간 것도 그였고, 서울에 취직한 것도 그였다.자취 생활은 음식과의 전쟁이었다.아침은 없었다. 눈 뜨면 곧장 지하철역으로 달려야 했다.
점심은 회사 근처 백반집에서 500원짜리 정식. 저녁은 고시원 근처 포장마차나, 라면. 주말에는 슈퍼에서 사 온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버텼다.
어머니의 된장찌개가 그리웠지만 그것을 입 밖에 내는 것은 나약함처럼 느껴졌다."야, 재원아. 오늘 회식이다."
부장 이한성의 한 마디면 모든 것이 바뀌었다. 삼겹살집, 갈비집, 막걸리집, 그리고 2차 노래방. 그것이 서울 직장인의 의례였고, 재원은 그 의례에 빠르게 적응했다.
아니, 적응을 넘어서 즐겼다.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었다. 술을 마셔도 됐다. 어릴 적 상상했던 '저런 것을 먹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1990년대가 되자 재원의 삶은 가파르게 바뀌었다.
무역회사를 그만두고 건설 자재 유통업에 뛰어들었고, 운 좋게 건설 붐을 타 사업이 커졌다. 서른다섯에 작은 회사의 대표가 되었고, 강남에 사무실을 냈다.
결혼도 했다. 아내 박미선은 서울 출신의 영리한 여자였다. 재원은 이제 고향의 그 보리밥 도시락 아이가 아니었다.밥상이 달라졌다.
아침은 호텔 조식 뷔페. 거래처 미팅은 으레 강남의 고깃집이나 일식집이었다. 저녁은 접대. 술자리. 기름진 안주.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뷔페 레스토랑.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싶었다.
남들이 먹는 것은 다 먹여야 했다. 그것이 아버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어머니 최순복이 서울에 올라온 것은 재원이 서른여덟 되던 해였다. 며느리 손이 모자란다며 손자를 봐주러 온 것이었다. 첫날 저녁, 어머니는 아들 부부의 밥상을 보고 한참 말이 없었다.
"왜요, 어머니. 맛이 없어요?""아니다. 맛은 있는데…….""근데요?""기름이 너무 많다. 그리고 짜다."
재원은 웃어넘겼다. 옛날 사람이 입맛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이틀째 날부터 직접 밥을 지었다.
잡곡밥, 된장국, 나물무침, 생선조림. 재원의 두 아이가 처음엔 입을 삐죽였지만 며칠 지나자 "할머니 밥이 더 맛있어요"라고 했다.재원은 그 말을 흘려들었다.사업이 잘 될수록 먹는 양은 늘어갔다.
회식은 일주일에 서너 번. 점심 접대에 저녁 접대. 술은 빠지지 않았다. 소주, 양주, 와인. 안주는 기름진 것들. 살이 쪘다. 배가 나왔다.
혈압이 조금 높다는 말을 들었지만 바쁜 사람이 병원 갈 시간이 어디 있냐며 무시했다.마흔두 살 여름. 재원은 회사 건강검진에서 처음으로 이상 수치들을 받아들었다. 혈압 145/95. 공복혈당 108. 중성지방 220. 콜레스테롤 230."생활습관 개선이 필요합니다."
의사의 말은 단순했다. 재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와서 곧장 저녁 접대 자리로 갔다. 삼겹살에 소주 두 병. 그날 밤 귀가하면서 그는 그 숫자들을 이미 잊어버렸다.
몸은 기억하고 있었지만.밥상은 계속 쌓였다. 매일 세 끼. 365일. 그 하나하나는 작고 사소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몸 어딘가에 기록되고 있었다. 혈관 벽에. 간세포 안에. 췌장의 베타세포 속에. 소리도 없이,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밥상이 돌아오다
2010년 가을. 재원은 마흔아홉이었다.이른 아침, 화장실에서 면도를 하다 갑자기 어지럼증이 왔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이 흔들렸다. 손이 떨렸다.
무릎에 힘이 빠지는 느낌. 그는 세면대를 붙잡고 잠시 버텼다. 곧 나아졌다. 그냥 피곤한 거겠지 싶었다.이틀 후, 점심 식사 중이었다. 강남의 한정식집. 거래처 사장과 두 시간 넘게 먹고 마셨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왼쪽 팔이 이상하게 저렸다. 가슴 어딘가가 조여들었다. 재원은 화장실에 가겠다고 했고, 들어가서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었다. 거울을 봤다. 얼굴이 하얗게 떠 있었다.
이건 아니다.그가 구급차를 부른 것은 로비에 쓰러지고 난 다음이었다. 심근경색. 관상동맥이 80퍼센트 막혀 있었다.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중환자실에 이틀. 일반병실에 열흘.병원 침대에 누워 재원은 처음으로 자신의 몸과 오래 마주했다.천장을 바라보며 그는 이상하게도 어린 시절 부엌이 생각났다.
아궁이 앞의 어머니, 보리밥 위에 살짝 얹힌 쌀, 된장찌개 냄새, 아침 햇살 속의 하얀 밥김. 그 기억은 아프도록 선명했다. 반면 어제 먹은 것이 무엇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삼겹살이었나, 갈비탕이었나.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먹었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사라졌다.아내 미선이 매일 면회를 왔다. 이런저런 말을 했지만 재원의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들도 왔다. 스물두 살 아들과 열아홉 살 딸. 아들은 어색하게 옆에 앉아 있었고, 딸은 눈물을 훔쳤다.
"아빠, 많이 아파?"딸 유진의 질문에 재원은 잠시 멈췄다가 대답했다."응. 좀 아프다."그것은 살면서 가장 솔직한 대답이었는지도 몰랐다.
퇴원 후 의사는 목록을 건넸다. 피해야 할 음식. 줄여야 할 음식. 먹어야 할 음식. 재원은 그것을 집에 가져와 냉장고 문에 붙였다. 처음 2주는 철저히 지켰다. 잡곡밥, 채소 위주, 기름기 없는 생선, 저염식. 맛이 없었다.
아니, 맛이 없다기보다 밍밍했다. 몸이 강한 맛에 길들어 있었다.3주차부터 슬금슬금 무너졌다. 거래처 밥자리를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건강식 먹는다고 혼자 별도로 주문할 수 없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밥자리를 피하면 관계가 멀어졌다. 하나씩, 하나씩, 다시 돌아왔다. 기름진 음식. 술. 짠 것.일 년 후 재검사에서 수치들은 여전히 나빴다.
"더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생활습관이 바뀌지 않으면 시술이 의미가 없어요."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을 나오면서 핸드폰을 들었다.
문자 두 개가 와 있었다. 하나는 저녁 접대 확인이었고, 하나는 아내의 안부였다. 재원은 접대 확인 문자에 먼저 답했다.그날 밤 귀가하면서 그는 생각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단순한 질문이었지만 답은 생각보다 깊은 곳에 있었다. 밥상. 밥상이었다. 수만 번의 밥상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신을 만들어온 것이었다. 하루하루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쌓이고 쌓인 것들은 어느 순간 한꺼번에 청구서를 내밀었다.그 청구서의 이름이 심근경색이었다.현관 앞에서 재원은 멈췄다. 집 안에서 음식 냄새가 났다. 된장 냄새. 어머니가 오셨나. 아니었다. 아내가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잡곡밥과 두부조림, 시금치나물이 놓여 있었다.
"맛없어도 먹어."미선이 말했다. 눈은 다른 데를 향하고 있었다. 재원은 말없이 앉았다. 숟가락을 들었다. 첫 한 입. 된장찌개의 구수함이 혀끝에서 퍼졌다.갑자기 눈이 뜨거워졌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부엌이, 새벽 아궁이가, 보리밥 위에 얹힌 쌀밥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 맛이 이 맛이었다. 기름도 없고 자극도 없는, 그냥 재료 그 자체의 맛. 몸이 기억하는 맛."왜 그래?"미선이 돌아봤다. 재원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맛있다."
마지막 밥상을 위하여
2018년 봄. 재원은 쉰일곱이었다.회사를 정리했다. 아들에게 일부를 넘기고 자신은 물러났다. 강남 아파트를 팔고 경기도 외곽의 작은 집으로 이사했다. 텃밭이 딸린 집이었다. 처음에 미선이 반대했다.
서울 떠나기 싫다고. 그러나 재원이 말했다."나 오래 살고 싶어."그 한 마디에 미선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텃밭에서 처음 키운 것은 상추와 고추와 깻잎이었다. 흙을 만지는 것이 처음엔 어색했다.
손이 더러워지는 것이 불편했다. 그러나 며칠 지나자 몸이 이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흙 냄새. 새벽의 이슬. 손 안에서 자라나는 무언가.
어머니 최순복은 여든두 살이었다. 안동에서 혼자 지내다 이제는 재원의 집에서 함께 살았다.
허리가 굽었지만 손은 여전히 빨랐다. 된장은 직접 담갔다. 간장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이 키운 상추로 쌈을 싸고, 고추로 고추장을 만들었다.
어느 아침, 재원은 어머니 옆에 앉아서 된장을 담그는 것을 도왔다. 메주를 손으로 부수고, 소금물을 섞고, 항아리에 꾹꾹 눌러 담았다. 어머니는 말없이 손을 움직이다가 문득 말했다.
"재원아.""응, 어머니.""니가 어릴 때 내가 밥 해줄 때마다 항상 생각했다.""뭘요?""이 밥 한 그릇이 이 아이를 키운다고. 밥이 사람 된다고."
재원은 손을 멈췄다. 메주 덩어리를 쥔 채 어머니를 바라봤다. 주름진 얼굴. 하얗게 센 머리. 그러나 눈빛만은 여전히 또렷했다."그 말이 맞았어요,
어머니.""그럼. 내가 틀린 적 있나."두 사람은 웃었다.재원은 그 후로 직접 밥을 지었다. 매일 아침. 잡곡을 물에 불리고, 솥에 안치고, 불 조절을 했다. 처음엔 밥이 설익거나 눌었다. 점점 나아졌다. 여섯 달이 지나자 어머니가 말했다.
"이제 됐다." 그것은 어머니에게 받은 가장 훌륭한 칭찬이었다.식탁이 바뀌자 삶이 바뀌었다.아침은 가볍고 정갈했다. 잡곡밥, 된장국, 나물 두어 가지, 발효식품. 점심은 텃밭에서 뜯어온 채소로 만든 샐러드나 국수. 저녁은 생선이나 두부, 제철 채소. 술은 월 1~2회, 막걸리 한두 잔. 간식은 과일이나 견과류.
처음엔 그 밥상이 초라해 보였다. 그러나 반년, 일 년이 지나자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풍요였다. 자극이 아닌 본질. 양이 아닌 질. 맛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몸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혈압이 내려갔다.
혈당이 안정됐다. 체중이 줄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개운했다. 얼굴 색이 바뀌었다. 주변에서 물었다.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재원은 웃으며 말했다. "밥을 바꿨어요."어머니는 재원이 예순다섯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여든여덟이었다.
마지막까지 된장국을 직접 끓였다. 임종 전날까지 밥을 먹었다. 적게, 천천히, 정성스럽게. 마지막 밥상은 잡곡밥 반 그릇과 된장국 한 모금이었다.재원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곁에 있었다."엄마, 맛있었어?"
대답 대신 어머니는 눈을 감았다.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재원은 그것이 '그렇다'는 뜻이라고 믿었다
어머니가 떠나고 재원은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매일 밥상 일기. 오늘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재료를 썼는지, 몸의 느낌은 어떠했는지. 처음엔 어색했지만 곧 이것이 자신의 가장 솔직한 기록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 밥상 일기를 뒤적이다 재원은 계산을 해봤다. 예순다섯 살. 하루 세 끼. 365일. 65년. 대략 71,175끼. 다시 살 수 없는 끼니들. 그러나 앞으로 남은 끼니들은 달라질 수 있었다.앞으로 얼마나 더 먹을 수 있을까.그것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오히려 경건한 마음이었다. 남은 끼니들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함부로 먹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먹지 말아야겠다고.밥 한 그릇은 그냥 밥 한 그릇이 아니었다. 그것은 몸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매일 세 번씩 쓰는, 반드시 답장이 오는 편지.
2025년 봄. 재원은 예순네 살이었다.아들 준호가 주말마다 왔다. 손녀딸 둘을 데리고. 재원은 손녀들에게 텃밭을 보여줬다.
상추 씨앗 심는 법, 고추 곁가지 따는 법, 깻잎 따는 법. 작은 손들이 흙 속에 씨앗을 넣을 때마다 재원은 무언가 전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할아버지, 이게 밥이 돼요?"다섯 살 손녀 나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재원은 허리를 굽혀 손녀 눈높이에 맞췄다."응. 이 씨앗이 싹이 나고, 자라고, 그걸 따다가 씻어서 밥상에 올리면 나은이 밥이 되는 거야.""신기하다!""그렇지? 밥이 원래 다 이렇게 시작해. 땅에서 나오는 거야."
나은이 씨앗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쥐었다. 그리고 말했다."그럼 할아버지가 나한테 밥 만들어줄 수 있어?"재원은 웃었다. 눈가에 주름이 깊게 잡혔다."그럼. 할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 해줄게."그날 저녁, 재원은 밥을 지었다.
직접 키운 채소로 반찬을 만들었다. 잡곡밥, 된장국, 상추 쌈, 두부조림. 식탁에 아들 준호와 며느리, 손녀 둘이 앉았다. 그리고 재원과 미선.밥을 먹기 전, 재원이 말했다."잠깐."모두 재원을 봤다."우리 오늘 밥 먹기 전에 잠깐 보자. 이 밥 한 그릇이 어떻게 여기 왔는지."
아이들은 눈을 깜빡였다. 준호는 빙긋 웃었다."쌀은 철원에서 왔고. 된장은 내가 담근 거고. 상추랑 채소는 우리 텃밭 거야. 아침에 나은이랑 같이 따온 거 맞지?"나은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다 어떻게 됐는지 알아? 땅이랑 햇빛이랑 물이 모여서 이게 됐어. 그리고 누군가 땀 흘려서 키웠고. 그게 우리 밥상에 온 거야."잠깐의 침묵.그리고 미선이 말했다."잘 먹겠습니다."모두가 따라 말했다.
"잘 먹겠습니다."숟가락 소리가 났다. 된장국 냄새가 퍼졌다. 손녀의 "맛있다" 소리가 났다. 재원은 밥을 한 숟갈 떠서 천천히 씹었다.
잡곡의 거친 감촉. 구수한 향. 몸속 어딘어딘가로 스며드는 온기.그 순간 재원은 생각했다.나는 지금 몇 번째 끼니를 먹고 있는 걸까.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끼니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이 식탁, 이 사람들, 이 음식. 땅에서 와서 몸을 통과해 다시 삶으로 이어지는 것.어머니가 말했었다.
밥이 사람 된다고.그 말이 이제야 온전히 이해됐다.사람은 먹는 것으로 만들어진다. 매일 세 번, 평생에 걸쳐, 우리는 스스로를 짓는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공사였다. 화려하지 않아도 됐다.
다만 성실하게, 정직하게, 몸이 원하는 것을 주면 됐다. 그러면 몸은 반드시 답했다.재원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창밖을 봤다.
텃밭에 봄빛이 내려앉아 있었다. 나은이가 아침에 심은 씨앗이 흙 속에 묻혀 있었다. 보이지 않지만 거기 있었다. 언제가 되면 싹이 날 것이었다. 자랄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누군가의 밥상이 될 것이었다.밥상은 끝나지 않는다.사람이 가도, 밥상은 이어진다. 어머니의 된장 레시피가 재원에게 왔고, 재원의 텃밭이 손녀의 기억으로 갈 것이다.
그렇게 밥상은 이어지고, 그것이 삶이었다.열 만 번의 밥상.그 숫자가 처음엔 무겁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달랐다. 하나하나가 소중한 기회였다. 몸에게 보내는 편지. 다음 세대에게 건네는 유산. 살아있다는 증거.재원은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밥 한 입. 천천히. 꼭꼭 씹어서.잘 먹겠습니다.
에필로그
이 이야기는 한최재원 한 사람의 이야기지만, 사실은 모두의 이야기다.우리는 누구나 열 만 번의 밥상을 마주한다. 그 밥상들이 모여 우리의 혈관을 만들고, 세포를 만들고, 결국 우리 자신을 만든다. 기후나 사고 같은 것들은 막을 수 없다.
그러나 밥상만큼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오늘의 밥상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그러니 오늘 한 끼, 조금 더 천천히 먹어도 좋겠다. 무엇이 담겨 있는지, 어디서 왔는지, 내 몸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것을 생각하며 먹는 한 끼가, 수만 번의 무심한 끼니보다 더 깊이 몸에 닿는다.밥이 사람 됩니다.
작가 노트: 이 소설은 "하루 세 끼 × 365일 × 100년 = 109,500끼"라는 숫자에서 출발합니다. 질병의 씨앗은 대부분 외부가 아닌 우리의 식탁에서 자란다는 사실, 그리고 동시에 치유의 씨앗 역시 같은 식탁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