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79)

불갑 외갓집, 이른 아침

by 이 범

불갑 외갓집, 이른 아침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당 한쪽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앉아 있던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


한정임.

병자라고 보기엔 어울리지 않게 흰 얼굴에 기품을 잃지 않는 대부인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딸을 보자마자 얼굴에 화색을 띠며 달려왔다.

한정임: "아이고, 오느라 고생이 많았겠구나. 기별도 없이 이렇게..."

그녀는 강지윤을 껴안았다. 강지윤은 어머니의 품에 안겨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강지윤: (울먹이며) "어머니..."

한정임: (등을 쓰다듬으며) "그래, 그래... 우리 지윤이. 많이 힘들었지?"

한정임은 강지윤의 손을 잡고 평상으로 가서 앉았다. 그녀는 딸을 향해 사랑 가득한 눈길을 보냈다.

한정임: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 밤새 걸어온 게로구나."


강지윤: (어머니의 흩어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올리며) "몸은 좀 어떠세요, 어머니?"

그녀는 한쪽 손으로 어머니의 손을 잡은 채 놓지 않았다.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한정임: (부드럽게 웃으며) "괜찮다. 많이 좋아졌어. 네 걱정만 하지 않으면 더 좋아질 것 같구나."

강지윤: (고개를 숙이며) "죄송해요, 어머니... 제가..."

한정임: "무슨 소리냐. 네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오히려..." (한숨을 쉬며) "내가 네 아버지를 잘 몰라서... 이렇게 만들었구나."

강지윤은 어머니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

강지윤: "아버지께서... 박종진과의 혼사를 강요하세요."

한정임: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어제 기별이 왔다. 박재창 영감과 혼사 날짜를 정하겠다고..."

강지윤: (간절하게) "어머니, 저는 박종진을 사랑하지 않아요. 저는..."

한정임: (딸의 눈을 바라보며) "소문들어 알고있다 이산갑 선생을 사랑하는구나."

강지윤은 놀라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강지윤: "어머니... 어떻게..."

한정임: (미소 지으며) "내가 어찌 모르겠느냐. 네가 영광에서 돌아온 후로... 완전히 달라졌잖니. 눈빛이 다르고, 말투가 다르고... 처음으로 네가 한 사람을 사랑하는 걸 봤어."

강지윤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강지윤: "어머니...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한정임: (강지윤의 눈물을 닦아주며) "네 아버지는 고집이 세지. 무인 집안이라고, 위험하다고... 하지만 그건 네 아버지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강지윤: "하지만 저는... 이산갑 선생님과 함께 걸어가고 싶어요. 그분의 학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민중들에게 영양학을 알려주고... 함께 뜻을 이루고 싶어요."

한정임은 딸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자랑스러움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

한정임: "지윤아... 네가 정말 그분을 선택한다면, 쉽지 않은 길이 될 거다. 일제의 감시, 위험, 가난... 모든 것을 각오해야 해."

강지윤: (단호하게) "각오했어요, 어머니. 저는... 안전한 삶보다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한정임은 긴 침묵 끝에 딸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한정임: "그렇다면... 어미가 도와주마."

강지윤: (눈이 커지며) "정말요?"

한정임: "나도... 네 아버지와 정혼한 사람이 따로 있었단다."

강지윤은 놀라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한정임: (멀리 보며) "하지만 집안의 반대로... 그분과 헤어지고 네 아버지와 혼인했지. 지금도 가끔... 그분 생각을 해. 내가 선택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강지윤: "어머니..."

한정임: (딸을 똑바로 바라보며)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 네가 선택한 사람과 함께 살아라. 그게... 어미의 바람이다."

강지윤은 어머니를 껴안고 울었다.

강지윤: (흐느끼며) "고맙습니다, 어머니... 정말 고맙습니다..."

한정임: (등을 토닥이며) "울지 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네 아버지를 설득해야지."

강지윤: (고개를 끄덕이며) "네... 그런데 어머니, 사실은..."

한정임: "응?"

강지윤: "오늘 아침... 산길에서 이산갑 선생님을 만났어요."


강지윤: "그분이... 직접 아버지를 찾아뵙겠다고 하셨어요."

한정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정임: "그렇다면... 그분은 진심이구나. 위험을 무릅쓰고 네 아버지를 찾아뵙겠다니..."

강지윤: "하지만 아버지께서 만나주실까요?"

한정임: (결연하게) "만나주게 할 거다. 내가 직접 네 아버지를 설득하겠다."

강지윤: "하지만 어머니 몸이..."

한정임: (손을 흔들며) "괜찮다. 딸의 혼사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겠느냐." (일어서며) "자, 우선 씻고 밥을 먹어라. 그리고 나는... 네 아버지께 편지를 쓰겠다."

강지윤: (일어서며) "제가 함께..."

한정임: (고개를 저으며) "아니다. 너는 여기서 쉬어라. 이산갑 선생이 오시면... 그때 같이 가자꾸나."

강지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평상 한쪽, 잠시 후

한정임은 붓을 들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강지윤은 옆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머니...'

강지윤은 생각했다.

'어머니도 한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구나.'

'그리고 그 사랑을 포기하셨구나.'

'나는... 포기하지 않을 거야.'

멀리서 새소리가 들렸다. 불갑산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바람이 마당을 스쳤다.

강지윤은 눈을 감고, 이산갑의 얼굴을 떠올렸다.

'기다려주세요, 이 선생님.'

'우리... 함께 걸어갈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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