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헌의 퇴청
이충헌은 아전들과 회의를 마치고 관목을 입은채로 가맛군에게 " 집으로 가세나" 하며 가마에 올라 집으로 가는길에 고을 백성들의 인사를 받으며 퇴청을 했다
" 어르신께서 퇴청하시었습니다. "
청지기(겸인) 오상호의 목소리가 대문밖에서 쩌렁하게 들려왔다.
"어르신께서 퇴청하시었습니다!"
오상호의 목소리는 단순한 공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사나운 짐승을 쫓는 호랑이의 포효처럼, 주변의 모든 잡음과 불안을 일순간에 잠재우는 권위의 선포였다.
이충헌의 가마가 대문을 통과해 안으로 사라지자, 오상호는 허리를 곧게 펴고 묵직한 대문을 닫았다. 쇠로 된 빗장을 걸고 굳게 봉한 뒤에야, 오상호는 비로소 낮게 한숨을 쉬었다.
겉으로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엄격한 몸가짐으로 관가와 집안의 질서를 총괄하는 **청지기(겸인)**이지만, 오상호는 실은 깊은 사연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원래 이 고을 **장터에서 이름난 장사(壯士)**였다. 힘이 남달랐고, 마을의 억울한 일에 앞장서곤 했다. 그러나 몇 해 전, 노모의 병환으로 큰 빚을 지게 되자 생계를 위해 무거운 짐을 드는 허드렛일을 전전했다.
그런 그를 눈여겨본 이가 바로 이충헌 어르신이었다.
"네가 가진 힘은 빗장이나 걸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힘으로 집안을 지키고, 나의 손발이 되어 백성들을 살피는 데 써라."
이충헌은 오상호에게 **'겸인(傔人)'**의 직책을 주고 단순히 힘만 쓰는 하인이 아닌, 신뢰할 수 있는 오른팔로 대우했다. 오상호가 힘을 주어 외치는 목소리에는 이충헌을 향한 깊은 충심과, 자신을 멸시하지 않고 다시 세워준 어르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문을 걸어 잠근 오상호는 주위를 한 번 더 꼼꼼히 살폈다. 그의 임무는 끝이 아니었다. 어르신이 편히 쉬는 밤 동안, 그는 어둠 속에서 집안과 그 안의 고을 수령을 지켜야 했다. 그의 어깨에 얹힌 책임감은 장터의 쌀 가마니보다 무거웠지만, 그의 표정은 비장하면서도 자랑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충헌은 흙먼지 묻은 도포 자락을 털고 집의 **사랑채(舍廊채)**로 들어섰다. 왁자지껄한 고을 관아를 벗어나니 비로소 지친 기색이 얼굴에 스며들었다. 오늘 아전들과 나눈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올해 봄 가뭄과 곧 닥칠 환곡(還穀) 문제가 수령으로서 그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집안의 식솔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마당으로 모여들어 이충헌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 마님 어르신께서 퇴청하셨답니다" 하녀 막심이 이충헌의 아내 민지영 (閔智英)에게 안방문 앞에서 알려왔다. 지영은 읽던 책을 덮고 조용히 자신의 매무새를 경대를 통해 확인하고 일어나충헌을 맞이하기 위해 방문을 열어두었다.
그때 어린 이산갑도 지영을 찾아 안방으로 달려왔다.
"천천히 오지 그러냐? 넘어지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지영은 엷은 미소를 띠우며 어린 산갑을 향해 낮고 자애로운 목소리로 산갑을 반기며 말했다.
"어머님, 아버님 오시면은 꼭 말씀 들려줘요. 아셨죠? " 하며 이산갑은 어머니 민지영에게 웃음 띤 얼굴로 부탁했다.
" 응 그래 내가 잘 말씀드려 보마 녀석두. 참" 하면서 이산갑을 향해 웃음 지으며 대답을 했다.그리고 그녀는 이충헌을 마중하려 방에서 일어나 산갑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퇴청하여 집에 온 이충헌은 마당을 쓸고 있던 백길호를 발견하고 그를향해 " 고생하는구나! 쉬엄쉬엄 하거라" 백길호는 하던일을 잠시 멈추고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 네, 어르신 찬찬히 하고 있어라우" 이충헌을 향해 전라도 억양으로 대답했다.
이충헌은 잠시 백길호를 바라보다 백길호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건넨 이충헌은이내 안채로 향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이충헌은 마중 나온 민지영과 이산갑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아버님! 오늘도 보람 있는 하루였어요? " 이산갑은 이충헌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대청마루에 있던 민지영은 이를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마루 기둥에 손을 짚은채 바라보고 있었다." 응 그래, 우리 산갑이구나 어서 들어가자꾸나 " 하며 산갑과 함께 지영이 기다리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