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던지고픈 질문하나(5)

산허리와 산등성이는 무엇이다른가?

by 이 범

산의 지형을 나타내는 두 용어인데, 위치와 형태가 다릅니다.
산허리 (山-)
위치: 산의 중간 부분, 측면
이미지: 사람의 허리처럼 산의 중간을 둘러싸는 부분
특징:
산을 옆에서 볼 때 중간쯤 되는 곳
비교적 평평하거나 완만한 경사
"산허리를 감아 도는 길"
산 중턱과 비슷한 의미
산등성이 (山稜-)
위치: 산봉우리들을 연결하는 능선
이미지: 사람의 등뼈처럼 산의 가장 높은 부분을 잇는 선
특징:
좌우 계곡 사이의 가장 높은 부분
날카롭거나 둥근 능선
"산등성이를 따라 올라가다"
능선, 마루금과 같은 의미
쉬운 비유:
산허리: 산의 "옆구리", 가로로 두르는 느낌 (횡적)
산등성이: 산의 "척추", 세로로 이어지는 느낌 (종적)
예문:
"산허리에 집을 짓다" (중간 경사면)
"산등성이를 타고 정상으로" (능선을 따라)
등산할 때:
산허리: 중간쯤 완만한 곳, 쉼터가 있을 법한 곳
산등성이: 양쪽이 계곡인 능선길, 조망이 좋은 곳




산허리에서 산등성이까지

새벽 다섯 시,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산자락에 발을 디뎠다. 등산화 끈을 다시 한번 조여 매며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산은 거대한 침묵 그 자체였다. 저 높은 곳, 희미하게 보이는 산등성이는 마치 하늘과 땅의 경계선처럼 아득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가파른 초입을 지나자 길은 완만해졌다. 산허리였다. 산의 중간쯤, 마치 거인의 허리춤을 감아 도는 듯한 이 길은 숨을 고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소나무들이 늘어선 오솔길을 따라 걷는 동안, 나는 문득 내 인생의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생각했다.

산허리에 서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너무 낮지도, 너무 높지도 않은 이곳. 올려다보면 아직 가야 할 길이 아득하고, 내려다보면 이미 지나온 길이 까마득하다. 중간이라는 것, 그것은 때로 가장 불안한 위치다. 정상도 아니고 출발점도 아닌, 진행 중이라는 어정쩡함. 하지만 산허리가 주는 위안도 있다. 이곳에는 쉼터가 있고, 샘물이 있고, 잠시 앉아 땀을 닦을 수 있는 평상이 있다.

"아직 반도 안 왔네요."

지나가던 등산객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나는 물병을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 반이라는 것이 이렇게 멀게 느껴질 줄이야. 젊은 날엔 이 길을 단숨에 달려 올라갔었는데, 이제는 산허리에서조차 숨이 찬다. 세월이 흐른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한때는 목표만 보고 달렸던 삶이, 이제는 중간중간 쉬어가며 주변을 둘러볼 줄 아는 삶이 되었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길은 점점 좁아지고 가팔라졌다. 산허리를 벗어나 능선으로 접어드는 순간, 세상이 확 바뀌었다. 바람이 달랐다. 더 이상 나무들에 가려지지 않은 바람은 거칠고 시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야가 열렸다.

산등성이.

양쪽으로 계곡이 깊게 패인 이 능선 위에 서니, 비로소 내가 산의 척추를 밟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곳은 산허리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안전하고 완만했던 산허리와 달리, 산등성이는 긴장을 요구했다. 한 발 한 발이 조심스러웠다. 좌우로 펼쳐진 계곡의 깊이가 현기증을 불렀다.

하지만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저 멀리 첩첩이 이어진 산맥들. 구름 사이로 비치는 아침 햇살.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 산등성이는 위험했지만 아름다웠다. 안전한 산허리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풍경이 여기 있었다.

문득 깨달았다.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 산허리 같은 시간들이 필요하다. 쉬어가고, 돌아보고, 힘을 비축하는 시간. 하지만 언젠가는 산등성이로 올라서야 한다. 위험을 감수하고, 균형을 잡으며, 좁은 길을 걸어야 한다.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세상이 있기 때문이다.

산등성이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이제 정상이 보였다. 마지막 힘을 내어 바위를 붙잡고 올라섰다.

정상석 앞에 섰을 때,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저 아래 아련하게 보이는 산허리. 그리고 내가 지나온 산등성이. 그 모든 길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산허리에서의 쉼이 없었다면 나는 중간에 포기했을 것이다. 산등성이의 긴장이 없었다면 이 정상의 감동도 없었을 것이다.

하산길은 늘 빠르다. 올라올 때 세 시간 걸린 길을 두 시간 만에 내려왔다. 다시 산허리를 지날 때, 나는 잠시 멈춰 섰다. 이번엔 이 길이 다르게 보였다. 그저 중간 지점이 아니라, 그 자체로 소중한 장소였다. 산허리에는 산허리의, 산등성이에는 산등성이의 의미가 있다.

산을 내려와 뒤돌아보니, 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었다. 산허리를 감싸고, 산등성이를 드러내며.

나는 다음에 또 오리라 다짐했다. 그때도 산허리에서 숨을 고를 것이다. 그리고 산등성이를 따라 조심스럽게 걸을 것이다. 그것이 산을 오르는 방법이고, 어쩌면 인생을 사는 방법이기도 하니까

월, 화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