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폭풍을 던져도 우리는 고요를 택할 수 있다.”
#Hello, Graham
호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나의 호주 참촌 그레이엄. 그는 닭 농장에서 함께 일했던 호주인으로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호주에서 사귄 첫 현지인 친구였다.
처음 닭 농장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직원들 사이에 녹아들기 힘들었다. 대화는 짧았고, 인사도 건성으로 지나가곤 했다. 그러나 그레이엄은 달랐다. 그는 나에게 먼저 말을 건넨 유일한 호주인이었다. 그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 덕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하루는 한국, 일본, 대만 친구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그레이엄이 한자에 관해 질문을 했다. 숫자 1이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모두 똑같이 들린다고 했다. 그런 그레이엄의 시각이 흥미롭고, 재밌게 다가왔다. 나를 비롯해 일본, 대만 친구들은 웃으면서 그레이엄의 의견 반대를 표했다.
그레이엄은 한국을 특히 좋아했다. 그래서 한국에 여행차 와본 적이 있었다. 종로에서 찍은 사진을 내게 보여주며 또 가고 싶다 했다. 그는 종로의 인사동이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만약 한국에 놀러 온다면 내가 더 재밌는 곳,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 한국문화를 더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곳에 데려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레이엄이 한국을 좋아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그는 아이돌 가수 현아의 팬이었다. 현아의 눈빛에는 사람을 끓어 당기는 강력한 힘이 있다고 했다. 그녀가 호주 퍼스에서 공연하게 되어 실제로 보는 날이 오길 바랐다. 그레이엄은 현아의 페이스북 계정도 팔로우하고 있었다.(나중에 그저 펜 페이지임을 내가 알려줬다)
그날은 그레이엄과 함께 제랄 튼(Geralton)으로 출장 가는 날이었다. 호주는 도심에서 30분만 벗어나도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잔잔하게 펼쳐진 초록 바다를 가로지르는 유일한 선 위에서 호주 아저씨와 수다를 떨었다. 그 순간은 마치 대자연을 배경으로 한 로드무비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300km가 넘는 거리를 이동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레이엄과 함께하는 수다는 즐거웠다.
내 첫 번째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만료될 무렵이었다. 세컨 비자가 나오지 않아 급한 마음에 퍼스 시내의 행정처를 돌며 상황을 확인했다. 그날은 그레이엄의 비번이었다. 그는 쉬는 날임에도 나를 위해 퍼스까지 동행해 주었다. 그리고 퍼스의 한 한국 식당에서 함께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그렇게 호주 삼촌과 추억을 만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소식을 들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다른 동료와 함께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그레이엄과 요즘 더욱 가까워졌다는 이야기를 무심코 꺼냈다. 그러자 동료는 나를 빤히 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You know what? He’s dying.”(혹시 그거 알아? 그 사람 죽어가고 있어)
그 쉬운 문장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잘 들렸지만 내가 잘못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순간, 머릿속에서 여러 의문이 혼란과 함께 떠올랐다.
'죽어간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내가 잘못 알아들은 건가?'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What do you mean he’s dying?”(무슨 뜻이야? 그가 죽는다니?)
“He is currently suffering from cancer.”(그 사람 지금 암이야)
그 동료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레이엄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그가 항상 밝게 웃고 있었기에, 나는 그의 상태가 그렇게 심각할 줄 전혀 알지 못했다. 그의 유쾌한 모습엔 시한부의 그늘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며칠 뒤, 그레이엄과 다시 단둘이 일을 하게 되었다. 평소처럼 일하며 수다를 떨던 중 그가 무심히 내뱉은 한 마디에 나는 굳어버렸다.
“I’m dying soon.”(나 곧 죽어)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정작 그레이엄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젯밤엔 영화를 봤어”, “지난 주말엔 친구들을 만났어”, “오늘 아침엔 토스트를 해 먹었어” 등 일상을 내뱉는 듯했다. 그는 내가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을 눈치채곤 웃으면서 대화 주제를 돌렸다. 그레이엄은 자신의 죽음 앞에서 늘 웃었다.
그는 서핑을 무척 좋아했다. 학창 시절, 학교를 마치면 친구들과 바닷가로 가서 서핑을 즐겼다. 호주는 자외선이 매우 강하다. 이 때문에 호주 사람들에게 발병률 1위인 암이 피부암이다. 그레이엄은 어렸을 적 선크림을 자주 바르지 않은 채 서핑을 즐겼다. 애석하게도 그레이엄은 피부암 말기였다.
그레이엄의 안타까운 상황을 알게 된 후에도 평소와 비슷하게 지냈다. 그레이엄은 이미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평범하게 살고 있었다. 죽어가는 이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고, 어떤 말을 건넬지 알지 못했다. 어리고 미숙했던 나는 그저 그레이엄과 친구로서 잘 지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의 호주 친구는 항상 웃고 있었다.
#Bye, Graham
몇 달 뒤, 나는 진진을 떠나기로 했다. 떠나기 전날, 진진에서 사귄 친구들이 송별회를 열어주었고, 그레이엄도 함께했다. 파티 도중 그레이엄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와 함께 그의 차까지 걸어갔다. 맑고 시원한 호주의 공기가 술기운을 씻어주었다. 나는 그동안 나에게 잘해줘서 고마웠다는 말을 건넸다. 이어서 그에게 안겼고, 그레이엄은 ‘껄껄’ 웃었다.
“Bye, Take care Ted.”(잘 지내 Ted)
“You too, Graham. I’m gonna miss you so much.”(그레이엄 아저씨도요. 정말 많이 보고 싶을 거예요)
우리는 웃으며 인사했다. 그가 차를 타고 멀어질 때까지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나는 그가 곧 세상을 떠날 거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인사가 그레이엄과 나누는 마지막 대화게 될 줄 몰랐다.(왠지 그레이엄은 알고 있었을 것 같다)
이후 나는 브리즈번의 한 농장으로 갔다. 몇 달 후 다시 퍼스로 돌아왔고, 시간이 더 흘렀다. 진진에서 함께 일했던 홍콩 친구에게서 페이스북 메시지가 왔다.
“Ted, have you heard? Graham passed away.”(Ted, 그 소식 들었어? 그레이엄 아저씨 돌아가셨대)
이렇게 빨리 그날이 올 줄은 몰랐다. 훗 날 호주를 떠나기 전에 그를 한 번쯤 더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소식을 듣고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 그의 부고가 믿기지 않았다.
홍콩 친구는 그레이엄의 가족 중 한 명과 페이스북으로 연락이 닿았다고 했다. 그는 장례식에 참석해 조의를 표하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냈고, 나는 회신이 오는 즉시 알려 달라 했다. 며칠이 지나 다시 홍콩 친구에 연락이 왔다. 그레이엄의 가족으로부터 아무런 답장이 없었다고 했다. 아무래도 가족들이 우리까지 참석하는 것은 꺼렸던 것 같다. 아니면 너무 정신없는 나머지 답장하지 못했을 것 같다. 나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하다 못해 그레이엄이 묻힌 곳은 어딘지, 화장을 했다면 유골을 뿌린 곳은 어딘지 알고 싶었다.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꼭 직접 가서 인사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알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내게 유쾌한 미소로 먼저 다가온 호주 삼촌한테 마지막 인사를 건네지 못했다.
#참을 수 없는 옛 나의 가벼움
한국을 떠날 때 “나는 꼭 성공해서 돌아올 거야”라는 다짐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다짐엔 복수심이 없잖아 있었다. 그때는 뜨거운 마음이 오로지 내 꿈을 향한 열정인 줄만 알았다. 실제로 연출에 대한 열정이 없지는 않았다. 지금도 나는 창작이란 활동에 열정을 느끼고 있으니. 다만 그때 호주에서 내 열정이란 불꽃에 복수라는 작은 화신도 살고 있었다. 반드시 성공한 영화감독이 되어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내 꿈을 무시한 사람들한테 보란 듯이 뽐내고 싶었다. 그리고 말하고 싶었다. “당신들이 틀렸어”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내 복수의 메시지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씁쓸해하는 얼굴이 보고 싶었다. 이러한 독기는 유해성분을 품고 있었다. 성공해서 복수하고 싶은 만큼 실패했을 때 받게 될 시선이 두려웠다. “네가 틀렸어”라는 말을 듣게 될 생각을 하면 끔찍했다. 즉 나의 열정은 순수하지 않았다.
내 꿈의 동기엔 타인이 결부 돼 있었다. 타인의 시선, 평가 등이 내가 성공하고 싶은 동력 중 하나였다. 이점이 누군가에겐 큰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겐 독이었다. 오히려 타인의 평가에 더 취약해지는 나를 만들었다. 이대로 내 목표를 이루지 못하게 될 경우 또다시 무시받게 될 상황이 두려웠다. 나를 더 숨고 싶게 만들었다.
그렇게 타인의 시선에 살고 있던 나는 취약해진 상태였다.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니 작은 변수에도 크게 흔들렸다. 불확실성에 짓눌리고 있었다. 산들바람에 지나지 않았을 일을 폭풍처럼 맞고 있었다. 뿌리가 깊지 못한 나무는 작은 산들바람에도 크게 휘둘렸다. 나는 당시 불어닥치는 삶의 불확실성에 쉽게 흔들렸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였다. 나의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삶이란 원래 불안정 함을 인정하지 못했다. 의연함 따위는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레이엄은 항상 웃고 있었다. 늘 호기심이 많았고, 유쾌했고, 친절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이미 받아들인 것 같았다. 자신의 죽음을 농담 소재로 이용하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난처했지만 그는 유쾌하게 웃었다. 물론 내가 보지 못했던 시간과 장소에서 그가 힘들어했을지 모른다. 죽음을 마주한 인간이 어찌 의연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내가 그레이엄과 함께한 시간 속에서 그는 자신의 죽음을 이미 받아들인 상태였다. 그저 하루하루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현재를 살고 있었다. 늘 밝고, 환하게 웃었다. 그는 인생의 무수한 변수들을 애써 통제하려 하지 않았다. 그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삶을 선택했다. 그의 선택이 정확히 뭐였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는 항상 웃고 있었다. 그레이엄은 의연한 어른이자 친구였다.
삶이란 본래 불안정하다. 우리 삶은 예측 하지 못하는 변수로 가득 차 있다. 인생이 우리의 통제를 벗어날 때 우리는 불안과 좌절을 느낀다. 이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여전히 통제 불가능한 부분에 집착하며 좌절에 시달릴지. 아니면 그 속에서도 통제 가능한 부분을 바라보며 내 삶에 집중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건강, 인연, 인간관계, 날씨, 재해, 경제 상황, 과거의 실수, 타인의 비난, 죽음 등. 불가항력적인 요소들은 그냥 놓아줘야 한다. 장미에 눈이 멀어 계속 가시를 끌어안아선 안된다. 나만 다칠 뿐이다. 사진을 찍든, 아름다움을 글로 기록하든, 다른 꽃을 찾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삶이 폭풍을 던져도 우리는 고요를 택할 수 있다. 즉 통제 가능한 부분과 불가능한 부분을 구분하자. 이를 잘 구분할수록 삶의 수용성(受容性)은 높아진다. 그리고 수용성이 높아질수록 우리는 더 의연해질 수 있다. 단단해 보이는 거암도 풍화가 일어난다. 완벽히 고요한 바다는 없다. 꽃잎이 떨어져도 이듬해 다시 피워낸다. 세상에 절대 흔들리지 않는 것이란 없다. 흔들려도 괜찮다. 애써 불안을 부정하기보단 그것을 품고 나아가야 한다.
하늘을 바라볼 여유를 잃지는 말자. 지친 하루 끝에 잠시 고개를 들어 별과 달을 보자. 연이은 실패 속에서도 작은 발전의 순간을 기억하자. 그렇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삶의 변수에 무너지지 말자. 삶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힘. 흔들릴지언정 내 길을 꿋꿋이 가는 것. 우리는 이를 의연함이라 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무렵이었다. 그레이엄 집에 가니 거실에 선물이 가득했다.
“What are all these?”(이게 다 뭐예요?)
“They are christmas presents for my kids”(우리 애들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거실 소파에 있는 선물을 바라보며 그레이엄은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늘 웃고 있는 표정이 한층 더 밝아 보였다. 그랬다. 그레이엄은 늘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