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아가 던지는 거대한 담론으로부터 영원히 도망칠 수는 없다.”
#낭만적 이상
‘근데 영화감독이 하고 싶은 거야? 아니면 미국 영화학교에 가고 싶은 거야? 꼭 해외의 영화학교일 필요가 있는 거야? 한국에서 해도 되는 거 아니야? 그리고 진짜 영화감독이 되고 싶으면 그냥 한국에서 천천히 시작해도 되잖아? 요즘 기술도 좋은데 핸드폰으로 혼자 찍어서 출품해도 되는 거 아니야? 나 정말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건 맞아? 만약 아니라면 내 꿈은 뭐지? 나 여태 뭐 했지?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이유가 뭐였지?”
고등학교 때였다. 어린 시절 우연히 카메라 및 방송 장비를 다룸에 재미를 느꼈다. 처음엔 단순히 기계를 조작하는 대서 느낀 흥미를 느꼈다. 이 재미가 하나의 스토리를 영상으로 만드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어서 영상 제작 전반적인 과정에서 구체적인 상태나 상황을 창조하는 과정에 희열을 느꼈다. 연출자가 내 꿈이 됐다. 방송국 PD나 영화감독으로 내 미래를 구체적으로 정해 놓지는 않았다. 당장은 연출 자체를 알고 싶었다. 물론 직업 목록 중 1순위는 있었다.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지구라는 행성의 장대함, 자연의 신비, 다양한 생명체가 주는 경이로움 등을 찍고 싶었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드라마 같은 서사 보다 생의 본능에만 충실한 자연의 순수성이 더 매력적이었다. 동물들이 신나게 뛰노는 모습을 찍고 싶었다.
그러던 와중 동아방송대학교에서 진행하는 청소년 영상캠프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1주일간 합숙하면서 국내외 청소년들과 작품 하나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우리 조를 담당했던 조교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다.
“드라마나 다른 프로그램은 사람들이 크게 집중해서 보지는 안잖아. 시리즈가 여러 개이기도 하고, 보면서 수다도 떨고. 그냥 편한 마음으로 보잖아. 하지만 영화는 2~3시간 동안 사람들이 오로지 영화에만 집중하게 만들잖아.”(OTT와 스마트 기기가 일상화된 오늘날엔 빈틈이 있는 말이 되어버렸지만)
그 메시지에 전율이 일었다. 내가 만든 스토리,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내가 창조한 세계를 수많은 사람들이 집중해서 본다면. 그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면. 영화가 가진 매력을 들었을 때 사회적 영향력이란 것을 처음 생각하게 됐다. 사람들에게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파할 수 있다면 보람찰 것 같았다. 그때부터 드라마 또는 스토리 텔링에 점점 흥미를 느꼈다. 그 후 할리우드 A급 감독의 기본 개런티가 300억이라는 기사를 우연히 접했다. 내 시선과 관심이 오로지 미국에 꽂혀버렸다.
#나는 꿈 꾼다, 고로 흔들린다
삼수하는 동안 연출자란 목표는 제법 사그라들었다. 오로지 대학 타이틀이 중요했다. 하지만 수능 점수에 맞춰 생각지도 못한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원하지 않던 학교와 학과에 입학한 현실이 싫었다. 모교 자체가 싫었다. 긴 수험생활 동안 대학교 가면 연출과 관련된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사라져 있었다. 현실 부정과 함께 의구심이 들었다.
‘내 꿈을 향한 열정은 고작 이것밖에 안 됐나? 혹시 내 꿈이 영화감독이 아닌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내 꿈은 무엇이지? 나 혹시 꿈이 없는 것은 아닐까?’
삼수씩이나 하다 보니 ‘남들보다 뒤처졌다’, ‘경쟁에서 밀렸다’라는 콤플렉스가 심했다. 24살의 늦은 나이에 입대하니 뒤쳐졌다는 콤플렉스는 더 커졌다. 커진 불안은 부정적인 생각을 점점 빠르게 일으켰다. 군대에서 내 불안을 잠재울 유일한 방책이 있었다. 독서. 나는 책에 집착했다. 그전까지 책과는 담쌓고 사는 삶이었다. 1년에 1 ~ 2권 읽었던 것 같다. 그나마 학교 숙제 때문이 아니었다면 0권에 수렴했을 것이다.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불안감을 무찌를 유일한 발악은 독서였다. 독서 이외에 내가 싸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적어도 책으로나마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를 멈추지 말아야 했다. 독서는 계속 뒤로 밀리는 내 자리를 막아 줄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독서는 얼어붙은 내 마음을 와장창 깨뜨리는 도끼와도 같았다. 책을 읽으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무지하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활자가 불어넣어준 스토리는 내 안에서 영감으로 때로는 상상의 나래로 피어났다. 군대라는 곳에 갇혀 있었지만 책은 나를 전 세계와 연결시켜주었다. 비단 다른 장소뿐만 아니라 다른 시간과도 연결해 주었다. 근대, 중세, 고대등으로 나를 데려가 주었다. 그렇게 시공간을 넘나들며 하는 여행이 처음에는 무척이나 즐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내 불안을 잠재울 수 있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내가 이등병 시절 분대장이 독서광이었고, 생활관은 자연스럽게 책을 읽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책을 통해 상상의 나라에서 접한 세상을 직접 보고 싶었다. 세상을 두 발로 돌아다니며 오감으로 직접 세상을 인지하고 그 경험을 내 감각에 새기고 싶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난 뒤라면 왠지 뛰어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은 영화감독이 아니더라도 뭐든 되겠다 싶었다. 그런 욕망이 끓던 와중 호주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새로운 곳에서 나를 되돌아보고 싶었다. 한국에서라면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기 바쁠 거란 핑곗거리도 있었다. 전공 공부, 취업, 스펙 쌓기 등의 전선에 뛰어들 용기도 부족했다. 환경 변화가 필요했다.
호주에 가기 전 ‘반드시 영화감독이 된다’라는 주문을 외쳤다. 호주에 갈 때쯤 구체적 목표와 그 목표를 지탱해 줄 신념 같은 것이 필요했다. 그 신념이 꿈이든, 어떤 가치이든, 세속적 희망이든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원초적인 동력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나 스스로 주문을 걸었다. 미국 영화 학교에 가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영어 실력을 쌓아야 했다. 다양한 경험은 뛰어난 연출자가 되는데 좋은 자양분이 될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색다른 경험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거라 믿었다. 호주에 오고 나서도 ‘나는 영화감독이 된다’라는 주문은 한동안 유효했다. 그 주문력으로 타지에서의 삶을 영위했다.
물론 의구심과 불안은 여전히 내재된 상태였다. ‘나는 정말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것일까?’, ‘어쩌면 나는 꿈이 없는 것은 아닐까?’라는 두 질문이 불현듯 떠오를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저 두 질문은 깊은 불안을 찌르는 가장 강력한 가시였다. 그때마다 내 정체성의 정의를 영화감독 지망생으로 두었다. 주문도 함께 외쳤다. 이는 자아가 던지는 거대한 담론을 외면할 수 있는 핑계였다. 적절한 방패막이였다. 하지만 유학자금이 생각만큼 모이지 않게 되자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하루를 무기력으로 채우거나, 복권에 희망을 걸거나, 술에 취해 현실과 내면의 불안을 망각하는 등. 막다른 골목에서 하찮은 발악만 했다.
#캥거루 코인의 교훈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그렇게 발악을 해도 내면의 자아는 나를 찌르지 않고 있었다. 그저 나를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더 이상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을 하기로 했다. 나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내 과거를 객관화해야 했다. 처음 영화감독이라는 꿈이 생긴 시점부터 어떻게 호주에 오게 됐고, 호주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하나씩 살펴봤다. 호주 워홀 선택 이면에 있는 내 자아의 실체를 드려다 봐야 했다.
기계공학과에 입학했지만 영화 또는 연출과 관련된 행동을 할 수는 있었다. 전공공부 하기 바쁘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에너지가 부족했다기엔 조금 말이 안 됐다. 동아리에 가입하는 방법도 있고, 관련 책을 읽어도 되고, 복수 전공, 부전공 등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심지어 그렇게 영화를 많이 보지도 않았다.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작품들을 보려 할 때마다 10분 만에 잠들곤 했다.
심지어 뉴욕 필름아카데미나 밴쿠버 필름스쿨은 영화 학교로 그렇게 명성 있는 학교도 아니었다. 그만큼 내 계획, 사전 조사 등은 미흡했다. 아니 아주 얄팍했다. 자료 조사를 성실히 한 것도 아니었다. 계획이 탄탄하지도 않았다. 이를 위한 열정은 뜨거웠지만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내 미래를 위해 청춘을 투자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요행을 바란 일종의 도피였다. 그저 캥거루 코인에 탑승하고 나면 무언가 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영화감독 자체가 꿈이었다면 반드시 미국일 필요는 없다. 세계 영화 산업의 중심지에서 배운다면 당연히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충분조건이지 필요조건이 아니다. 정말 영화를 사랑하고, 스스로 만들고 싶은 영상물이 있다면 6mm 카메라 만으로도 충분하다. 혼자서 얼마든지 만들어 볼 수 있다. 직접 시나리오를 써서 공모전에 출품해 볼 수도 있다. 국내에 있는 영화학교에서 차곡차곡 출발하는 방법도 있다.(물론 국내에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부모님의 만류, 주변의 평가, 혼자서 느끼는 눈치, 실패했을 때 받게 될 조롱과 멸시가 무서웠으므로.)
‘어쩌면 내 꿈은 영화감독이 아닌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것 아닐까?’ 한 번도 이 질문을 던져보지 않았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나는 흔들릴 만큼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흔들림을 외면했다. 꿈, 정체성, 신념, 가치관 등을 찾는 과정은 괴로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영화감독이란 말을 내뱉으며 흔들리지 않아 보이는 나 자신을 보며 착각했다. ‘나는 꿈이 명확해’,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분명히 있어’, ‘나는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될 거야’, ‘나는 미국에 있는 영화학교에 꼭 갈 거야’라는 말들은 나를 마취시키고 있었다. 계획대로 영화감독이 된다면 내 삶은 완벽해질 것 같았다.
결국, 시간이 흐른 뒤에야 영화감독이 내 진정한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때 그 대상에 열정을 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내 삶에서 반드시 이루고 싶은 절실한 목표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것이 진정한 꿈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을 때 발밑의 땅이 꺼지는 듯했다. 허무함에 사로잡혔다. 허무함과 함께 두려움이 몰려왔다. ‘나는 꿈이 없는 걸까?’, ‘나는 사실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은 단순한 고민을 넘어 내 삶 전반을 뒤흔드는 거대한 담론으로 이어지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담론으로부터 계속 도망친 것이었다.
도망치는 곳에 낙원은 정말 없을까? 외적인 도피는 우리가 가용한 에너지만 있다면 언제든 가능하다. 그것이 체력이든, 젊음이든, 돈이든, 시간이든. 그리고 외부 환경의 전환은 새로운 기회와 에너지를 가져다줄 수도 있다. 내 선택, 노력, 우연, 운 등에 따라 도피는 주요 전략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즉 낙원이 존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낙원을 불가능케 하는 이가 있다. 이는 우리가 영원히 도망칠 수 없는 대상이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어떤 경험을 하든. 우리는 우리 자신이라는 사람과 늘 동행한다. 자신으로부터 우리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이 그림자로 인해 내적 도피는 낙원의 부재를 만든다. 사막, 황무지, 동굴만 남는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야 인간으로서 당연히 느끼는 감정이다. 하지만 내 자아가 던지는 거대한 담론으로부터 영원히 도망칠 수는 없다. 그럴수록 내적 불안은 커지고, 자아엔 균열이 간다. 언젠가 무너져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때까지 늘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고, 나의 꿈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아직 사회 경험이 적고, 내 삶을 촘촘히 살펴본 적이 없다면 더더욱 알기 힘들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그렇게 무섭고, 불안했다.
만약 어렸을 때 한 번씩 품었던 꿈이 전부 허상이라면 유년 시절의 꿈은 전부 무의미할까? 사회에서 요구하는 직업으로 이뤄지지 않고, 특정 지휘를 가져다주지 못하고, 먹고살 수 있는 수단으로써 작용하지 못한다면. 결국 어린 시절 우리가 꿈꾸었던 대상, 그 대상을 사랑했던 시기, 그 대상을 향해 달려간 노력과 수고 등. 이 모든 것들이 무가치한 일일까? 결국 꿈이란 특정 직업으로서 이루어져야만 의미 있는 것일까? 그저 피 끓던 학창 시절에 뭐라도 불태울 대상으로서만 작용하는 것일까? 그저 청춘의 한 편에서 땔깜을 뿐인 것일까?
꿈의 진정한 가치는 실현 여부에 있지 않다. 물론 중요한 고려 요소다. 우리는 중력처럼 작용하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먹고살아야 하고, 사회적 요구를 전부 무시하고 살 수는 없다. 하지만 호주를 떠나 다시 한국에 돌아오고, 시간이 좀 더 지나서 내가 깨달은 점이 있다. 꿈이란 실현성 보다 그 자체로 의미 있다. 즉 꿈은 나라는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 영화감독이 내 진정한 꿈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뒤 한동안 힘들었지만 이내 그 과정을 통해 나를 더 잘 알게 됐다. 청춘의 꿈은 단지 이루기 위한 목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이해하고 성장시키는 여정이었다. 그리고 그 여정은 비록 방향이 바뀌거나 멈춰 설지라도 삶의 일부로 계속 남는다.